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크리스토퍼 힐 "완전한 비핵화 합의 가능성? 맥주 1잔 값도 안 걸겠다"

중앙일보 2018.05.28 16:40

“북한은 모든 핵무기를 포기할 준비가 안 됐고, 미국은 단계적 보상을 할 준비가 안 됐다. 입장차를 좁히지 못한다면 북ㆍ미 정상회담은 하지 않는게 나을 수 있다.”

크리스토퍼 힐 전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 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중앙포토]

크리스토퍼 힐 전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 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중앙포토]

 
크리스토퍼 힐(66) 전 미국 6자회담 수석대표이자 동아태 차관보가 25일(현지시간) 중앙일보와 전화 인터뷰에서 “북한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에 합의할 가능성에 맥주 한 잔 값도 걸지 않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크리스토퍼 힐 전 차관보 인터뷰
"김계관·최선희 담화, 북 공식 입장
북한은 모든 핵 포기 준비 안 됐고,
미국은 '단계적 보상' 준비 안 됐다,
합의 어렵다면 안 하는게 나을지도"

 
힐 전 차관보는 "비핵화는 북한을 핵 무장 국가로 인정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에 중간은 없다"며 CVID에 타협의 여지는 없다고 강조했다. 
 
다만 비핵화 방식을 두고 “북한이 단계적 비핵화를 동의한다면, 평화협정이나 제재 완화 등 일정한 보상을 제공하는 타협은 가능하다고 본다”며 “더 걱정되는 건 검증과 이행에 관한 세부 논의”라고 말했다.
 
힐 전 차관보의 이런 우려엔 이유가 있다. 2005년 6자회담에서 ‘북한의 모든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의 검증 가능한 비핵화와 핵확산금지조약(NPT) 복귀’를 규정한 9ㆍ19 공동성명에 합의했지만, 북한이 사찰ㆍ검증에 반발하면서 합의가 이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힐 전 차관보는 현재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의 의제 협상을 맡고 있는 성김 주 필리핀 미국 대사의 보스였다. 김 대사는 힐 전 차관보 아래서 한국과장을 맡아 6자회담을 보좌한 바 있다. 
 
힐 전 차관보는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과 최선희 부상은 각각 6자회담 상대이자 통역이었다”며 “싱가포르 회담을 무산시킬 뻔한 두 사람의 담화는 노동당 선전선동부의 지시에 따라 발표한 공식 입장”이라고 했다. 그는 현재 덴버대 국제대학 학장이다. 
 
아래는 주요 인터뷰 내용.    
 
김계관 부상의 지난주 성명 직후 회담 가능성이 50% 이하라고 했는데, 그가 다시 “회담을 원한다”고 돌변했다.  

“지난주 그렇게 예상했던 건 성명이 북한이 미국이 핵 폐기가 끝나기 전까지 ‘단계적 보상’ 의사가 없다는 데 실망했고, 먼저 핵을 포기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다시 회담 재개를 위한 대화가 이뤄지고 있지만, 문제는 아직 북한이 회담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는 점이다. 그들은 오직 비핵화를 논의할 준비가 됐다고만 했고 세부 사항은 알지 못한다. 우리는 완전한 비핵화, 말하자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를 원한다고 이미 밝혔다. 북한도 분명히 자신들의 새로운 요점을 갖고 있겠지만 그걸 듣기 전까진 우리 정책을 조정할 이유가 없다.”

 
 
그럼 김계관 부상이 왜 한 주 만에 입장을 바꿨다고 보나.

“나는 그가 어떤 선택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북한 당국이 말하라고 지시한 걸 그대로 얘기하고 있을 뿐이다. 그가 먼저 16일 담화에선 ‘북한이 미국의 경제 지원을 받기 위해 핵무기를 포기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라’는 말을 했다. 그러고 나서 어제(25일) 담화에선 ‘북한은 언제든 미국과 만나 문제를 해결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나는 두 개의 담화를 반드시 하나로 합쳐서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단순히 담화의 발표자일 뿐이다.” 

