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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만에 잡힌 ‘강릉 노파 살인사건 용의자’가 풀려난 이유

중앙일보 2018.06.03 15:34
지난 2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13년 전 발생한 강릉 노파 살인사건을 집중 조명했다.  장기 미제로 남았던 강릉 노파 살인 사건은 12년 만에 범행을 검거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그러나 범인은 지난해 9월 열린 국민참여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풀려났다.

[사진 방송화면 캡처]

[사진 방송화면 캡처]

 
지난 2005년 5월, 강릉의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장 할머니가 숨진 채 발견됐다. 12년 간 미제로 남아있던 이 사건은 지난해 범행 도구로 쓰였던 테이프 안쪽의 심지에서 발견된 쪽지문으로 용의자 정 씨를 검거하며 다시 세상에 알려졌다. 하지만 1심 재판 결과는 무죄였다.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유일한 증거인 테이프 지관에 찍힌 쪽지문 등이 1심에서 살인의 결정적 증거로 채택되지 못했고, 국민참여재판에서 9명의 배심원 중 8명이 정씨가 살인범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방송에 따르면 지난 2005년 5월 강릉의 조용한 시골마을에서 할머니가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할머니는 숨을 쉬지 못하게 하려는 듯 양 손과 두발, 얼굴 전체가 테이프로 감겨 있었다. 시신 부검 결과 구타에 의해 다수의 갈비뼈가 골절됐고 등 쪽에 구타로 인한 후복막강 출혈이 있었으며 얼굴엔 울혈과 이로인한정출혈, 질식의 소견도 관찰됐다.
 
사건 당시 할머니가 몸에 착용하고 있던 금반지와 금팔찌가 사라졌고 3000만원이 들어있는 통장과 도장, 현금은 그대로였다. 경찰은 사건 현장을 샅샅이 뒤졌지만 누군가 청소한 듯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12년 간 미세로 남았던 이 사건이 지난해 9월 다시 주목받았다. 범행 도구로 쓰였던 테이프 안쪽 심지에서 쪽지문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덕분에 용의자 정모씨를 검거했다. 그러나 정씨에 대한 1심 재판 결과는 무죄였다. 테이프에 찍힌 쪽지문이 살인의 결정적 증거로 채택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민참여재판에서 9명의 배심원 중 8명이 정시가 살인범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제작진은 테이프의 출처를 파헤쳤다. 쪽지문의 주인인 정씨가 피해자의 집에 방문했는지 안 했는지 입증할 수 있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경기대 범죄심리학 이수정 교수는 “이 테이프가 이 집에 있던 게 아니고 밖에서 들고 들어온 테이프라면 그 테이프에는 여러 사람의 지문이 있을 수 있겠다. 사건과 관련 없는 사람의 지문도. 그러나 이 테이프가 피해자 집에 있던 것인데 할머니의 지문이 아니라 제3자의지문이 찍혀있다. 그러면 그 제3자가 범인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할머니의 유족들은 “범인이 잡혀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재판을 보고 실망했다”며 “지문 때문에 정씨를 집어넣고 재판이 열렸는데 변호사는 설득력 있게 설명했고 검사 측은 아무 얘기를 못 해 배심원들이 그쪽으로 쏠린 것 같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1심에선 테이프에서 나온 지문이 정씨의 것은 맞지만 정씨가 범인이 아니라고 판단할 만한 근거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제작진은 정씨와 인터뷰를 했다. 정씨는 “변호사가 빨리 시인하면 형량을 깎고 안하면 5년은 더 받을 것이라고 하더라”며 “이유 없이 잡아놓고 범인이면 좋고 아니면 그만이냐”며 억울해했다. “전과를 보고 의심하는 게 말이 되냐”고 한 정씨는 “전과 있는 놈은 다 나쁜 놈이냐? CCTV 보면 내가 그 동네에 갔는지 다 나올 것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나 제작진이 확인한 결과 2005년 5월 당시 사건 현장 인근엔 CCTV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정씨는 또 테이프에서 나온 쪽지문도 조작됐다고 주장했다. 정씨는 “오토바이를 잃어버렸는데 자꾸 오토바이 이야기하길래 '거기서 나왔나' 했다”며 자신은 강릉에 간 적이 없다고 재차 이야기했다.
 
이에 제작진은 원점으로 돌아가 지금까지 나온 단서들을 통해 그날의 진실을 추적해보았다. 그리고 프로파일링과 유일한 흔적이 발견되었던 테이프의 정보를 토대로 그 출처를 추적했다. 또한 혹시 쪽지문 외에 그동안 놓치고 있었던 것은 없는지 전문가와 함께 살펴봤다.
 
프로파일링은 사건 현장을 살펴보는 것에서 시작됐다. 프로파일링 결과 이 동네는 걸어서 이동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고, 특별히 이 곳을 목적지로 삼고 오기보다는 이동하는 동선 중 피해자를 목격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전문가들 의견에 따르면 범인은 비 면식범일 확률이 높다고 봤다.  
 
한편, 제작진의 추적 도중 또 다른 용의자가 있었던 것도 드러났다. 싱크대 위 설거지가 되지 않은 커피잔에서 발견된 립스틱 자국의 주인공이다. 립스틱의 주인공은 할머니와 수양딸처럼 가깝게 지내던 박모씨였다.
 
박씨는 사건 발생 한 달 후 체포됐고 그녀는 범행 일체를 자백했었다. 그러나 담당 검사는 사건의 정황과 박씨의 이야기가 맞지 않는다며 돌려보냈다. 박씨는할머니보다 왜소했고 범행 도구도 일치하지 않았다. 또 커피잔의 립스틱도 박씨와의 연관성이 밝혀지지 않았다.
박씨는 제작진에게 “그 날 할머니 집에 가지도 않았고 커피잔에 뭘 마시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박씨가 범인으로 몰렸던 이유는 경찰이 초동수사에서 범인을 면식범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13년간 꼬여버렸던 강릉 노파 살인사건, 지금이라도 이 미제가 풀릴 수 있을지관심이 쏠리고 있다.  
 
배재성 기자 honogdoya@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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