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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이탈리아 남자의 정치적 결별…유럽 금융시장 흔들다

중앙일보 2018.05.30 00:02 경제 2면 지면보기
세르지오 마타렐라 대통령(左), 주세페 콘테 전 총리 지명자(右). [연합뉴스]

세르지오 마타렐라 대통령(左), 주세페 콘테 전 총리 지명자(右). [연합뉴스]

두 남자의 충돌이 유럽 대륙을 뒤흔들 기세다. 세르지오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과 주세페 콘테 전 총리지명자가 한 판 붙었다. 겉으로는 내각 구성에 대한 이견에서 빚어진 충돌이지만 유럽연합(EU)을 둘러싼 국내 갈등이 대립으로 치달으며 유로존을 뒤흔들고 있다.
 

이탈리아 정치위기 유럽 경제위기로?
포퓰리즘 연정이 내세운 반EU 콘테
친EU 마타렐라 대통령과 인사 충돌
임시내각 이후 연정 측 재집권 유력

이탈리아 채권값, 유로화 급락에
유로존 약한고리 스페인·포르투갈
국채금리 오르며 위기 확산 조짐

친 EU파인 마타렐라 대통령과 반EU파를 대표하는 콘테의 충돌은 예견됐다. 지난 3월 총선에서 단일 정당으로 최대 의석을 확보한 포퓰리즘 정당 오성운동과 반이민 극우 성향의 동맹당(레가)이 연정을 꾸리고 피렌체대 교수인 콘테를 23일 총리 후보로 지명했다.
 
마타렐라와 콘테의 불편한 동거는 오래가지 못했다. 콘테가 꺼낸 ‘사보나 카드’ 탓이다. 콘테는 내각을 꾸리며 경제부 장관에 파올로 사보나 전 산업부 장관을 추천했다. “이탈리아의 EU와 유로존 가입이 역사적 실수”라고 할 정도로 체제에 대한 반감이 큰 인사다.
 
사보나의 등장에 투자자들은 놀랐다. 채권과 주식을 내다 팔기 시작했다. 국내총생산(GDP)의 6% 수준인 재정적자를 8%까지 높이고, 감세 규모를 늘리겠다는 새 정부의 정책이 마뜩잖았던 데다 유로존 탈퇴까지 이를 수 있다는 우려가 더해진 탓이다. 
 
이탈리아의 국가채무는 3월 말 기준으로 2조8381억 달러다. GDP의 131.2% 수준이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시장과 유로존 국가가 흔들리자 불안감을 잠재우려 마타렐라 대통령이 나섰다. 사보나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탈리아에서 총리는 대통령과 정당이 임명하고, 장관은 총리가 제안하는 방식으로 내각을 구성한다. 대통령은 총리의 정부 구성안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마타렐라의 일격에 콘테는 27일 총리직 전격 사퇴로 응수했다. 대통령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카를로 코타렐리 보코나대 교수를 과도 정부의 총리로 임명했다.
 
 국제통화기금(IMF)에서 근무하며 유럽 재정 위기 당시 공공지출 삭감을 주장해 ‘미스터 가위’로 불리는 인물이다. 9월에 치러질 총선까지 정부를 맡을 코타렐리가 내년도 예산안을 주무르게 됐다.
 
강공을 주고받은 양측이 숨을 고르고 있지만 앞으로가 더 문제다. 오성운동과 동맹당은 대통령의 탄핵을 주장하며 다음달 2일 대규모 집회를 예고하고 있다. 현재 이탈리아 국내 분위기를 감안하면 9월에 치러질 총선에서 두 정당의 영향력은 더 강화될 전망이다. 
 
아일라 미흐 탄게은행 애널리스트는 “새롭게 치러지는 총선에서 (반EU) 성향의 오성운동과 동맹당의 힘이 더 커질 수 있는 만큼 금융 시장의 불안은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시장은 이미 요동치고 있다. 투자자들이 투매에 나서며 채권값은 급락(채권 금리 상승)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28일(현지시간) 이탈리아 2년물 국채금리는 0.4% 포인트 오르며 0.98%에 거래를 마쳤다. 하루 상승폭으로는 2012년 중반 이후 최고치다. 이탈리아 10년물 국채 금리도 이날 하루 0.24%포인트 상승한 2.684%에 장을 마감했다.
 
위기를 틈타 수익을 노리는 헤지펀드는 시장 불안감을 부채질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지난 18일 현재 헤지펀드의 이탈리아 국채에 대한 공매도 규모는 328억 달러(약 35조원)에 달했다. 세계금융위기이던 2008년 말 이후 최고치다. 이탈리아 국채 가격의 추가 하락에 베팅한 것이다.
 
시장 심리 지표로 여겨지는 이탈리아와 독일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차(스프레드)도 2%포인트를 넘어섰다. 투자자가 안전하게 여겨지는 독일 국채로 몰리며 금리차가 2014년 중반 이후 최대치로 벌어졌다. 유로화 가치도 28일(현지시간) 0.22% 떨어지며 최근 7개월 만에 가장 큰 낙폭을 기록했다.
 
‘이탈리아발 충격파’에 가장 먼저 경고등이 커진 곳은 유럽 은행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유럽은행의 경우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에 빌려준 돈(익스포저)이 상당한 만큼 이들 국가의 위기는 유럽 은행의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포르투갈과 스페인 등 유로존의 약한 고리다. FT는 “이탈리아의 충격이 대출 시장을 통해 유로존의 주변국으로 번져갈 수 있다”고 전했다. 
 
이미 시장은 흔들리고 있다. 28일(현지시간) 스페인의 10년물 국채금리는 0.06%포인트 오른 1.5%까지 상승했다. 포르투갈의 10년물 국채금리도 0.1%포인트 상승하며 2.01%를 기록했다.
 
긴축으로 방향을 틀고 있는 유럽중앙은행(ECB)도 이탈리아발 위기에 발목이 잡힐 수 있다. 이탈리아의 무정부 상태가 이어지고 9월 총선까지 사태가 진정되지 않으면 유로존의 위기가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레드릭 두크로젯 픽테드 자산운용 이코노미스트는 “올해 말 양적완화(QE)를 끝내려는 ECB가 이탈리아 발 위기로 인해 돈줄을 죄는 시기를 미룰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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