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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사법부 수사 저울질 … 전·현 대법원장 충돌하나

중앙일보 2018.05.30 00:31 종합 14면 지면보기
김명수 대법원장이 29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으로 출근하며 차량에서 내리고 있다. [연합뉴스]

김명수 대법원장이 29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으로 출근하며 차량에서 내리고 있다. [연합뉴스]

“신중하게 대책을 마련하겠다. 모든 것은 열려있다”
 

블랙리스트 3차 조사 후폭풍
김명수 이틀째 “모든 것 열려있다”
‘고발 → 적폐 수사’ 이어질지 주목
전·현 대법관들 조사 대상 될 수도

‘사법부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한 3차 조사 결과 발표 이후 후속조치와 관련해 김명수 대법원장은 29일 출근길에서 이렇게 말했다. 전날 “그런 부분(검찰 고발)까지 모두 고려하겠다”며 사법행정권 남용의 책임을 물어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 간부들을 검찰에 수사의뢰할 가능성을 시사한 데 이어 이틀째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여기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도 30일 기자회견을 열고 양 전 대법원장 등 관계자들을 검찰에 고발키로 했다.
 
검찰 수사 가능성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검찰 내부에서도 “지난 1월 2차 조사 결과가 나왔을 때와는 분위기가 확 다르다”는 얘기가 나온다. 당시 검찰이 수사에 나설 조짐을 보이자 김 대법원장은 ‘사법부 내부의 힘’으로 해결할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진보·보수 성향의 시민단체들이 각각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김명수 대법원장을 고발한 사건을 들고 있는 검찰 역시 사법부 독립 침해 논란 등을 우려해 본격 수사를 자제해왔다. 하지만 김 대법원장의 입장이 4개월여만에 ‘내부 수습’에서 ‘고발 검토’로 바뀌면서 검찰도 대비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문제의 고발사건은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수사부(부장 김성훈)에 배당돼 있다.
 
검찰 관계자는 이날 “김 대법원장이 향후 어떤 입장을 발표할 지 지켜본뒤 스탠스를 정할 수 밖에 없다”며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준비중”이라고 말했다. 특히 김 대법원장이 검찰 수사 쪽을 택한다면 현 정부가 밀어붙여온 전 정권의 비위, 즉 ‘사법부 적폐 수사’라는 모양새를 띨 수 밖에 없다. 수사의 키를 쥐고 있는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국정농단 사건 등 이른바 ‘적폐 수사’를 진두지휘해 온 점에 비춰 막상 수사가 이뤄지면 엄청난 파장이 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일단 유력 피고발 대상자로는 사법행정 책임자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 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현 대법관), 박병대 전 행정처장(전 대법관),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 등이 꼽힌다. 임 전 차장이 작성 또는 전달받은 문건이 행정처장을 거쳐 양 전 대법원장에게 보고됐는지가 밝혀져야 할 부분 중 하나다.
 
논란이 되고 있는 ‘재판 흥정’ 의혹의 경우 그 불똥이 전·현직 대법관으로 튈 가능성도 있다. 관련 문건에는 사법부의 청와대 ‘협력 사례’로 ‘이석기, 원세훈 사건’ ‘KTX 승무원, 정리해고 사건’ 등 대법원 판결이 나열됐다. 일각에선 양승태 사법부가 상고법원 관철을 위해 청와대와 교감, 대법원 판결에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냐고 의심했다. 하지만 특조단은 “재판 이후 작성된 문건으로 실제 선고에 영향을 미치진 않은 것 같다”고 결론지었다. 29일 오전 KTX 해고승무원들은 김 대법원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대법원 2층 대법정 안까지 집입하기도 했다. 시위 참가자들이 대법정에 진입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건을 파기환송한 2015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전교조 시국 사건과 관련해 유죄를 선고한 2012년 전원합의체 판결 등이 수사선상에 포함될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해 지난 1월 대법관 13인은 추가조사위가 원세훈 사건에 대한 청와대 교감 의혹이 담긴 보고서를 내놓자 “외압은 없었다”는 취지의 성명서를 발표하며 반발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직권남용, 업무방해죄 적용 여부가 사법부 블랙리스트 수사의 쟁점이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있을 지를 놓고는 판사들 사이에서조차 의견이 엇갈린다. 서울지방변호사회장을 지낸 김한규 변호사는 “과거 박근혜 정부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 당시 판단의 핵심 쟁점은 실제 인사 조치 등 불이익이 이뤄졌느냐였다”면서 “이번 사안의 경우 단순히 문건만 작성됐다면 직권남용 등 적용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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