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I

아무리 AI스피커가 말동무해주는 세상이라지만

중앙일보 2018.05.30 07:02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15)
시장에 가면 엄마 눈에는 제 자식 물건만 보인다고 하지만 할머니가 되면 제 자식은 2번으로 밀려나고 손주 물건만 보인다고 한다. 가만히 누워 방긋 웃기만 하고 뒤집기만 해도 주위 모든 이들에게 엔도르핀을 만들어 주는 아이는 평생 할 효도를 다 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당연히 혼자 사는 내 집에도 내 물건 보다 손주들의 장난감이 더 많다. TV에도 게임기가 연결 상태로 있고 또 컴퓨터와 핸드폰의 많은 용량을 게임이 차지하고 있다. 아직 초등학교도 안 간 녀석들이 작은 손가락으로 어찌나 잘 두드려 대는지 신통방통하다. 며칠 전 친구 집에 갔더니 지인이 선물로 줬다는 인공지능(AI) 스피커를 자랑했다.
 
신통방통한 AI 스피커 
친구 집에 갔더니 대화도 가능하고 묻는 것에 대답도 해주는 인공지능(AI) 스피커가 있었다. [중앙포토]

친구 집에 갔더니 대화도 가능하고 묻는 것에 대답도 해주는 인공지능(AI) 스피커가 있었다. [중앙포토]

 
이 녀석은 사람과 대화를 하며 묻는 것에 소식도 주고 답도 주는데 날씨도 뉴스도 묻기만 하면 척척이란다. 거기에 나 지금 심심하다고 하면 구구단 외우기나 끝말잇기를 하자며 놀아도 주고, 마음이 울적하다고 하면 조용한 음악을 틀어주며 잠을 재워 주기도 한단다. 그래서 신세계를 보듯이 순간 자신이 사람이 아닌가 하는 멍청한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강아지가 사람의 친구가 돼 반려견으로 등급이 높아진 것처럼 이 물건도 언젠가는 지위가 격상할 것이라고 나름 전망한다.
 
오늘 97세 되신 이웃 어르신 댁을 방문하니 아들이 혼자 심심할 때 친구 하라며 사줬다는 AI 스피커를 보여줬다. 그러면서 자꾸 대꾸해 막 욕을 해줬다면서 웃는다. “하루하루가 너무 신기해서 죽기 싫다”는 97세의 정정한 어르신 말이 빈말이 아닌 것 같다. 과학과 기술이 가져다주는 세상 변하는 속도를 따라가기 힘들다.
 
어려운 환경 속에 삶의 고비고비를 넘기며 살다 보면 한이 맺힐 수 있다. 그러나 이 어르신은 변화를 따라가며 즐거이 살아서인지 긍정적인 마인드가 묻어난다. 이 물건을 보고 있자니 결혼 안 한 외로운 젊은이가 좋아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곧 어느 영화에서처럼 키는 얼마에 어떤 유형의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하면 입체인형이 나타나 데이트도 하고 사랑도 할 날이 올 것 같다.
 
AI 스피커 거부하는 딸네 
손주들 주려고 딸에게 AI 스피커를 가져다줬더니, 아이들이 한창 뛰어놀아야 할 시기에 '사람 로봇'이 되어가는 것 같아 TV와 폰을 다 감춰놨다고 한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손주들 주려고 딸에게 AI 스피커를 가져다줬더니, 아이들이 한창 뛰어놀아야 할 시기에 '사람 로봇'이 되어가는 것 같아 TV와 폰을 다 감춰놨다고 한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집에 돌아오자마자 나도 한 개 주문해 딸네 집에 가져다주었다. 호들갑을 떨며 좋아할 줄 알았던 딸이 포장도 풀지 않고 우리 집에 가져다 놓고 애들 봐 줄 때나 써먹으란다. 안 그래도 TV에, 휴대폰에 눈이 팔려 한참 뛰어놀아야 할 시기에 멍청하게 ‘사람 로봇’이 되어 가는 것 같아 TV와 폰을 다 감춰놨다고 한다.
 
“우리 아이들은 사람 눈을 쳐다보며 대화하는 인간으로 키울 거야”라는 딸이 대견해 집에 갖고 와 포장도 열지 않고 처박아 두었다. 아무렴 아무리 멋진 말로 멋진 대답을 해준다 한들 사람의 눈을 보고 하는 대화만 할까. 분명 따라가야 할 문명의 시대지만 때론 한방에서 뒹굴며 이런저런 대화로 밤새 떠들던 사람과의 정이 그립다.
 
오후에 TV를 점검하러 온 기사가 최신 리모컨을 교환해 주며 방법을 설명해줬다. “자 어머님, 이젠 손가락으로 채널을 안 눌러도 되고요. 여기에 말씀만 하면 돼요. 채널 내려, 채널 올려 하면 채널이 알아서 넘어가 준답니다. 좋은 세상이지요? 하하.” 순간 그 기사도 로봇 인간으로 보여 혼자서 웃었다.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sesu323@hanmail.net
 
관련기사
공유하기
송미옥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필진

[송미옥의 살다보면] 요양보호사 일을 하다 평범한 할머니로 지낸다. 지식은 책이나 그것을 갖춘 이에게서 배우는 것이지만, 인생살이 지혜를 배우는 건 누구든 상관없다는 지론을 편다. 경험에서 터득한 인생을 함께 나누고자 가슴 가득한 사랑·한·기쁨·즐거움·슬픔의 감정을 풀어내는 이야기를 쓴다. 과거는 억만금을 줘도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다는 말처럼 이웃과 함께 남은 인생을 멋지게 꾸며 살아보고자 한다.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