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사태는 대법원 특별조사단이 법원행정처 전직 간부들의 컴퓨터에 저장된 파일들을 열면서 시작됐다. 그곳에서 상고법원 설립에 대한 청와대의 도움을 받기 위해 법원 측이 협력적 조치들을 취했음을 암시하는 구절이 포함된 문서가 나왔다. ‘사법부가 BH(청와대)의 원활한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최대한 협조해 온 사례’라는 표현과 함께 KTX 해고 승무원 사건 등이 열거돼 있었다. 법원이 ‘국정운영을 뒷받침한다’는 발상은 행정부와 사법부를 엄격히 분리하는 헌법 정신에 위배된다. 재판에 대한 신뢰도 무너뜨린다. 하지만 특별조사단도 밝혔듯이, 행정처나 대법원장이 실제로 재판에 관여했음을 입증하는 자료는 없다. 판결과 관련해 회유나 압박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판사들도 없다. 박근혜 정부가 반겼을 판결 결과들을 제시함으로써 법원의 숙원 사업을 해결하는 데 협조를 얻으려 한 것뿐이라는 당사자들의 설명을 뒤집을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원과 정치권 일각에서는 마치 ‘재판 거래’가 실제로 이뤄졌던 것처럼 말한다. 김명수 대법원장도 “사법행정권 남용 자행” “비참하고 참혹한 조사 결과” 등의 감정적 표현을 사용하며 혼란과 불신을 부추기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법조계에서는 사법부의 ‘신(新) 권력’과 ‘구(舊) 권력’ 간의 세력 갈등이라는 이야기마저 나온다. 이미 ‘판결 불복’을 외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대법원 법정이 시위대에 점령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지금은 우리 사회가 허물어진 법원에 대한 믿음을 바로 세울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