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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 내홍 … 김명수 대법원장 “검찰 수사도 고려”

중앙일보 2018.05.29 00:55 종합 12면 지면보기
‘사법부 블랙리스트’의 후폭풍이 거세지고 있다. 지난 1월 ‘법원 스스로의 힘’을 언급하며 자체 해결 의지를 표명했던 김명수 대법원장이 이번엔 사상 초유의 사법부 수사까지도 배제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지난 25일 나온 3차 조사 결과에 대해 일부 판사들이 “검찰 고발”을 주장하고 나서면서 파문은 커지고 있다.
 

3차 조사 결과 나온 뒤 입장 밝혀
행정처장도 “수사 받을 수 있다”
양승태 등 전임 수뇌부가 대상
사법부 또 한번 소용돌이 가능성

김 대법원장은 28일 출근길에 ‘검찰에 수사를 맡길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그런 부분까지 모두 고려하겠다”고 답했다. 지난 25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특조단)’이 3차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형사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고 했던 것과는 다른 입장이다. 특조단장인 안철상 법원행정처장(대법관)도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검찰이) 수사할 상황이 된다면 충분히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임 사법부 수뇌부에 대한 검찰 수사가 이뤄질 경우 사법부는 다시 한번 소용돌이 속으로 빠질 가능성이 크다. 특조단 결과 발표 이후 법원 안팎에선 “불법행위 가능성을 확인하고도 검찰 고발 등 후속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반발이 나왔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인적 조사가 무산된 것에 대해서도 비판이 제기됐다.
 
특조단의 애매한 처신이 혼란을 부채질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조단은 앞서 양 전 원장 시절 작성된 판사 동향 파악 문건, 청와대 교감 의혹 문건 등을 추가로 공개했다. 하지만 “인사 불이익 등이 이뤄졌는지 인정할 근거가 없고, 형사 책임은 묻지 않기로 했다”고 결론 내렸다. 논란이 커지자 특조단은 28일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인사 불이익을 인정할 근거가 없다는 판단에 대해 “인사총괄심의관실의 회신을 바탕으로 판단을 내렸다. 일부 판사 명단 자료 등은 인사기밀이라 회신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또 의혹과 관련이 있는 대법관 등을 조사하지 않은 데 대해선 “문건에 관련 내용이 나왔다고 해서 현직 대법관 등을 조사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고 했다. 한 특조단 관계자는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유죄를 단정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어 형사 책임을 제기하지 않은 것으로 면죄부를 주는 결정은 아니다”고 말했다.
 
앞서 특조단은 양 전 원장 시절 행정처가 상고법원의 입법을 놓고 박근혜 정부 청와대와 ‘재판 흥정’을 벌였다는 의혹이 담긴 문건도 공개해 논란이 됐다. 문건에는 사법부의 ‘협조 사례’로 ‘이석기, 원세훈 사건’ ‘KTX 승무원, 정리해고 사건’ 등이 제시됐다. 특조단은 이를 "재판 독립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외면하는 사법행정권의 남용”이라면서도 28일에는 "실제 대법원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기보다 행정처 관계자가 협상 용도로 쓰기 위해 지난 판결 사례를 추린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날 특조단 측은 "양 전 원장이 2015년 8월 박 전 대통령과 독대할 당시 문제가 된 재판 협조 관련 문건을 갖고 있지 않았고, 상고법원 법관 임명 관련 대통령의 권한을 다룬 문건만 가져간 것으로 조사됐다”고도 밝혔다. 양 전 대법원장의 숙원 사업이었던 상고법원 설치가 당시 야당의 반발 등으로 제동이 걸린 상황에서 대통령과의 독대로 해결책을 찾으려 했다는 게 특조단의 해석이다. 이에 대해 "양승태 체제의 잘못은 공개하고 싶으면서도, 정작 이에 대한 검찰 수사 등 외부 개입은 피하고 싶은 것 아니냐”(서울중앙지법 A판사)는 반응도 나왔다.
 
결국 사법부를 1년 넘게 소용돌이로 휩쓴 블랙리스트 사태의 매듭은 김 대법원장의 결단에 달렸다는 분석이 많다. 법원 안팎에선 김 대법원장이 검찰 수사까지 고려하는 것은 양승태 대법원에서 사법부 독립이 심각하게 훼손됐다고 봤기 때문이라고 본다. 검찰은 이번 사태에 대한 공식 입장을 자제하면서 특조단의 보고서 내용을 분석하고 있다. 
 
손국희·정진우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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