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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도 함부로 못 널겠어요”…성범죄에 창문 못 여는 여성들 ‘셀프감금'

중앙일보 2018.06.03 13:54
“밖에서 여자 혼자 사는 집인 걸 알 까봐 한 달에 두 번도 창문을 열 수가 없어요. 무서워서 빨래도 함부로 못 널어요”
경남 진주의 한 원룸에 살고 있는 김다은씨가 여성임을 숨기기 위해 속옷 대신 수건을 말리는 모습. 성지원 기자

경남 진주의 한 원룸에 살고 있는 김다은씨가 여성임을 숨기기 위해 속옷 대신 수건을 말리는 모습. 성지원 기자

 

1인 가구 여성 대상 범죄 늘면서 불안감 커져
창문열림경보기 설치해도 ‘몰카’ 막을수 없어
‘#이게_여성의_자취방이다’ 해시태그 운동은 계속

30일 오후 서울 광진구 화양동 한 원룸 건물 1층. 비가 그친 뒤 태양이 비췄지만 창문 너머에는 블라인드가 굳게 내려져 있었다. 어두컴컴한 방안에는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은 듯 보였다. 방 한쪽에 난 가로 1m 50cm, 세로 90cm 크기의 창문에는 이중 방범창이 굳게 잠겨있었다. 바로 앞 빨래건조대 아래에는 손바닥 크기의 습기제거제가 놓여있었다. 이 방에 혼자 살고 있는 김진솔(27)씨는 “한 달에 두 번만 창문을 열어서 생긴 습기와 냄새를 없애기 위해 마련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가 이곳에 처음 살게 된 건 8년 전의 일이다. 바로 전에 거주하던 집에서는 집주인 아저씨가 방문을 열고 들어오려고 한 일이 있었다. 술에 취해 자신의 집으로 착각한 해프닝이었다. 다행히 방문에 걸쇠가 걸려있어 무단침입은 막았지만 불안감은 갈수록 커졌다. 얼마 전 이웃에 사는 친구의 집에서는 누군가 방충망을 밖에서 뜯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가 자신을 방안에 가두기 시작한 이유다. 김씨는 불과 다섯 걸음 거리에 열려 있는 옆집 창문을 가리키며 “혼자 사는 여성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서울 광진구 화양동에 혼자 사는 김진솔씨가 빨래건조대 밑에 설치한 습기제거제. 성지원 기자

서울 광진구 화양동에 혼자 사는 김진솔씨가 빨래건조대 밑에 설치한 습기제거제. 성지원 기자

 
혼자 사는 여성들이 창문을 굳게 닫고 있다. 이들을 노리는 강도나 살인 등 강력범죄나 침입범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지난 14일 서울 성북구에서는 30대 남성이 15차례에 걸쳐 창문으로 여성전용 원룸 빨래 건조대에 걸린 속옷 냄새를 맡은 혐의로 체포됐다. 지난해 9월에는 경남 진주에서 전자발찌를 끊은 성범죄자가 원룸에서 20대 여성을 성폭행한 사건이, 울산에서는 50대 남성이 20대 여성을 35차례 몰래 촬영한 사건이 연이어 있었다. 모두 여성이 혼자 사는 원룸에 창문을 타고 침입한 경우였다.
 
낮은 층이 아니라 높은 층에 사는 여성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실제로 지난 24일 광주에서는 30대 남성이 옥상에서 빨랫줄을 타고 3층 창문으로 들어가 혼자 사는 여성을 묶고 돈을 훔친 사건이 발생했다. 서울 노량진 원룸 건물 4층에 혼자 사는 황모(25)씨는 “우리 집은 옥상이 바로 위지만 혼자 사는 게 알려질까 봐 불을 켜는 것조차 조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청파동에 사는 정모(23)씨도 “1층이 훨씬 저렴하지만, 범죄 우려 때문에 구할 생각도 안 했다. 3층 창문도 방범창이 안 달려있어 항상 잠그고 있다”고 말했다.
 
1인 가구 여성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지난해 여성가족부와 통계청이 발표한 ‘2017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여성 1인 가구의 46.2%가 한국사회 안전에 대해 ‘불안하다’고 답했다. 그 사이 전체 범죄의 여성 피해자의 비율은 늘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14년 1분기 33.4%(9만9024명)였던 여성 피해자는 2016년 2분기엔 34.8%(11만4393명)로 증가했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청년 1인 가구(만 33세 이하)는 남성 청년 1인 가구에 비해 주거 침입 범죄피해를 겪을 확률이 11.2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선 경찰서에서 취약지역을 대상으로 창문열림경보기·LED보안등 등을 무료로 지급하고 있지만 반응은 미덥지 않다. 최근 드론이나 무인기 등으로 진화하는 몰래카메라 범죄는 막기 어렵기 때문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몰카 범죄는 2006년 517건에서 2016년 5185건으로 10년 사이 10배 이상 급증했다. 경남 진주시에 사는 김다은(26) 씨는 “경보기가 울린다고 창문이 자동으로 닫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예방 효과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경찰이 나눠주는 '창문열림경보기'와 대문에 걸어주는 '포돌이순찰카드'.  [사진=대구경찰청]

경찰이 나눠주는 '창문열림경보기'와 대문에 걸어주는 '포돌이순찰카드'. [사진=대구경찰청]

전문가들은 혼자 사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문한다. 단순히 ‘문단속을 잘하라’는 식으로 여성들에게만 범죄 피해의 책임을 떠넘겨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그사이 혼자 사는 여성들은 지난해 2월부터 인터넷을 통해 스스로 범죄경험담을 공유하는 ‘#이게_여성의_자취방이다’ 해시태그 운동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일부 여성커뮤니티에서는 자취 지역을 고를 때 인근 범죄 발생 정보와 예방 방법까지 공유하기도 한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행인들에게 혼자라는 사실이 알려지길 원치 않고, 범죄가 두려운 여성들이 스스로 창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며 “범죄는 피해자의 책임이 아니지만, 지금처럼 잠재적 피해자의 안전이 도모되지 않는 현실에서는 여성들이 스스로 주의를 하는 게 최소한의 대책”이라고 말했다.
 
성지원 기자 sung.ji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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