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북·미 회담 소식에 들뜬 조총련 “회담 평양서 해야 하는 것 아니오”

중앙일보 2018.05.28 01:23 종합 8면 지면보기
26일 도쿄에서 열린 조총련 전체대회에서는 북한 인공기와 김일성 주석 및 김정일 위원장의 초상화가 내걸렸다. [윤설영 특파원]

26일 도쿄에서 열린 조총련 전체대회에서는 북한 인공기와 김일성 주석 및 김정일 위원장의 초상화가 내걸렸다. [윤설영 특파원]

지난 26일부터 27일까지 도쿄도 기타(北)구 주조다이(十條臺)에선 재일본 조선총련(이하 조총련) 제24회 전체대회가 열렸다. 4년에 한 번 열리는 조총련 최대 행사로, 전국 대의원 2000여 명이 모인다. 역사상 처음 북·미 정상회담 개최가 예상되는 가운데 조총련은 어느 때보다 고무된 분위기였다. 비록 이틀 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 취소’를 발표했다가 다시 회담 가능성을 언급하는 등 북·미 관계가 롤러코스터를 타고는 있지만 행사장엔 “조선민족을 둘러싼 시대가 완전히 전환적으로 바뀌고 있다”(조선총련 간부)면서 기대감이 뜨거웠다.
 

대의원 2000명 도쿄서 전체대회
개량한복에 김일성 부자 배지 달아
바깥선 “납치국가 북한 타도” 시위

지난 26일 오후 1시. 대회장에서 500여m 떨어진 인근 전철역에서부터 경계근무를 서는 경찰들이 서 있었다. 역전 광장을 사이에 두고 “납치국가 북한 타도”를 외치는 시민들과 “헤이트스피치, 차별행동 반대” 플래카드를 든 시민들이 마주하고 있었다. ‘대일본 애국당’ ‘헌법개정’이라고 적힌 검은색 차량은 “조선총련은 해체하라. 빨간 악마의 테러국가 김정은 타도”라고 확성기를 틀고 있었다. 대회장에 가까워질수록 경찰의 숫자가 많아지고 긴장감도 한층 짙어졌다. 대회장인 도쿄 조선문화회관엔 인공기 10여 장이 나부끼고 있었다. 건물 정면에 걸린 간판엔 “천하 절세의 위인이신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님을 21세기의 태양으로 높이 받들어 모시리”라고 씌어 있었다.
 
대회장 안으로 들어가자 무대 정면에 고 김일성 주석과 고 김정일 위원장의 대형 초상화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인공기를 배경으로 두 사람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평양의 한 행사장을 옮겨다 놓은 것 같았다. 왼쪽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대원수 만세’라고 적힌 붉은색 플래카드가, 뒤쪽엔 ‘위대한 김일성 주석님과 김정일 장군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라고 적힌 간판이 걸려 있었다.
 
참석자들은 20대로 보이는 청년부터 백발의 노인까지 다양했다. 왼쪽 가슴엔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얼굴이 있는 배지를 달았다. 남자는 양복, 여자는 ‘치마저고리’라고 부르는 북한식 개량한복을 입고 있었다.
 
대회장 인근에선 우익단체가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윤설영 특파원]

대회장 인근에선 우익단체가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윤설영 특파원]

관련기사
허종만 중앙상임위원회 의장이 ‘대회 보고’ 도중 "최고지도자 김정은 동지님께 삼가 최상·최대의 영광과 가장 큰 감사를 드린다”고 하자 참석자 전원이 일어서 박수를 치기도 했다. ‘김정은 위원장’과 관련된 부분이 언급되면 약속이라도 한 듯이 기계적으로 일어나는 분위기였다. 허 의장은 향후 4년 중점 과제로 "김정은 시대 요구에 따라 주체적 해외동포 조직으로 반석을 강화하자”면서 "판문점 선언 이행과 북·일 평양 선언에 기반한 (북·일) 국교 정상화 실현에 특색 있는 공헌을 하자”고 밝혔다.
 
이날 행사는 허 의장의 활동 보고 앞부분 단 10분만 언론에 공개됐다. 김정은은 축전을 보내 "총련은 격변하는 정세에 상응하게 당과 공화국 정부의 대외정책적 입장을 널리 선전하기 위한 대외사업을 능동적으로 벌여 나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조총련 관계자는 "일본 자민당, 공명당 등 국회의원들도 참석해 축하문을 읽었다”고도 소개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국면에서 일본 내 조총련의 위상은 과거에 비해 떨어진 상태다. 그런 와중에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북·미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이 커지면서 조총련 사회도 한껏 들뜬 분위기였다.
 
익명을 요구한 조총련 관계자는 "분단 사상 처음으로 조·미(북·미) 회담이 열릴 수밖에 없는 역사적 전환점”이라면서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 관계자는 "조·미 회담을 할 수밖에 없는 국면까지 왔다는 것 자체가 과거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것 아니냐. 그만큼 우리 민족의 힘이 커졌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예정대로 될 것 같으냐”는 질문에 "조·미 회담은 이제 평양에서 해야 하는 것 아니오?”라고 기자에게 되물었다. 트럼프-김정은 간 밀당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도쿄=윤설영 특파원 snow0@joongang.co.kr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