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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국가 아일랜드 낙태 허용 … 국민투표로 결정

중앙일보 2018.05.28 00:51 종합 16면 지면보기
26일(현지시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시민들이 낙태금지법 폐기를 축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26일(현지시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시민들이 낙태금지법 폐기를 축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아일랜드가 낙태를 금지한 헌법 조항을 국민투표를 통해 35년 만에 폐지하기로 했다. 올해 중 법안을 마련해 임신 12주 이내 낙태를 자유롭게 허용할 예정이다.
 

150년 논쟁 끝에 찬성 66%로 통과
성폭행 당한 14세 논란으로 촉발
임신 12주내는 제한없이 중절 수술
한국도 낙태죄 위헌 헌법소원 제기

아일랜드 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25일(현지시간) 낙태 허용을 위한 헌법 개정 여부를 놓고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찬성이 66.4%, 반대가 33.6%로 집계됐다고 26일 밝혔다. 낙태와 관련해 6번째 국민투표다.
 
아일랜드에서 낙태 허용 문제는 150년가량 논쟁거리였다. 국민 대부분이 천주교 신자인 아일랜드는 1861년 처음으로 낙태 금지법이 제정됐다. 이 법은 영국에서 독립한 이후에도 유지됐다.
 
1983년 국민투표에선 태아와 임산부에 동등한 권리를 부여한 수정헌법 제8조가 통과됐다. 성폭행이나 근친상간 등의 경우에도 엄격하게 낙태를 금지한다. 이번 국민투표에서는 이 수정헌법 제8조의 폐지 여부에 대해 3분의 2가 폐지를 지지했다.
 
아일랜드에선 낙태 허용 요구 시위가 촉발된 계기가 있었다. 1992년 14살 소녀가 성폭행을 당한 뒤 자살을 시도하다 낙태 시술을 받기 위해 영국으로 가려 했으나 법원은 허락하지 않았다. ‘X 케이스’로 불리는 이 판결을 비난하는 시위가 아일랜드는 물론이고 런던과 뉴욕에서도 열렸다.
 
이 판결은 추후 대법원에서 뒤집혔다. 대법원은 자살 위험이 명확할 경우 아일랜드에서도 낙태의 근거가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정부는 언제 낙태를 시행해도 되는지 명확한 의료 지침을 마련하지 않았다. 대신 아일랜드 정부는 낙태와 관련한 법안을 다수 마련해 국민투표에 부쳤다. 이후 다른 나라로 합법적 낙태 시술을 받기 위해 여행하는 것을 제한하지 않게 됐고, 다른 나라에서 아일랜드 국민이 낙태 시술을 배우는 게 허용됐다. 하지만 자살 가능성이 있을 경우 낙태를 허용하자는 2002년 국민투표안은 부결됐다.
 
2012년 인도 여성 사비타 할라파나바르의 사망은 아일랜드 낙태 논의의 분수령이 됐다. 임신 중 고통을 호소하며 병원을 찾은 할라파나바르는 패혈증 등으로 유산이 불가피하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결국 세상을 떠났다. 병원 측이 태아의 심장 박동이 들린다는 이유로 낙태 시술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 이후 아일랜드 의회 앞에는 2000명 이상의 시위대가 몰려가 정부의 긴급한 대처를 요구했다. 전국에서 촛불 추모집회가 열렸다.
 
2013년 아일랜드는 임신 중 생명보호법을 제정해 산모의 생명에 심각한 위협이 있을 때만 낙태를 허용하도록 했다. 그러면서 불법 낙태를 할 경우 최고 14년형에 처하도록 하는 규정도 마련했다. 엄격한 낙태 규정은 ‘원정 낙태’ 행렬로 이어졌다. 수정헌법 8조 이후 17만 명이 영국 등으로 건너가 낙태를 한 것으로 집계됐다. 유엔 등에서도 엄격한 낙태 금지를 손볼 것을 권고했다.
 
낙태 금지 헌법 조항 폐기가 결정되자 레오 바라드카르 아일랜드 총리는 “우리는 아일랜드에서 벌어지고 있는 조용한 혁명의 정점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아일랜드 정부는 이번 투표 결과를 토대로 조만간 하원에 입법안을 제출한다. 임신 12주 이내 중절 수술에 대해서는 제한을 두지 않고, 12~24주 기간에는 태아 기형이나 임신부의 건강에 중대한 위험이 있을 경우 낙태를 허용하는 내용이다.
 
한국에서도 낙태죄가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이 제기돼 결과가 주목된다. 여성들에게 여러 차례 낙태 시술을 했다가 재판에 넘겨진 한 산부인과 의사는 2015년 헌재에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여성가족부는 폐지하자는 의견을 냈지만 법무부는 유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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