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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무적' 아줌마도 못 이기는 중학생, 아빠가 소통나서야

중앙일보 2018.06.03 07:02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16)
우동. [중앙포토]

우동. [중앙포토]

 
나는 면 종류의 음식을 엄청 좋아한다. 자주 가는 단골집이 도서관 옆 중화요릿집이다. 오늘은 책도 반납할 겸 도서관에 간 김에 참새가 방앗간 옆을 못 지나친다는 말처럼 그 집에 들렀다. 혼자 우동을 시켜놓고 기다리자니 옆 테이블이 엄청 수다스럽다. 
 
어른들의 술판이 벌어져서가 아니다. 말하는 아이들의 산뜻하고 청아한 목소리에 귀가 저절로 그리로 기울어 본의 아니게 대화를 엿듣게 됐다. 한 어른 남자와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여학생, 그리고 남동생의 대화다. 남대문·광화문·인사동 등 서울 거리를 여행한 이야기였다. 대화를 엿듣다 보니 조잘거리는 것은 딸아이이고, 이에 남동생과 아빠는 맞장구를 쳐주었다.
 
내용인즉 엄마와 서울 나들이를 갔는데, 각자 가고 싶은 곳을 정해 한군데씩 돌기로 했다. 그런데 엄마가 마음이 변해 온통 자기 위주로 쇼핑이랑 먹거리 여행만 하다 돌아왔다는 것이다. 그러니 엄마만 기분이 좋아서 호들갑이고 자식들은 아무것도 이룬 게 없어 속상해 죽겠다고 했다. 후렴으로 집에서 엄마랑 부딪히는 온갖 이야기도 고자질한다.
 
아빠로 보이는 남자의 표정과 장단이 얼마나 멋있고 재미있던지 세상에 그리 잘생긴 남자는 근간에 처음 본 듯하다. 아이들이 조잘조잘 떠드는 중간에 “진짜?” “정말?” “우와~” 이 세 마디 추임새로 30분은 족히 아이들의 마음을 확실히 열어 청소해 준 것 같았다.


아이들의 조잘거림에 맞장구쳐주는 키다리 아저씨
어쩌면 사소할 것 같은 대화가 아이들의 마음속엔 평생 소중한 기억으로 각인될지도 모른다. [일러스트 Freepik]

어쩌면 사소할 것 같은 대화가 아이들의 마음속엔 평생 소중한 기억으로 각인될지도 모른다. [일러스트 Freepik]

 
어른들이야 마음의 울화를 담배나 술로 다스리지만 아이들이 넘치는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것은 조잘거림일 터. 그 말을 다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아빠가 있으니 그 아이들의 장래는 안 봐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사소할 것 같은 이런 대화가 아이들의 마음속엔 평생 소중한 기억으로 각인될지도 모른다. 아빠의 모습은 내 마음을 알아준 멋진 키다리 아저씨로 기억될 것이다.
 
드디어 푸짐한 탕수육과 자장면, 만두까지 나오자 아이들의 입이 함지박만 해져서 먹고 또 먹으면서도 조잘조잘 이다. 누구나 배가 고프면 불평불만이 많아지고 배가 부르면 ‘그럴 수 있지~’라는 느긋한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법이다. 조금 전 엄마에 대한 성토는 어디로 사라지고 다시 엄마의 장점으로 대화가 이어지더니 혼자 기다리는 엄마를 불러내자는 의견이 나왔다.
 
아빠는 짐짓 “너희들을 그렇게 기분 나쁘게 했으니 하루 굶어도 괜찮아” 하고 아이들의 편을 들어주었다. 아이들은 엄마의 모든 잘못을 사해주는 천사의 표정으로 돌아온다.
 
학교 선생이란 자리가 힘들다 힘들다 해도 요즘 중학교 담임만큼은 아닐 것이다. 중학교 담임은 신의 경지에 오르지 않고는 할 수 없다고 한다. 초등학생이면 아직 아무것도 모르니 철이 없어 그렇다 하고, 고등학생이 되면 그나마 철이 조금 들어서 대화가 되지 싶다. 그러나 내 아들의 경우를 생각해도 중학생 시절은 하늘 위로 머리통이 뚫린 듯 기고만장의 세월인 듯하다.


하늘 위로 머리통 뚫린 기고만장의 중학생 시절
"엄마, 내가 인생을 살아봐서 아는데 말이야~"라며 대들던 중학생 시절 아들의 목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들리는 듯하여 웃음이 난다. 김성태 기자

"엄마, 내가 인생을 살아봐서 아는데 말이야~"라며 대들던 중학생 시절 아들의 목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들리는 듯하여 웃음이 난다. 김성태 기자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엄마, 내가 인생을 살아봐서 아는데 말이야~”라며 대들던 아들의 목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들리는 듯하여 웃음이 난다. 그럴 때 내 남편도 아들을 데리고 나가 한참 동안 있다가 들어왔다. 마치 둘만의 비밀을 공유하며 무언가 해결한 흐뭇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래서 엄마는 몰랐던 오늘의 풍경이 더욱더 감동으로 다가온다.
 
저 아이가 인생을 살면 얼마나 살았다고 저런 이야기를 하나 싶지만 그 시절 그때가 청년 진입을 앞둔 청소년기는 가장 큰 혼돈의 시간이고 두려운 길이다. 그 시기의 아이들은 그 두려움을 폭력이나 다른 무엇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 같다. 그런 아이들과 엄마는 소통은 없고 다툼으로 끝난다.
 
누구를 상대해도 이길 수 있다는 아줌마도 중학생은 못 이긴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럴 때가 아빠가 나서야 하는 타임인데 오늘 본 아빠는 정말로 멋지고 존경스러웠다.
 
내 아이들이 속마음을 열고 대화하고 싶은 큰 사람 아버지가 청년기에 접어든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춰 대화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면 불량 청소년은 만들어지지 않을 것 같다.
 
아이들이 아버지가 따라주는 맥주 한 잔을 몰래 홀짝거리며 둘만의 비밀을 공유하듯이 몸짓을 취해주는 아버지가 많았으면 좋겠다. 점심 먹으러 들른 중국집에서 멋있고 젊은 아빠의 모습을 훔쳐보느라 면이 퉁퉁 불었지만 오늘따라 우동이 훨씬 감칠맛 난다. 아마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엄마에게 줄 튀김 통닭 한 마리가 아이의 손에 쥐어져 있을 것이다.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sesu32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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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옥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필진

[송미옥의 살다보면] 요양보호사 일을 하다 평범한 할머니로 지낸다. 지식은 책이나 그것을 갖춘 이에게서 배우는 것이지만, 인생살이 지혜를 배우는 건 누구든 상관없다는 지론을 편다. 경험에서 터득한 인생을 함께 나누고자 가슴 가득한 사랑·한·기쁨·즐거움·슬픔의 감정을 풀어내는 이야기를 쓴다. 과거는 억만금을 줘도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다는 말처럼 이웃과 함께 남은 인생을 멋지게 꾸며 살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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