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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풍향계] “인물은 박성효인데 당은 민주당이라 고민”

중앙일보 2018.05.29 16:34
역대 대전시장 선거에선 여당이 고전하는 경우가 많았다. 2014년 6회 지방선거까지 여당 후보가 대전시장에 당선된 건 1998년 자민련(당시 공동여당) 홍선기 후보밖에 없다. 하지만 이번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6·13 지방선거 후보등록 첫날인 지난 24일 오전 대전시장 예비후보 4명이 후보등록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허태정, 자유한국당 박성효, 바른미래당 남충희, 정의당 김윤기 후보. [연합뉴스]

6·13 지방선거 후보등록 첫날인 지난 24일 오전 대전시장 예비후보 4명이 후보등록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허태정, 자유한국당 박성효, 바른미래당 남충희, 정의당 김윤기 후보. [연합뉴스]

 
중앙일보 조사연구팀이 지난 18~23일 실시한 대전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허태정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44.4%로 24.4%인 박성효 자유한국당 후보를 20.0%포인트 앞섰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그러나 대전은 방심했다간 큰 코 다치기 쉬운 곳이기도 하다. 충청권은 영·호남과 달리 정치적 색채가 뚜렷하지 않고, 신도심을 중심으로 외부 유입 인구가 많아 각종 변수에 표심이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2006년 지방선거에서 높은 지지율을 구가하던 여당 후보가 막판 변수에 석패한 전례가 있다. 선거 11일을 남겨놓고 ‘커터칼 테러’을 당한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수술 후 “대전은요?” 한마디로 판세를 뒤집었다. 당시 염홍철 열린우리당 후보를 2.7%포인트 차이로 누른 사람이 현재 한국당의 박 후보다.
 
6·13 지방선거를 17일 앞둔 지난 27일 대전 둔산동 신도심의 한 거리를 사이로 허태정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박성효 자유한국당 후보의 대형 현수막이 마주 걸려있다. 하준호 기자

6·13 지방선거를 17일 앞둔 지난 27일 대전 둔산동 신도심의 한 거리를 사이로 허태정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박성효 자유한국당 후보의 대형 현수막이 마주 걸려있다. 하준호 기자

 
지난 27일 대전지하철 1호선을 타고 동서를 횡단하며 대전 민심을 살폈다. 시민 다수는 “몇 번을 찍을 것이냐”는 질문에 검지 손가락 하나를 펴보였다. 민주당을 지지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민주당 후보가 누군지 아느냐”는 질문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반면 박 후보의 이름은 익숙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대전 출신 공무원으로 오랫동안 시정에 관여해온 데다가 민선 4기 시장을 지낸 경력 덕분이다. 결국 대전은 당과 인물의 싸움이란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대전역에서 만난 박모(70)씨는 “서울에서 부는 대통령과 민주당 지지 바람이 대전에도 불 것”이라면서도 “이름도 모르는 민주당 후보보다는 인지도 높은 박성효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둔산동에서 손님을 기다리던 택시기사 김혜숙(63)씨는 “유성구청장(민주당 허 후보)이 대전시장에 도전한다는 얘기를 듣긴 했는데, 그 사람이 구청장 때 뭘 했는지 모르겠다”며 “하지만 박 후보는 대전에서 부시장과 시장을 지내며 풍부한 시정 경험을 쌓은 인물이라 믿음이 간다”고 말했다.
 
허태정 더불어민주당 대전시장 후보가 지난 17일 오후 대전 서구 허후보의 선거사무실에서 열린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허태정 더불어민주당 대전시장 후보가 지난 17일 오후 대전 서구 허후보의 선거사무실에서 열린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반면 충남대 앞 상가에서 안경점을 운영하는 전인교(37)씨는 “후보 이름은 박성효 정도만 안다”면서도 “이번 선거에서는 인물보다는 여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 그래야 현 정부가 성공하고, 현 정부의 성공은 나라 전체의 성공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주변에서도 당과 인물을 두고 저울질을 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대전정부청사역 인근에서 만난 조덕제(34)씨는 “민주당 후보를 찍을 예정”이라며 “박 후보가 경험이 많은 건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한국당 소속인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동서에 따라 보수·진보가 갈리는 대전 특유의 정치 지형이 이번 선거에는 어떻게 작용할지도 주목된다. 구도심인 동구·중구·대덕구는 보수 색채가, 상대적으로 젊은 층이 많은 신도심인 서구·유성구는 진보 색채가 강하다. 20대 국회 의석도 대전의 중심을 지나는 갑천과 유등천을 사이로 갈렸다. 하지만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퇴진 이후 보수 정당 지지율이 좀처럼 반등하지 못하는 게 변수가 될 수 있다.
 
