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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기의 시시각각] 트럼프의 ‘디스 이즈 어 굿맨(This is a good man)’

중앙일보 2018.05.30 01:11 종합 30면 지면보기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친애하는 위원장’. 이렇게 트럼프의 편지는 시작한다. 미국인 기자 친구는 “아름다운 영어”라고 했다. 하지만 오바마 정부에서 국무부 차관을 지낸 웬디 셔먼은 “열세 살짜리 애가 쓴 것 같다”고 깎아내렸다. 양론이 있지만, 내가 보기엔 ‘적당한 협박을 섞으면서도 상대가 곁을 떠나지 못하게 하는’ ‘선수’의 연애편지였다. 허핑턴포스트는 이를 다음과 같이 리라이팅(다시 쓰기)했다.
 

한·미 관계 불신감 표출한 트럼프
‘솔직·공평’ 중재자 원칙 충실해야

“은아, 맘이 너무 아프지만 이렇게 화내는 너를 보니 12일에 만나는 건 무리일 것 같아. 안 만나는 게 서로를 위해 좋을 것 같아. (중략) 행복할 수 있는 기회를 우리 모두가, 특히 네가 놓친 거야. 언젠가 만날 수 있겠지? 혹시 맘이 바뀌면 언제라도 전화나 편지 줘. -트럼프 오빠가.”
 
이 편지 한 장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시쳇말로 ‘깨갱’했다. 하루도 안 돼 문재인 대통령에게 SOS 요청을 하고 나섰으니 말이다. ‘트럼프 오빠’가 볼 때는 상대방(김정은)은 ‘한 방(핵)’은 있을지 몰라도 아직 어리숙한 ‘애’로 보였는지 모른다.
 
그럼 우리는 지금 워싱턴에서 어떤 존재일까. 남북 정상회담 때문에 가려졌지만 일주일 전 워싱턴에서의 한·미 정상회담은 불편한 한·미 관계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날 트럼프 표정에는 조롱·불쾌감·거만함이 역력했다. 문재인 대통령을 가리키며 “디스 이즈 어 굿맨(This is a good man)”이라고 했다. 일국의 대통령 면전에서 쓸 표현이 아니다. 2001년 부시가 김대중 대통령에게 “디스 맨(this man, 이 사람)”이라고 불러 논란이 됐던 것과 다를 게 없다. 습관적 표현인가 해서 시진핑·아베와 만났을 때의 트럼프 발언을 다 찾아봤다. 그런 표현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작정’을 하고 회담에 임한 것으로밖에 해석이 안 된다. 그런데도 우리 언론은 “이 정도로 (당신을) 칭찬했으니 나 잘했지? A플러스(A+) 받아도 되지?”라고 트럼프가 너스레 떤 것을, “트럼프가 문 대통령의 중재자 역할에 A+를 줬다”고 보도했다. 워싱턴과 서울의 ‘체감 한·미 관계’가 차이 날 수밖에 없는 이유이자 어이없는 현실이다.
 
미국의 불만은 대충 이런 것이다. 한국이 전하는 말과 북한에 듣는 말이 다르다. 북한과 직거래하려 하는데 한국은 늘 숟가락을 얹으려 한다. 한국은 동맹(미국)보다 북한을 중시한다. 정보가 샌다. 당사국도 아니면서 ‘99.9% 북·미 회담 성사’ 같은 쓸데없는 말만 한다. 이런 의구심과 불신이 북·미 회담 취소 발표 때의 ‘코리아 패싱’으로 드러났다. 정상이 회담한 지 이틀도 안 돼 바로 사전 통보 없이 뒤통수를 친 것은 동맹 60년사에 전례 없는 일이다.
 
이런 수모를 당해도, 미국이 원치 않는다고 해도 우리의 숙명이 ‘중재’라면 해야 한다. 별도리가 없다. 다만 ‘솔직함’과 ‘공평함’이란 중재의 원칙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문 대통령은 통일각 남북 정상회담에서 ‘조·미 정상회담’이라 표현했다. 방명록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썼다. 청와대는 “북한에 가선 그쪽 언어를 써주는 게 통상적 예우”라고 설명했다. 과연 그럴까. 지난 22일 워싱턴에 온 문 대통령이 ‘미·북 정상회담’이라 말하는 걸 단 한 차례도 듣지 못했다. 정상회담 회견 내내 ‘북·미 정상회담’이라고 했다. 우리 통역만 열심히 ‘미·북’으로 순서를 바꿨다. 청와대가 말한 ‘상대방 예우’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오해도 계속 자초하면 의도가 되는 법이다. 지금보다 한층 더 긴박해질 ‘싱가포르 후’의 한·미 관계, 중재자 역할을 생각하면 일거수일투족에 보다 세심할 필요가 있다.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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