 
2005년 9월 19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6자회담 수석대표들이 9·19 공동성명을 발표한 뒤 악수를 나누며 웃고 있다. 결과적으로 합의는 깨졌다. 왼쪽부터 크리스토퍼 힐(미국), 사사에 겐이치로(일본), 우다웨이(중국), 송민순(한국), 김계관(북한), 알렉산드르 알렉세예프(러시아) 수석대표. [중앙포토]

2005년 9월 19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6자회담 수석대표들이 9·19 공동성명을 발표한 뒤 악수를 나누며 웃고 있다. 결과적으로 합의는 깨졌다. 왼쪽부터 크리스토퍼 힐(미국), 사사에 겐이치로(일본), 우다웨이(중국), 송민순(한국), 김계관(북한), 알렉산드르 알렉세예프(러시아) 수석대표. [중앙포토]

 
6자회담 북한 수석협상대표로 그를 잘 알지 않느냐.

“우리는 6자회담에서 협상을 하며 4년을 함께 보냈다. 그 사이에 그는 나를 평양으로 3번 초청했고, 나는 뉴욕으로 한차례 초청해 양자 회담을 주최하기도 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24일 또 다른 담화를 발표한 최선희 부상은 6자회담 동안 김계관의 통역관이었다. 그녀는 내가 6자회담 협상을 하는 내내 김계관 옆에 동석했다.”

 
6자회담 상대와 그의 통역관이 위협을 주도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그녀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정치적 얼뜨기’라고 비난했는데, 그들은 볼턴 보좌관이 얘기한 소위 ‘리비아모델’을 펜스 부통령이 되풀이해서 주장하는 게 기분이 나빴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아마도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볼턴의 영향력이 너무 크다고 보고 제동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두 사람이 북한 내 군부 강경파를 입장을 반영해 회담을 방해하는 건 아닌가.

“전혀 아니다. 나는 북한 관료 개개인이 독립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무엇을 발표할지 미리 지시받은 대로 얘기할 뿐이다. 그들의 담화는 김정은 위원장과 (동생 김여정이 제1부부장인) 북한 노동당 선전선동부의 지시에 따라 발표된 것이다. 나는 그것들은 북한 정부의 공식 성명으로 생각하지, 내부 일부의 강경파나 개개인의 인품이나 입장을 반영한 담화로 보지 않는다. 북한 내부에 권력투쟁이 있을 수야 있지만 이번 담화가 그걸 보여주는 건 아니다. 북한은 항상 협상에서 이런 식의 반전을 보여줘 왔다.”

크리스토퍼 힐 미국 6자 회담 수석대표가 2007년 9월 27일 베이징 6자회담 도중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가운데)과 최선희 당시 북측 통역관과 문안을 검토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크리스토퍼 힐 미국 6자 회담 수석대표가 2007년 9월 27일 베이징 6자회담 도중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가운데)과 최선희 당시 북측 통역관과 문안을 검토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이 볼턴의 주장을 수용해 회담 취소를 결정했다는 데.

“사실일 거다. 볼턴은 결코 대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오직 항복할 준비가 된 사람들과만 만나길 원한다. 그래서 나에겐 볼턴이 이번 정상회담을 반대해왔다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는 북한이 완전히 항복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돼서 회담장에 나오는 상황을 제외하곤 북한과 어떤 외교도 믿지 않는다.”

 
볼턴은 핵무기뿐 아니라 탄도미사일, 생화학무기까지 포기하라고 하지 않는가.

“그렇다. 그는 북한은 물론 다른 누구와도 어떤 종류든 주고받기식 흥정을 하는 덴 관심이 없다. 볼턴이 회고록 제목을『항복은 선택이 아니다』라고 쓴 건 항복이 상대가 할 수 있는 모든 것, 즉 항복은 필수라는 의미다. 북한은 볼턴 같은 상대를 다루는 데 능숙하다. 수년 전 그들은 김정일 위원장을 ‘포악한 독재자’라고 비난한 볼턴을 ‘인간쓰레기’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들이 반대로 볼턴을 사람으로 대접한다면 자신들이 굽히고 타협한 것처럼 보일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볼턴과 폼페이오 사이에 북한의 비핵화 접근 방식에 상당한 차이가 있는데.

“아직 세부적인 차이는 모르지만 적어도 두 사람은 분명히 다른 운영방식을 가지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싱가포르 회담이 성사되길 원하고 트럼프 대통령의 비전을 실현할 수 있도록 애쓰고 있다. 반면 볼턴은 트럼프는 물론 누구에게도 그런 충성심을 갖는 사람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볼턴이 대통령의 비전을 실현하는 걸 돕는데 관심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회담이 성사되면 완전한 비핵화에 합의할 가능성은 크다고 보나.