박성효 자유한국당 대전시장후보가 지난 24일 오후 대전 서구 선거사무실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남충희 바른미래당후보와 단일화를 제안하고 있다. [뉴스1]

박성효 자유한국당 대전시장후보가 지난 24일 오후 대전 서구 선거사무실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남충희 바른미래당후보와 단일화를 제안하고 있다. [뉴스1]

 
동구 판암동에서 만난 정모(49)씨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 사건으로 민주당 지지율이 많이 떨어질 거라고 예상했지만, 그보다 한국당 홍준표 대표의 막말로 민심을 잃는 속도가 더 빠른 거 같다”며 “홍 대표의 직설 화법과 거친 언사가 대전의 정서와는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전중앙시장에서 족발집을 운영하는 염인택(51)씨는 “진보주의자라 민주당을 지지하지만, 너무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박 후보가 시장 재임 시절 무난했다는 평가가 있긴 하지만 한국당은 싫다. 그래서 이번에는 바른미래당 후보를 밀어볼까 한다”고 했다.
 
한편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전에서 가장 이슈가 되는 건 후보들의 공약이 아니라 ‘발가락’이다. 허 후보는 오른쪽 발가락이 없어 군 면제 판정을 받았는데, 이를 두고 박 후보가 “병역 의무를 피하기 위해 자해한 것”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허 후보는 처음엔 “어떻게 다쳤는지 기억이 안난다”고 했다가 나중에 “공사 현장에서 사고로 절단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박 후보는 공세를 늦추지 않고 있다. 허 후보는 “무분별한 의혹 제기에 휩싸여 제대로 된 정책 대결을 하지 못하는 점이 안타깝다”고 했다. 그러나 박 후보는 “해명 과정에서 말이 달라지는데, 만약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라면 후보의 도덕성에 심각한 흠결이 있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유한국당 대전시당은 지난 27일 6·13 지방선거 선거대책위원회 발대식을 가졌다. 주요 당직자와 후보들이 허태정 더불어민주당 시장 후보의 병역 면제 의혹을 제기하며 자신의 발을 본떠 만든 석고모형을 들고 있다.[연합뉴스]

자유한국당 대전시당은 지난 27일 6·13 지방선거 선거대책위원회 발대식을 가졌다. 주요 당직자와 후보들이 허태정 더불어민주당 시장 후보의 병역 면제 의혹을 제기하며 자신의 발을 본떠 만든 석고모형을 들고 있다.[연합뉴스]

 
서구에 사는 대학생 오윤진(21)씨는 “정치나 선거에 큰 관심은 없지만, 유독 발가락만 이슈가 되는 건 좀 의아하다”고 말했다. 동구에서 꽃집을 운영하는 박정희(58)씨도 “아무리 군대에 가기 싫다고 해도 자기 발가락을 자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말했다. 다만 여비서 성폭행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지사와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실형 선고를 받은 권선택 전 시장에 이어 계속되는 여당 인사의 의혹 논란에 대해 대학생 박지헌(19)씨는 “내가 사는 곳의 시장은 털어도 먼지 한 톨 나오지 않는 청렴결백한 사람이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시민들은 “어느 후보가 시장이 되든 일자리 등 경제적 성과를 내지 못하면 언제든지 교체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통계청에 따르면 대전의 1인당 지역내생산(GRDP)은 2003년부터 2016년까지 전국 광역시·도 중 하위 4번째를 밑돌고 있다. 동구 주민 성창모(74)씨는 “중앙에서 자금을 끌어오지 못해 대전 경제는 항상 답보 상태”라며 “여당 시장이 나오면 그런 갈증을 해소해줄 거라는 기대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대전=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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