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기를 끄는 식당이나 카페에 가보면 ○○상회, △△당 같은 옛날식 이름을 사용하고 개화기에나 사용했을 법한 글씨체와 디자인의 간판을 단다. 실내를 꾸민 인테리어는 물론이고 메뉴판과 그릇 역시 복고 일색이다. SNS에선 ‘서주우유’ ‘크라운’ ‘펲시콜라’ 등 추억의 상표가 찍힌 1980~90년대 로고컵 사진들이 인기다. 흥미로운 건 이 복고 열풍을 즐기는 주체가 10~20대라는 점이다. 한 번도 직접 써본 적 없는, 할머니 시대의 소품과 분위기에 이들은 지금 흠뻑 빠져 있다. 이른바 ‘뉴트로(new-tro)’ 취향이다. 글=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사진=우상조 기자 woo.sangjo@joongang.co.kr
new-tro
드라마·패션에 불던 ‘복고 트렌드’ 이젠 맛집으로
1980년대 그릇·소품 이용한 ‘핫 플레이스’ 인기

1940년대 지어진 낡은 건물에 들어선 ‘커피 한약방’(서울 중구 을지로2가)은 오래된 자개장으로 음료 카운터를 꾸며 유명해졌다. 처음엔 인근에서 가게를 하는 60~70대 사장님들이 주로 찾아왔지만, 지금은 SNS용 사진을 찍기 위해 멀리서 찾아온 20~30대 손님들로 북적인다.
밀레니얼 세대 유혹하는 ‘복고상권’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있는 ‘도산분식’. 초록색 플라스틱 접시에 담긴 음식과 델몬트 주스 물병은 SNS에 가장 많이 올라오는 인기 아이템이다.

복고풍 간판을 내건 냉동 삼겹살집 ‘행진’(서울 마포구 합정동).

서울 종로구 익선동에 있는 복고풍 간판들.
트렌드 분석가인 이향은 성신여대 교수(서비스디자인공학과)는 이런 문화현상을 새로움을 뜻하는 ‘뉴(new)’와 복고를 뜻하는 ‘레트로(retro)’를 합쳐 ‘뉴트로(new-tro)’란 말로 정의했다. 그는 “복고는 중장년층에겐 추억을 떠올리고 향수를 느끼게 해주지만, 20대 젊은 층엔 처음 접해 보는 신선하고 새로운 문화”라며 “특히 과거의 것을 그대로 차용하지 않고 새로운 감각을 더한 모습은 밀레니얼 세대에게 더 매력적으로 다가간다”고 설명했다.
자개장 인테리어, 추억의 로고컵 주목

강윤석(49) 커피한약방 대표는 “오래됐지만 공예품으로 손색 없는 자개장이 그냥 버려지는 게 안타까워 한국적인 빈티지 인테리어를 시도했다”며 “처음엔 과거의 향수를 찾는 60~70대 손님이 많이 오셨지만 지금은 오히려 20~30대 젊은 친구들이 더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익선동에 있는 레스토랑 ‘익동정육점’ 역시 자개장 인테리어로 입소문이 났다. 자개장 문으로 벽을 장식하고, 서랍장을 홀 중앙에 놓고 메뉴판·물컵·냅킨 등을 올려놓는 테이블로 활용한다.

서울 마포구 망원동 카페 ‘오늘의 위로’ 실내 소품인 오래된 브라운관 TV.

젊은 감각의 현대적인 메뉴와 옛 모습을 간직한 빈티지 그릇의 조합은 뉴트로 컨셉트의 카페·식당의 인기를 높여주는 요인이다. 왼쪽부터 익선동 한옥 카페 ‘서울 커피’에서 내놓는 커피와 앙버터(단팥·버터를 넣은 빵), 델몬트 주스병을 사용한 물병, 복고 느낌이 물씬 나는 미란다 음료수와 로고컵들.
이처럼 오래된 아날로그 추억을 느끼려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관련 제품 판매도 늘었다. 올해 1~4월 G마켓에서 ‘복고·레트로’가 제품명에 언급된 리빙용품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563% 증가했다. 이진영 G마켓 리빙레저실 실장은 “홈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은 신혼부부와 1인 가구를 중심으로 식기와 그릇, 가전제품까지 복고풍 리빙용품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신기하다” vs “촌스럽다”
우선 응답자의 71.7%(287명)가 로고컵 등 복고풍 리빙용품과 복고 맛집에 대해 호감을 표시했다. ‘새롭다(35.2%)’ ‘신기하다(32.0%)’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촌스럽다(5.5%)’ ‘구식이다(5.7%)’ 등의 의견도 존재했다.
![음료 상표가 새겨진 로고컵은 예전엔 무료증정하는 사은품이었지만 요즘은 없어서 못 구하는 인기 소품이 됐다. [사진 퐁당상회]](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805/31/96303503-63be-4305-bb4e-e959c4c6cbb1.jpg)
음료 상표가 새겨진 로고컵은 예전엔 무료증정하는 사은품이었지만 요즘은 없어서 못 구하는 인기 소품이 됐다. [사진 퐁당상회]
실제로 현장에서 만나보니 젊은 층은 현대적인 감각을 더해 진화한 뉴트로가 온전한 옛것보다 받아들기가 쉽다는 반응이다. 익선동에서 만난 대학생 최윤주(23·송파구 잠실동)씨는 “처음 접해보는 디자인과 분위기가 신기하지만 드라마 등을 통해 한 번쯤 본 적 있는 것들이라 친근함도 든다”고 했다. 도산분식에서 만난 대학원생 방지윤(26·경기도 광명시)씨는 “네온사인과 영문으로 된 창문 레터링이 감각적이고 또 여느 분식집엔 없는 돈가스 샌드, 홍콩 토스트 같은 메뉴가 있어 흥미가 생겼다”고 말했다. 창화당에서 만난 50대 김화순(마포구 합정동)씨는 “어릴 때 기억이 떠올라 재미있지만 만약 낡고 지저분한 장소였다면 호감이 안 생겼을 것”이라고 했다.
책 『맥락을 팔아라』의 저자인 브랜딩 전문가 정지원 대표(제이앤브랜드)는 “지금 성공적인 카페·식당에서 보이는 뉴트로 문화의 특징은 공간과 소품 등 하드웨어만 옛 것일 뿐, 음식 메뉴나 서비스 방식 등의 소프트웨어는 최신”이라며 “기성세대에는 추억과 향수를, 젊은 세대에는 새로운 스토리와 감각을 충족시켜준다”고 분석했다.
글=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사진=우상조 기자 woo.sangj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