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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의사들이 ‘문재인 케어’를 반대하는 이유

중앙일보 2018.05.29 01:40 종합 29면 지면보기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8월 초 ‘보장성 강화 정책’을 발표했다. ‘문재인 케어’로 불리는 이 정책의 핵심은 그동안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던 비급여 항목을 건보 적용을 받는 급여로 전환해 진료비 부담을 조금 더 낮추겠다는 취지다. 일견 좋은 정책으로 보인다. 건강보험료를 크게 올리지 않고서도 건강보험 혜택을 늘리겠다고 하니 환자 입장에서는 나쁠 것이 없다. 또 정부가 사용하는 공식 명칭인 ‘보장성 강화’라는 목표 역시 한국 사회에서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문 케어’는 보장성 강화와 무관
전면 급여화는 의사 전문성 박탈
국민의 의료 이용 선택권도 제한
단계적 점진적 확대가 바람직

문재인 케어가 건강보험 내실화를 기하면서 필수의료 등 우선순위를 정해 점진적으로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해 나가는 거라면 누가 이의를 달겠는가. 대한의사협회는 언뜻 좋아 보이는 문재인 케어에 대해 분명한 반대 입장을 갖고 있다. 지난 20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5만여명(경찰 추산 1만명)의 의사가 모여 반대 목소리를 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문재인 케어가 내세우는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는 보장성 강화와 별 관련이 없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들은 하나하나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어떤 것은 필수의료임에도 보험 재정의 한계 때문에 비급여로 남아 있다. 어떤 것은 비용보다 치료 효과가 기존 급여항목보다 우수하지 않아서다. 어떤 것은 치료 효과가 현저히 낮아 비급여로 분류돼 있다. 신의료 기술은 비급여로 일단 도입된 뒤  오랜 기간을 거쳐 급여화 여부가 결정되게 된다. 즉 비급여를 대폭 급여화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또 정부가 주장하는 3600개의 수많은 항목을 급여로 전환하는 것은 건보 재정에 막대한 부담을 초래한다. 게다가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는 의사라는 직업의 자유를 본질적 차원에서 박탈한다. 요약하면 비급여의 전면 또는 대폭 급여화는 해서도 안 되고, 할 필요도 없으며,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수십년간 해온 것처럼 필수적인 의학적 비급여를 점진적·단계적으로 급여화하는 게 바람직하다.
 
시론 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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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어떤 의료행위가 건강보험 적용을 받게 되면, 즉 급여화하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건보 재정은 제한돼 있기에 급여 기준이라는 것이 생기고, 그 기준에 부합할 때에만 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비급여를 무분별하게 급여화하면 이 제한된 급여 기준으로 인해 국민이 자신의 비용 부담으로 치료를 받고 싶어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국민의 의료이용 선택권이 제한을 받는 것이다. 급여 제한 때문에 의사도 원하는 치료를 하지 못할 수 있다. 의사의 의학적 원칙에 따른 진료 자율성을 침해하는 셈이다.
 
현 정부는 30조 6000억원을 투입해 문재인 케어를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의료비 경감에 따른 의료 이용 증가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추계다. 문재인 케어를 강행하면 건보 재정 적자가 대폭 생기고, 최악의 경우 파산까지 초래할 수 있다. 결국 국민이 엄청난 건강보험료를 부담해야 한다. 말 그대로 ‘건강보험료 폭탄’이 터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셋째, 한국 의료제도의 심각한 왜곡 현상은 낮은 수가에서 비롯된다. 급여 항목의 매우 낮은 진료비를 그대로 두고 문재인 케어를 강행한다면, 즉 비급여가 전면 또는 대폭 급여화된다면 병원급 의료기관의 50%는 수년 내 도산 또는 폐업할 가능성이 있다. 의원급 의료기관도 20~40%가 수년 내 도산·폐업할지 모른다. 이대로라면 정부에서 홍보하는 ‘병원비 걱정 없는 나라’를 만들려다 ‘병원 없는 나라’를 만들게 생겼다. 이는 곧 의료제도의 붕괴를 의미한다.
 
비급여를 무분별하게 전면 또는 대폭 급여화하는 것은 보장성 강화와 별 관련이 없다. 국민의 실손보험 가입률을 생각해 보면 이미 비급여의 의료비 부담은 대부분 해소돼 있다. 비급여는 현행대로 존치하면서 필수적인 의학적 비급여를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급여화 해가면 되는 것이다.
 
진정한 보장성 강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재정 투입을 늘려 건강보험의 내실화를 추구해야 한다. 국민을 설득해 건강보험료를 한국 경제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단계적으로 인상하고, 건보 재정에 국고 지원을 강화하는 등 충분한 재정을 확보해야 한다.
 
그래야만 의사들이 환자들에게 최선의 진료를 제공하고 안전한 의료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 적절한 진료비를 책정하고 필수의료·중증의료를 중심으로 보장성을 단계적으로 확대하며, 건보 재정을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지속가능한 의료제도를 담보할 수 있을 것이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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