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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자GO] 옛날 삼겹살이 돌아왔다…'냉동삼겹' 전성시대

중앙일보 2018.06.01 00:02
합정동 '행진'의 상차림. 기본 반찬은 오래된 호프집에서 쓰던 크리스털 그릇에, 냉동삼겹은 스테인리스 스틸 쟁반에 담겨 나온다.

합정동 '행진'의 상차림. 기본 반찬은 오래된 호프집에서 쓰던 크리스털 그릇에, 냉동삼겹은 스테인리스 스틸 쟁반에 담겨 나온다.

익선동·을지로 등 낡고 오래된 지역이 ‘힙한 동네’로 주목받고 있다. 1970~80년대 느낌의 인테리어 소품은 없어서 못 구한다. 한동안 촌스럽게 여겨졌던 빅 로고 티셔츠, 도트 무늬, 알이 얇고 작은 선글라스 등이 ‘잇 아이템’이 됐다. ‘복고’ 또는 ‘레트로’라는 단어와 함께 새로운 옛것이 끊임없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음식이라고 다르지 않다. 한때 외식업계를 주름 잡았던 냉동삼겹이 다시 돌아왔다. 2000년대 후반, 두툼한 생고기를 통으로 구워주는 삼겹살집의 등장과 함께 냉동삼겹은 인기를 잃었다. 소비자들은 테이블마다 배치된 종업원들이 알맞게 익혀 한입 크기로 잘라준 생삼겹을 멜젓 등 독특한 소스에 찍어 먹는 방식에 이내 익숙해졌다.

생 통삼겹 독식 끝났다…돌아온 '냉삼'
인테리어·식기 등 1970~80년대 복고풍
레트로 문화 즐기는 힙스터들에 인기

생 통삼겹에 밀려 다시는 빛을 보지 못할 것 같았던 냉동삼겹이 최근엔 줄서서 먹는 게 당연할 만큼 핫한 음식이 됐다. 냉동삼겹 맛집으로 꾸준히 자리를 지켜온 한남동 ‘나리의 집’뿐 아니라 보광동 ‘잠수교집’, 역삼동 ‘랭돈’, 그리고 4월에 개업한 합정동 ‘행진’과 삼성동 ‘경성골목집’까지. 지역별로 다양한 ‘냉삼집’들이 자리잡으며 매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
 
누군가에겐 향수, 더 어린 세대엔 새로움
'행진'의 외관. 두 명의 식당 대표들이 철거된 상가들을 직접 돌면서 하나둘 모아온 물건들로 공간을 꾸몄다.

'행진'의 외관. 두 명의 식당 대표들이 철거된 상가들을 직접 돌면서 하나둘 모아온 물건들로 공간을 꾸몄다.

삼성동 '경성골목집'의 내부. 벽시계, 전화기, 타자기 등 오래된 물건들을 배치해 복고풍을 연출했다.

삼성동 '경성골목집'의 내부. 벽시계, 전화기, 타자기 등 오래된 물건들을 배치해 복고풍을 연출했다.

‘냉삼 시대’를 형성한 배경에는 냉동삼겹이라는 음식만 있는 게 아니다. 최근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냉삼집들의 공통점은 ‘레트로 무드’를 십분 활용한다는 점이다. 냉삼을 판매하는 공간, 음식을 담는 그릇, 식사 중 울려 퍼지는 음악까지 과거의 어느 시점을 추억하게끔 연출한다. 그 분위기를 경험해본 이들에겐 향수가 되고 모르는 이들에겐 새로움으로 다가온다.
합정동 냉삼집 ‘행진’은 지난 4월 2일에 문을 열었다. 하지만 외관만 봐서는 그 자리에 20년은 있었던 가게같다. 허술하게 얹어둔 작은 간판에는 이전 가게의 상호가 비쳐 보이고, 알루미늄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 니스칠을 한 나무벽과 간유리 창문이 보인다. 행진의 장우영·김재균 두 대표는 철거단지를 직접 돌면서 쓰레기로 버려질 인테리어 아이템들을 모았다고 한다. 장 대표는 “냉동삼겹이 복고적인 메뉴이기 때문에 그에 맞춰서 80년대 가정집 분위기로 꾸몄다”고 설명했다. 
보광동 '잠수교집'의 상차림. 둥근 오봉(쟁반)에 담겨 나오는 반찬들이 향수를 자극한다.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보광동 '잠수교집'의 상차림. 둥근 오봉(쟁반)에 담겨 나오는 반찬들이 향수를 자극한다.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지난 2월 역삼동에 오픈한 ‘랭돈’ 역시 이름부터 복고풍을 의도했다. 차갑게 얼린 돼지고기를 뜻하는 한자어 ‘냉돈(冷豚)’을 옛날 표기식으로 ‘랭돈’으로 썼다. 보광동 ‘잠수교집’도 빨간 벽돌벽과 테이블마다 덮은 하얀 비닐 등이 80년대 식당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역삼동 ‘경성골목집’은 카운터 옆에 아폴로·쫀드기 등 과거 유행하던 불량식품들을 놓아두었다.
경성골목집 배수빈 대표는 “외식은 단순히 끼니를 때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문화를 향유하려는 목적이 있다”며 “냉삼집을 찾은 젊은 세대가 부모님이 자신의 나이에 향유했던 문화를 간접체험하길 바랐다”고 말한다.
 
