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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으로 밑으로 끝없이…無限의 세계에 빠져들다

중앙선데이 2018.05.26 02:00 585호 8면 지면보기
‘이반 나바로’ 전시장 찾은 과학자들 ’ 
이반 나바로의 'Bomb Bomb Bomb'(2014), Neon·drum·one-way mirror·mirror and electric energy, 182.9(diameter) x 81.3cm

이반 나바로의 'Bomb Bomb Bomb'(2014), Neon·drum·one-way mirror·mirror and electric energy, 182.9(diameter) x 81.3cm

칠레 산티아고 출신으로 미국 뉴욕에서 활동 중인 이반 나바로(Iv<00E1>n Navarro·46)는 빛과 네온, 거울을 통한 반사, 소리와 문자의 믹싱 작업으로 독특한 예술 세계를 구축한 설치 미술가다. 갤러리현대에서 6월 3일까지 열리는 ‘더 문 인 더 워터(The Moon in the Water)’는 시각적 환영을 극대화한 작가의 작품 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리다. 물리학자 김상욱(경희대 물리학과 교수), 전자공학자 윤태웅(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뇌과학자 정재승(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이 함께 전시장을 찾았다. 과학자들이 예술을 보는 시각은 어떤 것일까. 과학과 예술에 관심 많은 타이포그래퍼 유지원(홍익대 시각디자인 겸임교수)이 동참해 과학자들의 예술 수다를 정리했다.  
왼쪽부터 윤태웅·유지원·김상욱·정재승 교수

왼쪽부터 윤태웅·유지원·김상욱·정재승 교수

 
유지원(이하 유): 전시 제목이 ‘더 문 인 더 워터(The Moon in the Water)’다. 달은 네온의 빛을, 물은 거울의 반사를 서정적으로 은유하는 것 같다.  


김상욱(이하 김): 온(on)’이 아니라 ‘인(in)’이다. 빛이 물의 표면에 비친 것이 아니라 물속에 잠겨있다는 뜻일까.  


정재승(이하 정): 작가는 어린 시절 칠레 피노체트의 군부 독재를 겪으며 자랐고, 독재자는 전기를 끊는 것으로 압제를 가했다. ‘달’에는 ‘빛’으로 은유되는 자유와 희망뿐 아니라, ‘정치사회적인 메시지’라는 의미도 담겼으리라 짐작된다.  
 
No Se Puede Mirar(2013), Neon·wood·paint·timer·mirror·one-way mirror and electric energy, 121.9x121.9x25.4cm.

No Se Puede Mirar(2013), Neon·wood·paint·timer·mirror·one-way mirror and electric energy, 121.9x121.9x25.4cm.

빛에서 희망을 어두운 역사 벗어나는 탈출구
유: ‘빛’과 ‘반사’는 갤러리 세 개 층을 사용하는 전시 전체를 관통한다. 층마다 소재와 접근이 달라지는 작품들이 묶인다. 2층에는 고야의 사회고발적인 동판화 연작 속 작품들의 제목을 인용한 세 점 연작이 있다. 비틀스의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검은 방의 제목은 ‘다이 어겐(Die Again)’이다. 미니멀리스트 작가인 토니 스미스의 작품 ‘다이(Die)’를 기렸다. 대각선 방향으로는 검은 악기 케이스가 서 있고, 그 안쪽에 네온과 거울이 설치된 ‘투과할 수 없는 방II(Impenetrable room II)’이 있다.  


Webeatme(2016), Neon·drum·mirror·one-way mirror and electric energy, 152.4(diameter) x 61 cm. <00A9> Thelma Garcia

Webeatme(2016), Neon·drum·mirror·one-way mirror and electric energy, 152.4(diameter) x 61 cm. <00A9> Thelma Garcia

김: 어디를 투과할 수 없다는 걸까? 케이스 외곽?  
 
윤태웅(이하 윤): 케이스 외곽 같다. 안쪽은 깊어 보이지만, 케이스의 옆면 외곽을 보면 깊지도 않고, 막혀서 투과할 수 없는 ‘현실’이 확연히 제시된다.


정: 끝없는 희망인지 절망인지는 모호하지만, 어쨌든 투과는 하고 싶은데 그 가능성이 막혀있다는 뜻이겠다. 피노체트의 독재 아래 힘들었던 경험에 공감을 얻고자 했다면, 민중화처럼 그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편이 나았을 터다. 작가는 그런 현실을 투영하면서도, 인공적이고 비현실적인 세계를 어둡지만 부정적이지는 않게 보여준다.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작품 ‘비상 사다리(emergency ladder)’는 빛 자체다. 이 작품은 작가에게 빛이 의미하는 바를 일부 암시한다. 어두운 역사로부터 자유와 희망으로 인도하는 탈출구일 것이다.  
Nada (Ello Dira)(2013), Neon·wood·paint·timer·mirror, one-way mirror and electric energy, 121.9x121.9x25.4cm. <00A9> Thelma Garcia

Nada (Ello Dira)(2013), Neon·wood·paint·timer·mirror, one-way mirror and electric energy, 121.9x121.9x25.4cm. <00A9> Thelma Garcia



유: 지하 1층 다섯 작품은 ‘드럼 시리즈’다. 비트(BEAT)나 봄(BOMB) 등의 단어를 보여줌으로써 소리를 느끼게 한다.