“나는 거기에 그렇게 많은 돈을 걸진 않을 것이다. 심지어 맥주 한 잔 값도 걸지 않을 거다. 그래서 북한이 회담 전에 먼저 폼페이오든 누구에게든 자신들의 입장이 뭔지 미국에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북한이 아직 모든 핵무기를 포기하겠다고 약속할 준비가 되지 않았고 김 위원장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하지 않는 게 나을 수 있다.”

 
북ㆍ미가 어떤 종류든 중간에서 타협할 가능성은 없나.

“비핵화에 관해선 북한을 핵 국가로 인정하느냐, 않느냐 문제이기 때문에 중간을 생각하기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완전한 비핵화 대신) 그들이 원하는 평화협정이든 다른 것이든 일정한 보상 조치를 제공함으로써 타협은 가능하다고 본다. 다만 북한이 어떤 핵무기든 보유하지 말아야 한다는 미국의 입장은 유지돼야 한다.”  

 
볼턴은 어떤 양보도 반대하는 데, 미국이 ‘단계적 보상’에 동의할까.

“지금까진 북한이 모든 핵무기를 포기하는 걸 거부해왔다. 그래서 문제는 트럼프가 대화를 통해 뭔가 새로운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단계적 보상도 그 해법에 포함된 문제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론 북한이 단계적 비핵화를 동의하면 우리가 이를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북한이 즉각적인 비핵화를 동의한다고 말하면, 그럴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믿지 말아야 한다. 대화에 관해 내가 더 걱정하는 건 비핵화에 관한 이행ㆍ검증 등 세부 사항 논의다. 그건 분명히 정상회담에서는 아닐 것이다. 북한이 실제로 핵무기를 포기할 준비가 됐다는 신호를 아직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폼페이오가 이에 관해 세부 질문을 했길 바라고 북한이 어떻게 답했는지 알고 싶지만 아직 분명한 대답은 듣지 못했다.”  

 
북한이 정말 비핵화 의지를 갖고 있다고 믿지 않나.  

“나는 그들이 아직 비핵화할 준비가 안 됐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이 결코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거라곤 생각하진 않는다. 그들은 핵무기를 포기할 수 있지만 적절한 인센티브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4ㆍ27 판문점 선언이 괜찮은 성명이긴 하지만 그것은 미래에 대한 성명이다. 거기에 도달하려면 비핵화 협상이 필요하다. 미국은 북한이 비핵화를 한다면 함께 많은 일을 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함께 하지 않을 것이란 단호한 입장이다.”

 
회담이 무산되거나 실패하면 결국 ‘거친 2단계’로 넘어갈까.

“나는 그렇게 상황이 많이 악화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걱정은 정상회담에서 실행 가능한 합의안을 만들 수 있느냐다. 지금 당장은 회담의 구체적 의제도 합의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물론 정상회담에서 무엇을 할지는 합의하고 아마 어느 정도까지 진전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군사적 위협을 주고받던 2017년 상황으로 돌아가진 않을 것으로 본다. 현재로선 정상회담을 되살리기 위한 대화가 진행되고 있고 성사가 가능하다고 본다. 하지만 정상회담에서 어떤 결과를 낼 수 있을지 알기엔 이른 것 같다.”

 
이번 회담 취소 결정을 한국에 사전 통보하지 않았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취소를 (내심)결정한 상태에서 22일 문 대통령과 회담에서 아무런 통보를 하지 않은 건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코리아 패싱이라거나 문 대통령의 중재자 역할의 문제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즉흥적으로 취소했다가 북한의 반응을 보고 다시 회담이 가능하다고 하는 건 트럼프의 독특한 협상 스타일이다. 스스로 최고의 협상가라고 자부하고 있는 데다가『거래의 기술』에서 쓴 대로 회담을 앞두고 유리한 위치를 확보하려고 그랬을 수 있다. 문 대통령도 긴밀한 조율 아래 남북 대화를 하면서 북ㆍ미가 완전한 비핵화에 합의할 수 있도록 돕고 있기 때문에 한ㆍ미 동맹에 문제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jjpol@joongang.co.kr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