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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업신고 위해 번호표 뽑는 곳···길거리경제 최악, 강남이 운다

중앙일보 2018.05.29 15:09
정책 실패와 불황의 여파로 서울 강남에서도 상가가 비어간다.

정책 실패와 불황의 여파로 서울 강남에서도 상가가 비어간다.

 ‘2.4%와 4.3%’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조사한 지난해 하반기 서울지역 소상공인의 월평균 창업률과 폐업률이다. 100개 소상공인 점포 중 새로 생긴 게 2.4개지만 망한 가게가 4.3개란 얘기다. 서울은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 중 폐업률이 가장 높고,  창업률과 격차도 가장 큰 지역이다. 창업은 적게 하는데, 문을 닫은 소상공인이 많은 것이다. 
 
서울에서도 특히 사정이 나빠 보이는 곳이 서초구다. 창업률은 1.9%인데, 폐업률은 3배에 가까운 5.5%다. 폐업률로만 보면 중구가 6.1%로 가장 높지만, 창업률 또한 5.3%로 높다. 문을 닫는 곳이 많지만, 새로 문을 여는 곳도 적지 않은 지역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용산구의 경우 폐업률 5.8%, 창업률 2%로 서초구보다 격차가 더 크지만, 곳곳에 재개발과 대형 신축건물이 들어서는 곳이라 예외적인 현상으로 봐야 한다는 게 관련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창업·폐업률이 전국에서 가장 나쁜 서초구의 주요 상업지역 중 하나인 교대역 인근을 중앙일보가 지난 24일 현장취재했다. 이곳은 법원과 검찰청 등을 중심으로 법조타운이 형성돼 있고, 지하철 2호선과 3호선이 만나는 곳이라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이다.
 
거리를 돌아만 다녀도 서초동의 불황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동서로 뻗은 서초대로엔 '임대' 현수막을 내건 빌딩 여럿이 눈에 띄었다.  
 
서초대로변 남쪽의 신서초부동산에서 만난 한 공인중개사는“1년 전과 비교해서 가게를 내놓은 사람이 두 배 이상 많아졌다”며“더 큰 문제는 임대 가게가 5개라면 그중 1개도 안 나갈 정도로 장사하겠다는 사람이 적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경기가 나빠지니 상가 권리금도 30% 이상 빠졌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신서초부동산 옆 맥도날드 서울교대점은 문 앞에 ‘오전 7시~새벽 1시까지만 영업합니다’라는 안내 문구를 붙여놨다. 교대점은 최근까지만 해도 24시간 문을 여는 곳이었다. 서초대로에서 교대 방향으로 한 블록 들어간 곳에 자리한 국숫집은 올 1월부터 손님이 모니터를 보고 메뉴를 고르고 신용카드로 결제하고 주문까지 할 수 있는 식권 자판기를 도입했다. 대신 직원 한 명을 내보냈다. 
 
국숫집 주인은 “손님도 예전만큼 많지 않은데 최저임금까지 큰 폭으로 올라, 가게 유지가 쉽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서초대로를 건너 교대역 3번 출구 쪽으로 올라가니, 남쪽보다 상황이 더 심각했다. 아파트 e편한세상 옆의 6층 상가건물은 1ㆍ2층 전 층이 통째로 비어있다. 원래 씨티은행이 있던 자리였는데, 지점이 철수하면서 6개월째 새 임차인이 나타나지 않은 탓이다. 대로변 안쪽에도 빈 가게를 알리는‘임대’ 안내판은 곳곳에 붙어있었다. 간판이 사라져 회색 콘크리트가 드러난 한 상가 1층 유리창에는‘약’자 선명하다. 약국 주인은 두 달 전 경기도 평택의 신축 병원 건물로 이사했다.
 
약국 자리 옆 독일공인중개사무소 오영진 대표는 “이 일대 상가는 과거 권리금 붙어서 돌아가던 곳인데 1년 전부터 상가 1층 곳곳이 비기 시작했고 2층 이상 사무실 공간은 30%가 사실상 공실 상태”라며 “음식점의 경우 메뉴판 가격은 올랐지만, 찾아오는 손님들은 예전보다 더 싼 메뉴를 주문해 불황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서초구 바로 옆 강남구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2017년 하반기 월평균 창업·폐업률 통계에 따르면 강남구의 창업률은 2%에 그쳤지만, 폐업률은 5.3%에 달한다. 
 
강남세무서 관계자는 “폐업신고를 하기 위해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는 민원인들로 민원창구가 붐빈다”며 “건물주의 임대료 인상 요구 때문에 폐업하는 경우가 가장 많고 인건비 상승 등에 따른 사업 수익성 악화 때문에 문을 닫는 경우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상가정보연구소 이상혁 선임연구원은 “최저임금 인상과 임대료 상승 등 비용 증가 요인은 많아지는 반면 온라인 활성화와 관광객 감소 등의 영향으로 매출은 줄었다”며 “특히 강남이나 서초 등 임대료가 비싼 지역에서는 상가 재계약 시점에서 계약 연장 대신 폐업을 선택하는 경우가 늘고 있어 빈 상가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준호·함종선 기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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