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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란의 어쩌다 투자]아빠 회사에 대출해 놓고 돌려막다 1000만원 투자 제한에 터졌다

아빠 회사에 대출해 놓고 돌려막다 1000만원 투자 제한에 터졌다

중앙일보 2018.05.28 12:14
‘초심자의 행운(Beginner's Luck)’이라는 말이 있다. 도박판에서 주로 쓰인다. 왜 주변에 있지 않나. 그림도 맞출 줄 모른다던 이가 판돈을 쓸어가는 경우다. 
 
초심자의 행운과 연결되는 용어는 ‘자기 과신의 함정(Overconfidence Trap)’이다. 초심자의 행운 덕에 성공을 맛본 이들은 행운을 실력으로 착각한다. 우연한 결과인데도 내가 잘해서 성공했다고 확신한다. 자기 과신에 섣부른 투자 결정이 결국은 실패로 이어진다.
 
P2P(개인 간 거래) 투자도 그랬다. 첫 번째와 두 번째 투자가 성공적이었다. 
https://www.doughroll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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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감이 붙었다. P2P 시장 구조를 모두 이해한다고 생각했다(고 착각했다). 세금을 제하고 7% 정도의 수익을 주는 괜찮은 상품이라고 믿었다(세금이 수익의 15.4%인 보통의 금융상품과 달리 P2P 상품은 세금이 25.7%다).
 
경품과 짧은 투자 기간은 미끼…그걸 덥석 물었다
P2P 관련 카페에서 새로운 업체를 물색했다. 
 
P2P 대출 영업 구조. 출처: 금융감독원

P2P 대출 영업 구조. 출처: 금융감독원

새로운 형태의 담보물에 투자하는 F사를 찾았다. 상품 구조는 이렇다. 홈쇼핑 광고주(상품 판매 업체)에게 대출해 준다. 대신 홈쇼핑 매출 채권과 홈쇼핑 업체의 공용창고에 있는 상품을 담보로 잡는다. 
 
'갑-을 '구조상 홈쇼핑 상품 판매 업체가 홈쇼핑으로부터 판매 대금을 받는 데까지는 3개월 안팎의 시간이 소요된다. 하지만 물건을 만들어 납품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이 자금의 수요-공급의 단기 불일치를 해결해 주는 수단이 과거엔 대부업체밖에 없었다. 이걸 P2P 방식을 통해 해결한다는 취지였다.
 
육아 휴직 시절, 홈쇼핑 시청‘해 봐서 안다’. 묘한 중독성이 있다. 상품도 괜찮다. 단지 장단기 미스매치 때문에 발생하는 자금 압박을 P2P 방식으로 해결한다니 중소기업을 돕는다는 대의명분도 충분했다. 
 
무엇보다 투자 기간이 3개월이다. 또, 일정액 이상 투자하면 추첨을 통해 경품(부끄럽지만 무슨 냄비 세트였던 것 같다. 얼마 하지도 않는 ㅠ)도 지급한단다. 미끼를 덥석 물었다.
 
담보 창고는 보여줄 수 없었다…가짜 상품에 투자
이자는 또박또박 들어왔다. 그러다 우연히 들어가 본 카페에는 F사에 대한 연체 및 부실을 토로하는 글이 쏟아졌다. 투자를 결정했던 시점부터 F사가 우려된다는 글이 올라왔다. 자기 과신에 그런 글을 못 봤을 뿐이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자기 과신으로 불안감을 눌렀지만, 결국 터졌다. 만기가 됐는데도 원금은 돌아오지 않았다. F사는 중개업체에 불과한 자신들이 투자자들의 원금을 상환할 의무는 없지만,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외자를 유치해 원금을 상환하겠다고 약속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말이 안 된다. 투자자의 투자 책임을 왜 중개업체가 지나. 중개업체는 원금 상환을 위해 추심 업무에 최선을 다하면 될 뿐이다. 그때는 돈만 돌려받으면 되겠지 싶어 외자유치라는 허황한 꿈을 믿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연체를 넘어 부실(90일 이상 연체) 단계에 접어들면서 원금을 진짜 떼일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졌다. 피해자들 단톡방(단체 채팅방)에 들어갔다.  
 
맙소사. 채팅방 공지사항과 채팅 내용, 피해자 대표의 발언 등을 통해 파악한 사건의 전모는 심각했다. 이건 P2P 투자 실패라기보다는 사기에 가까웠다.
 
피해 투자자들의 조사 결과, F사는 전형적인 ‘돌려막기’ 방식으로 회사를 운영했다. 홈쇼핑 광고주(상품 판매 업자)에게는 장기(6개월~1년) 대출을 해 줬다. 그러면서 상품설명서를 2~5개 업체에 동시에 투자되고 있는 것처럼 가짜로 만들었다. 
 
투자자들에게는 2~3개월 투자 기간을 제시했다. 투자자들이 단기로 투자한 여러 상품의 차주는 장기로 돈을 빌린 한 사람(법인)이었다.
 
이런 식의 돌려막기가 지난해 5월 27일, 개인투자자의 투자 한도를 1000만원으로 제한하는 ‘P2P 가이드라인’이 시행되면서 막혔다.
 
P2P 시장은 아는 사람만 아는 시장이다. 새로 진입하는 투자자가 별로 없고 이미 진입한 투자자들이 투자금 규모를 늘리면서 커온 시장이다. 그런데 기존 투자자들의 한도를 막으면서 시장 성장세가 주춤해졌다. 돌려막기가 터진 셈이다.
 
사기나 횡령 혐의도 발견됐다. F사가 운영하는 총투자금의 40% 정도가 일종의 페이퍼컴퍼니로 흘러 들어갔다. 이 페이퍼컴퍼니에서 돈이 실제 홈쇼핑 사업을 수행하는 업체에 갔다. 투자설명서에서처럼 홈쇼핑 업체에 직접 대출을 해 준 게 아니라 페이퍼컴퍼니를 거쳤다. 
 
이제야 설명이 됐다. 투자자들이 그간 “담보로 잡은 홈쇼핑 창고를 보여달라”고 요구했지만, F사가 거절한 이유다.
 
게다가 F사 공동 대표이사 중 한 명의 아버지 회사(아버지·본인·누나·매형 등이 대표를 돌아가며 맡았다)에 돈을 빌려줬다. 이 회사는 조경회사다. 
 
외자 유치를 명분으로 대표이사는 지난 1월 해외로 나갔다.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다. 지난 18일 자로 여권이 말소됐다.
 
문제는 이 모든 일이 투자 피해자들의 조사를 거쳐 밝혀졌다는 부분이다(이들은 무슨 탐정처럼 구글링, 등기부등본 조회, 현장 답사 등을 통해 가능한 사건의 전모를 파헤쳤다). 그저 클릭으로 투자한 기자는 홈페이지만 보고 이 모든 사기를 믿고 내 돈을 맡겼던 셈이다.
 
▶관련 기사 <기자도 당했다 P2P 투자…평균 직원수 3명 회사가 2조 대출, 사기·부실 조심해야>

http://news.joins.com/article/22659265?cloc=joongang|home|starreporterlist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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