유행 때문에 먹는다고? 맛있어서 먹는다
생 통삼겹은 보다 신선하고 질 좋은 고기라는 이미지와 함께 한동안 대세를 잡았다. ‘대패삼겹’으로 불리던 과거 냉동삼겹은 상대적으로 질이 낮지만 싼 맛에 먹는 고기로 여겨졌다. 지금 냉삼에 열광하는 젊은이들은 고기 맛과 상관없이 레트로 문화를 경험하는 즐거움에 취한 것일까.
‘행진’의 장우영 대표는 “냉삼이 유행해서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얇게 썬 냉동삼겹을 더 좋아했기 때문에 팔게 됐다”고 말한다. ‘두꺼운 고기냐 얇은 고기냐’도 결국 취향의 문제다. 외식 트렌드 전문가인 이윤화 다이어리R 대표는 “요즘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냉동은 다 안 좋고 생물이 최고’라는 인식이 흐려졌다”며 “냉동이냐 냉장이냐를 떠나 어떤 고기냐에 더 집중한다”고 분석했다.
냉삼집 주인들은 “예전의 대패삼겹과 요즘 나오는 냉동삼겹은 완전히 다르다”고 입을 모은다. 유통 방식이 발달하지 않아 대부분의 식당이 냉동고기를 써야 했던 과거와는 환경이 달라졌다는 얘기다. ‘잠수교집’은 제주 백돼지만을 취급하고, ‘경성골목집’은 1등급 한돈을 사용한다. 이처럼 양질의 생삼겹을 급냉시킨 뒤 얇게 썰어 내놓는 방식을 택한다. ‘랭돈’의 송호상 매니저는 “생육은 칼이 아무리 잘 들어도 모양을 예쁘게 썰기 힘들기 때문에 좋은 퀄리티의 생육을 급냉해서 사용한다”며 “냉동 참치의 맛이 그대로 유지되듯 급냉해서 썰어낸 고기는 장기 냉동육에 비해 육즙 이탈이 적어 맛도 좋다”고 설명했다.
 
빠르고 간편하게 구워져…인건비도 절감
'잠수교집'은 공간이 좁아 테이블 사이로 직원 한 명이 간신히 지나다닐 정도다. 직원이 자주 왔다갔다 하며 테이블을 봐주는 대신 손님들이 자유롭게 고기를 구우며 시간을 즐긴다.

'잠수교집'은 공간이 좁아 테이블 사이로 직원 한 명이 간신히 지나다닐 정도다. 직원이 자주 왔다갔다 하며 테이블을 봐주는 대신 손님들이 자유롭게 고기를 구우며 시간을 즐긴다.

두꺼운 삼겹살은 맛있게 굽기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각 면을 태우지 않으면서 속까지 충분히 익히고 먹기 좋은 크기로 반듯하게 자르는 일은 나름의 ‘기술’이 필요하다. 테이블마다 담당 종업원이 붙는 서비스가 생길 수밖에 없다.
두께 5mm 내외인 냉삼은 불판에 올리자마자 빠르게 익는다. 한쪽 면이 다 익었다 싶을 때 한 번만 뒤집으면 금세 먹을 수 있다. 각 테이블마다 인력이 투입될 필요가 없다. ‘경성골목집’ 배수빈 대표는 우후죽순 생겨나는 냉삼집들에 대해 “임금 체제나 임대료 문제 등으로 열악해진 외식업 구조가 반영된 것은 틀림없다”고 말했다. ‘랭돈’은 직원들이 첫 테이블 세팅까지만 하고 이후엔 손님들이 셀프바를 이용하도록 했다. 강남 지역의 높은 임대료와 식재료 단가 등을 고려한 결정이다. 송호상 매니저는 “얇게 썬 냉동고기는 굽기가 쉬워 손님들이 직접 굽더라도 큰 어려움이 없는 편”이라고 말했다.
 
글·사진=백수진 기자 peck.soo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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