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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P 업계 1위 렌딧이 P2P 협회를 탈퇴한 이유는?

중앙일보 2018.05.28 02:00
3년 전 정보기술(IT)과 금융을 융합한 ‘핀테크(FinTech)' 열풍을 타고 관련 스타트업들이 급증했다. 특히, 인터넷으로 돈이 필요한 대출자와 투자할 곳을 찾는 투자자들을 이어주는 P2P(Peer to Peer) 스타트업이 눈길을 끌었다. 이들은 일반 은행과 고금리 대부업체들이 외면한 중금리 대출 시장을 개척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많이 달라졌을까.  

 
개인신용대출 P2P업계 1위인 렌딧 김성준(33) 대표를 최근 서울 을지로에 위치한 렌딧 사무실에서 만났다. 올해 렌딧 창립 3주년을 맞은 김 대표는 지난달 26일 "P2P 업체 64곳이 가입해 있는 한국P2P금융협회를 탈퇴한다"고 밝혀 화제가 됐다. 누적 대출금액 1289억원(5월 24일 기준)으로 국내 P2P 대출 중 개인신용대출의 45%를 차지하는 업계 1위의 결정에 P2P업계가 술렁였다. 앞서 지난해말까지 P2P금융협회 회장을 맡았던 업체 대표의 경력 위조와 부동산대출 중심의 P2P업체들의 연체율 공시 문제로 협회는 혼란에 빠진 상태였다.
김성준 렌딧 대표

김성준 렌딧 대표

 

김 대표는 "소비자 보호 관점에서 볼 때 협회 이사회와 거리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P2P는 신생 산업인 만큼 투자자 보호를 위해서는 금융 당국의 가이드라인이 없더라도 업체 스스로 연체율·부실율 등을 정확히 공시하고 자정 활동을 해야한다고 강조했지만 협회 다수와 이견이 컸다"는 것이다. 렌딧은 지난해 금융당국의 P2P 대출 가이드라인이 적용되기 이전부터 연체율·부실률 등을 공시해왔다. 
 
렌딧의 탈퇴 후 지난 24일엔 8퍼센트ㆍ팝펀딩 등 선두권에 있던 다른 P2P업체들도 잇따라 협회 탈퇴를 선언했다. 같은 날엔 누적대출액 230억원에 달하는 부동산 전문 P2P업체 헤라펀딩이 부도를 선언했다. 업계에선 P2P업계의 세분화 및 옥석가리기 과정으로 보고 있다. 
 

김성준 대표는 “P2P금융의 본질은 기술과 투명성”이라고 강조했다. 정교한 데이터 분석을 통해 대출자의 신용과 위험도를 분석하고, 이를 투명하게 공개해 대출자와 투자자를 연결하는 기술이 핵심이라는 것이다. 그는 “우리가 개인신용대출 P2P만 고집하는 것도 이런 데이터 기반의 기술 P2P를 지향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P2P금융 시장이 커지면서 상당수 업체가 ’고수익‘과 ’연체율 제로‘를 홍보하며 부동산 대출 비중을 늘려갔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1월 기준 국내 P2P 대출의 64%는 부동산 관련 대출이었다. 특히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으로 불리는 건축자금 대출이 많다.
  
김 대표는 “P2P금융이 발달한 미국에서 부동산 대출은 5%에 불과하다"며 "개인신용대출이 전체 P2P의 60%를, 소상공인 대출이 35%를 차지한다"고 말했다. 한국과는 정 반대다. 그는 "'다수 개인’들로 구성된 ’상호 연관성이 낮은’ 자산에 분산투자하는 개인신용대출 P2P가 부동산P2P보다 더 안전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경기 영향을 동시에 받는 부동산에 대한 투자보다 저마다 사정이 다른 개개인의 신용대출 수십 건에 분산투자하는 게 투자자 입장에서 덜 위험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P2P는 ’대출자 심사 평가 기술‘과 ’분산투자 기술‘ 등 기술력이 필수다. 
김성준 렌딧 대표

