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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4차산업혁명에서 존재감 잃어가는 한국

중앙일보 2018.05.28 02:01 종합 29면 지면보기
손해용 산업부 기자

손해용 산업부 기자

4차산업 혁명의 신기술로 꼽히는 ‘블록체인’과 ‘양자통신’.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IITP)가 산·학·연 전문가 124명을 설문조사해 한국의 기술 경쟁력을 평가한 결과는 참담하다. 블록체인의 기술 수준은 미국의 76.4%로 2.4년의 기술 격차를 보였다. 유럽(96%)·일본(84.8%)·중국(78.9%) 등에 모두 뒤졌다. 광자(빛 입자)를 암호 전달에 이용해 해킹을 막고, 속도·정확성을 높인 양자통신의 경우 73%로 미국과 격차가 무려 4년에 달했다. 중국과 미국의 격차(2년)보다 훨씬 크다. 한국은 네트워크, 전파·위성, 이동통신 등 다른 정보통신기술(ICT) 10대 기술 수준에서도 경쟁국 중 최하위에 머물렀다.
 
세계적으로 ICT 산업은 하드웨어에서 서비스·소프트웨어로 무게 중심을 옮겨가는 중이다. 우버·유튜브가 좋은 예다. 전문가들은 이런 기업이 탄생하게 된 배경으로 “규제 장벽이 낮은 생태계에서 시작한 덕분”(구태언 테크앤로 변호사), “기업 친화적인 환경에서 경쟁력을 확보”(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 등을 꼽았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하지만 이는 딴 나라 얘기다. 한국에선 인터넷전문은행을 키운다고 했지만, 꼭 필요한 은행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은산분리)란 족쇄는 풀리지 않았다. 빅데이터 산업 역시 ‘개인정보 보호법’에 갇혀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신산업 분야 700여 기업 두 곳 중 한 곳(47.5%)은 규제로 사업 차질을 빚었다.
 
여기에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 강제 정규직화 등 기업의 발목을 잡는 반(反)시장 정책은 쉴새 없이 쏟아져 나온다. 당장 중소 ICT업계에선 “하루 20시간 이상 일해도 성공할까 말까인데, 주 52시간 근로제를 지킨다면 어떻게 큰 기업으로 성장하겠느냐”는 반발의 목소리가 높다.
 
지난 23일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를 비롯한 세계 ICT 거물들을 불러 ‘테크 포 굿’ 행사를 연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행보는 눈여겨볼 점이 많다. 이 자리에서 마크롱은 인공지능(AI) 등 4차산업 혁명 관련 분야에서 마이크로소프트·구글 등의 투자 및 채용 계획을 받아냈다. 그가 펼친 노동규제 완화와 혁신기업 창업 지원 등의 정책이 힘이 됐다는 게 외신의 평가다.
 
정부가 경제 성장 전략으로 내세운 게 ‘혁신 성장’이다. 하지만 이에 필요한 규제 완화는 속도가 더디고, 기업 옥죄기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프랑스와는 반대다. 이대로라면 4차산업 혁명은 미국·중국의 무대가 될 게 뻔하다.
 
손해용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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