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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276개 기업의 대주주 … “기관투자가 간섭, 기업 이익 증대에 도움 안 돼”

중앙일보 2018.05.31 00:56 종합 6면 지면보기
국민연금이 대한항공에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하겠다고 나서자 재계는 크게 긴장하고 있다. 정부 입김이 작용할 수 있는 국민연금이 개별 기업의 의사 결정에 시시콜콜 개입하면 경영 자율성이 크게 훼손될 수 있어서다.
 

“정권 성향 따라 연금사회주의 우려”

재계에 긴장감이 급속히 퍼지는 것은 국민연금의 투자 규모와 무관치 않다.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시장에 131조원(2018년 1분기 말 기준)을 투자하고 있다. 투자 내역을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는데 이 자료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국내 기업만 276개에 달한다. 업종도 전기·전자부터 통신·화학·유통·금융·보험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업종별 우량기업에는 대부분 대주주로 참여하고 있다. 삼성전자(9.5%), SK하이닉스(9.9%), 현대차(8.4%), 네이버(10.8%), LG화학(9.1%), 신한지주(9.6%) 등에서 국민연금은 1대 또는 2대 주주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재계의 우려는 ‘자율성’과 ‘효율성’의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한국경제연구원 유정주 기업혁신팀장은 “주주가 기업의 잘못에 대해 정보 공개를 요구하고 지적에 나서는 것은 권리지만 국민연금은 일반인이나 기관과는 다른 대주주”라고 말했다. 정부가 기금 운용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정권의 성향에 따라서는 연금이 기업을 지배하는 ‘연금사회주의’에 빠질 수 있다는 얘기다. 유 팀장은 “그간 국민연금이 의결권 행사에 대해 주로 중립 의견이나 신중한 입장을 견지한 것도 가급적 기업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려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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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의 주주권 적극 행사가 기업 경쟁력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서도 재계는 의문을 갖고 있다.  
 
이병태 KAIST 경영학과 교수는 “기관투자가의 경영 간섭이 기업 이익 증대에 도움이 된 사례는 국내외에서 찾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기업인의 경영권 강화 제도가 없어 국민연금의 힘이 상대적으로 강해진다는 지적도 내놓는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국민연금 찬성하에 합병하고, 현대차가 국민연금의 찬성을 확신할 수 없게 되자 지배구조 개편안을 포기한 것은 국내 기업이 이미 국민연금에 종속되기 시작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런 상황에서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면 기업 자율성은 크게 훼손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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