김성준 렌딧 대표

 
렌딧의 경쟁력도 여기에 있다. 렌딧은 개인신용평가기관인 나이스신용평가에서 제공 받은 250종의 금융데이터와 대출 신청자가 렌딧 홈페이지에서 보이는 행동 패턴 등 비금융 데이터를 활용해 자체적으로 신용 등급을 산출한다. 정보 입력 후 10초 이내에 개인별 최적 금리가 나온다. 데이터 분석으로 대출자의 상환 능력을 평가하는 데다, 대출 전 과정이 온라인 비대면이어서 운영 비용이 기존 금융권보다 낮다. 지난 3년간 연20~30% 수준의 고금리 대출금을 갚기 위해 렌딧에서 돈을 빌린 ’대환 대출자‘(전체 렌딧 대출자의 54%)들은 렌딧에서 평균 11.1% 금리를 적용받았다. 김 대표는 "이들이 9%포인트 이상의 이자 부담을 덜었다"고 설명했다.  
 
렌딧은 또 P2P 투자자 1명의 투자금을 100개 이상의 대출채권에 실시간으로 분산 투자할 수 있는 포트폴리오 추천 시스템으로 투자자가 부담해야 할 위험을 낮췄다. 렌딧 투자자 중 70% 이상이 렌딧의 대출 채권에 재투자한다. 렌딧이 '중금리 대출 시장을 활성화했다'는 평가를 받는 배경이다.
 
이런 김 대표는 사실 금융권 출신도, IT 엔지니어도 아니다. 그는 디자인을 공부했다. 김 대표는 “금융권 밖에 있던 소비자이자,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책을 찾아본 디자이너 경험이 있기 때문에 대출 시장의 문제도 잘 풀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서울과학고 졸업 후 생명공학을 공부하겠다며 진학한 KAIST에서 산업디자인을 선택했다. 미국 디자인 컨설팅회사 아이디오(IDEO) 영향이 컸다. 
그는 “소비자의 필요(needs)를 찾고 고민하는 일, 개발자ㆍ기획자 등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며 해결 방법을 설계하는 디자이너의 일에 매료됐다”며 “기술과 금융을 융합한 P2P금융 시장은 디자이너의 관점과 역량이 필요한 분야”라고 말했다.
 
P2P에 뛰어든 결정적 계기는 은행 대출에서 거절당한 경험이었다. 사용자경험(UX)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스탠포드대 석사 유학을 간 그는 2011년 학교를 그만뒀다. 그의 창업 계획을 들은 스탠포드 교수들은 “학교에 더 다닐 이유가 없다”며 용기를 줬다. 하지만 시장은 예상과 달랐다. 미국에서 인터넷 커머스 스타트업을 창업했지만,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는 “3000만원을 빌리려고 한국에 왔더니 저한텐 22% 이상 고금리 대출만 된다는 얘길 듣고 뭔가 크게 잘못됐구나 싶었다”며 “반면 미국의 P2P업체인 ’랜딩클럽‘에선 7%대 대출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성인의 40%가 신용등급 4~6등급인데 이들을 고금리 대부업체로 밀어내는 상황이 방치되고 있다는 데 놀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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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딧 설립 3주년을 맞은 김 대표는 앞으로 심사 평가 모델과 분산투자 추천 알고리즘을 더 고도화할 계획이다. 그는 “현재도 서류를 이미지로 인식하는 작업 등 머신러닝 기술을 활용하고 있지만 앞으로 음성인식 등 다양한 기술과 데이터로 대출 전 과정을 자동화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이어서 김 대표는 “260조원 규모인 국내 개인신용대출 시장은 미국의 4분의 1 수준으로 상당히 큰 시장”이라며 “그동안 쌓인 중금리대출 빅데이터를 활용해 렌딧이 기술로 금융을 혁신하는 '테크핀'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박수련 기자 park.sury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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