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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사회적 가치’ 신경영 … 내달 ‘착한 펀드’ 1호 띄운다

중앙일보 2018.05.28 00:02 경제 2면 지면보기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 26일 열린 ‘2018 상하이포럼’ 축사에서 ’기초적인 교육과 음식조차 제공받지 못하는 세계인이 늘고 있다“며 ’기업이 더 큰 사회적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 SK]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 26일 열린 ‘2018 상하이포럼’ 축사에서 ’기초적인 교육과 음식조차 제공받지 못하는 세계인이 늘고 있다“며 ’기업이 더 큰 사회적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 SK]

최태원 SK그룹 회장에겐 ‘더블 바텀 라인(Double Buttom Line)’이란 회계 장부가 있다. 이 장부에는 기업이 추구해야 할 두 축인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가 한꺼번에 기록돼 있다. 최 회장은 사회적 기업 지원을 위한 ‘객관적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 2016년부터 새로운 회계처리 방식을 개발하도록 했고, 이게 더블 바텀 라인이다. 최 회장은 지난 26일 열린 ‘2018 상하이 포럼’ 개막식 축사에서 이 회계장부를 소개하며 “기초적인 교육과 음식조차 제공받지 못하는 세계 시민들이 늘고 있다. 기업이 더 큰 사회적 가치를 창출해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사모펀드 실험 본격 나서는 SK회장
110억 조성해 사회적 기업 지원
취약층 고용하면 보상해주는 식
‘착한 기업’ 측정 회계시스템 개발

상하이포럼서도 사회적 가치 강조
펀드 성공하면 일반인 참여 가능
‘착한 증권거래소’도 만들 생각

그는 이어 “SK는 사회적 기업이 창출한 사회적 가치를 측정해 돈으로 보상하는 ‘사회성과 인센티브’ 프로젝트를 실행해 사회적 기업 생태계 조성에 힘을 보태고 있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SK그룹 주최로 매년 열리는 상하이 포럼은 아시아 지역 경제 현안을 논의하기 위한 국제 학술 모임이다. 특히 올해 포럼에선 ‘사회적 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 주제로 한 세션이 온종일 열리는 등 기업의 사회적 경영이 핵심 의제로 부상했다.
 
최 회장이 강조하는 기업의 사회적 가치 측정 실험은 이미 일개 ‘경영학 담론’의 영역을 벗어났다. SK는 다음 달부터 이 측정 시스템을 바탕으로 ‘착한 사모펀드 실험’도 국내 최초로 시작한다. SK가 만든 측정 시스템을 적용했을 때 가장 많은 사회적 가치를 창출한 기업에 금융을 지원하는 전문 펀드다. SK행복나눔재단 등 공익재단이 나서서 최소 5년간 110억원 규모로 운용되는 ‘사회적기업 전문 사모 투자신탁 1호’ 펀드에는 IBK투자증권과 KEB하나은행 등 순수 민간 은행과 증권사도 자금을 댔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SK그룹 관계자는 “순수 민간 자금이 사회적 기업에 투자해 성공한 사례를 만들면, 향후 시중은행이 사회적 기업에 대출하는 시장도 자연스레 형성될 것”이라며 “궁극적으론 일반 시민도 사회적 기업 주식·채권을 손쉽게 살 수 있는 ‘착한 증권거래소’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도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SK그룹이 기업의 ‘착한 일’을 돈으로 측정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기 시작한 건 지난 2016년부터다. ‘사회적 가치’는 돈으로 셀 수 없는 근본적 특징이 있지만, 그렇다고 기업과 금융기관이 객관적 데이터 없이 사회적 기업 투자를 결정할 순 없었다. 또 투자자들도 사회적 기업에 대한 투자 성과를 객관적으로 보고받기를 원했다.
 
신정근 KDB산업은행 연구위원은 “사회적 금융의 저변을 넓히려면 사회적 가치 측정 인프라를 확충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SK가 개발한 사회적 성과 측정 방식은 크게 임금·원료비·상품 및 서비스 등 3가지 영역을 중점적으로 살펴보게 된다. 우선, 사회적 기업이 탈북자·장애인·경력 단절 여성 등 취약 계층을 고용했을 때 생길 수 있는 ‘사회적 가치’를 측정한다. 통계청·보건복지부·고용노동부 등을 통해 취약 계층이 노동 시장에서 받을 수 있는 평균 임금을 조사한 뒤, 사회적 기업이 이보다 더 많은 임금을 지급하면 그 차액이 ‘사회적 가치’가 된다.
 
또 재활용 쓰레기를 활용해 상품을 만드는 기업의 경우 정부·지방자치단체가 아낄 수 있는 재활용 쓰레기 처리 비용이 ‘사회적 가치’가 된다. 독거노인, 환자 돌보미 등 사회적 기업이 취약 계층을 위한 상품·서비스를 시장 가격보다 싸게 제공하게 되면, 싼값에 제공한 ‘차액’을 계산해 사회적 가치로 환산한다. SK는 이 방식으로 지난 3년간 130개 사회적 기업의 사회적 가치를 측정해 돈으로 보상한 결과, 44개 기업이 연평균 8%에 달하는 매출 증가율을 보였다.
 
박성훈 SK 사회적가치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사회적 성과 측정 모델은 시장에서 형성된 가격을 기준으로 해 정확도를 높였다”며 “‘착한 기업’들은 이윤을 추구하기 위한 무리한 투자를 하지 않기 때문에 재무 건전성도 나쁘지 않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도 SK의 ‘착한 사모펀드 실험’에 주목하고 있다. 이 실험이 성공하면 독일 GLS은행·네덜란드 트리오도스은행·캐나다 어피니티크레딧유니온 등 선진국에선 이미 경제의 한 축으로 자리 잡게 된 순수 민간 ‘사회적 금융’ 생태계가 한국에서도 뿌리내릴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다. 이들 금융기관은 예금과 대출, 거액 자산가를 위한 프라이빗뱅킹(PB) 서비스 등 일반 상업은행과 똑같은 방식으로 사회적 기업에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수익성이나 자산 건전성도 일반 은행 못지않다. 네덜란드 트리오도스은행의 경우 전 세계적인 저성장 기조에서도 예금과 대출이 최근 10년 간(2006~2016년) 연평균 19~20%씩 늘고 있다.
 
조영복 부산대 경영대 교수는 “사회 문제 해결을 목표로 설립된 사회적 기업은 이윤만 추구하는 일반 기업보다 기업가 정신이 강해 손실이 나도 더 오래 버티는 경향이 있다”며 “사회적 금융이 이들 기업에 적극 지원될 수 있도록 금융감독당국도 새 패러다임에서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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