정: 스트라이크(STRIKE), 블라스트(BLAST) 같은 단어는 의성어적이면서 파괴적이다. 역시 군부 독재의 정치적 색채가 감지된다. 청각은 시각과는 다른 기제로 공포를 자극한다. 청각으로 관심이 옮겨가는 것은 작가에게 자연스러운 추이로 보인다. ‘비트 미(BEAT ME)’도 고문일 수 있겠다. 때리는 행위를 음악으로 희화화했다고 할까. 전쟁터의 북소리, 전투기의 폭격, 터지는 폭탄…. 이런 것들을 음악으로 매개해 관객이 그 상황을 불편한 감정 없이 흡수하게 한다.  
 
Bomb Bomb Bomb (Matte Black and Warm White)(2014), 182.9(diameter)x81.3cm. <00A9> Thelma Garcia

Bomb Bomb Bomb (Matte Black and Warm White)(2014), 182.9(diameter)x81.3cm. <00A9> Thelma Garcia

빛과 반사, 네온과 거울
정치적 배경을 의식하지 않은 채 윤 교수님과 따로 처음 둘러봤을 때는 공학적인 측면이 먼저 보였다.


처음 받은 인상은, 광원과 거울의 단순한 조합으로 다양한 패턴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작품 ‘드럼들’ 속 심벌즈는 전시 전체의 내비게이션 역할을 한다. 어떤 일방투시거울로 작품을 제작했는지, 재료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양면의 투과율과 반사율을 가늠할 수 있다.


정: 그 옆의 드럼 작품 속 ‘밤(BOMB)’은 반으로 나뉜 글자가 서로 반사되어 한 글자를 이룬다. 다른 작품에서는 ‘비트 미(BEAT ME)’가 반사되어 ‘위 비트(WE BEAT)’가 된다.  


Drums(2009), Neon light·mirror·one-way mirror·plywood·metal and electric energy, 121.9x121.9x 121.9cm. <00A9> Jorge Martinez Munoz

Drums(2009), Neon light·mirror·one-way mirror·plywood·metal and electric energy, 121.9x121.9x 121.9cm. <00A9> Jorge Martinez Munoz

유: ‘위 비트 미(WEBEATME)’가 제목이다. 글자의 상하와 좌우의 대칭, 두 글자 간의 회전 대칭 등 모든 대칭 가능성을 탐색해 반사로 활용했다. 옆의 작품 ‘혁명 IV’는 아래부터 위로 드럼 다섯 개가 점점 작아진다. 그에 따라 그 안의 단어들도 위로 가면서 점점 폭이 좁아진다.  


김: 그 작품은 빛에 발광 소자를 쓰는 대신 글자가 쓰인 유리막 후면에서 투과되도록 했다. 글자 부분만 표면을 긁어내 그 사이로 빛이 새어 나온다. 그렇게 빛과 투과와 반사와 재료가 다양한 가능성을 펼쳐낸다.  


유: 1층의 ‘배너티(Vanity)’ 시리즈는 올해 신작이다. 이제 거울은 관객을 비춘다. 분장실 거울처럼 가장자리에 있는 전구들이 더 반짝인다. ‘배너티’는 서양 미술사의 ‘바니타스(Vanitas)’ 주제를 상기시킨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움에 도취하는 ‘허영심’을 경계하고, 죽음은 언제나 함께하니 그 아름다움은 영원하지 않다는 ‘덧없음’을 경고한다.  


정: 메멘토 모리! 신작에는 정치적인 색채가 옅어져 있다. 이 신작들처럼 내 얼굴이 그냥 비쳐도, 사실 거울 안 공간은 무한이 된다. 그런데 다른 작품들에서는 빛이 반복되는 과정들을 명시적으로 유도함으로써, 끝없이 진행하는 ‘무한’을 의도적으로 강조한다.  
 
무한과 재귀적인 반복, 대칭과 연속
김: 물리의 현실에서는 무한이 없다. 수학의 개념으로만 존재한다. 물리에서는 우주의 크기도 유한하고, 시간도 유한하다.  


윤: 무한대의 개념은 무한대라는 기호를 사용하지 않고 설명할 수 있어야 제대로 이해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수학의 무한대는 긴 문장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Revolution IV(2017), Neon·drums·mirrors·one-way mirrors and electric energy. <00A9> Thelma Garcia

Revolution IV(2017), Neon·drums·mirrors·one-way mirrors and electric energy. <00A9> Thelma Garcia



김: 물리학에서 무한대는 기호나 숫자가 아니라 과정으로 정의된다. 무한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그 과정을 생각할 수는 있다. 점화식같이 계속 나아가는 형태를 무한이라고 한다.  


정: 마지막이 숫자 같은 어떤 상태인 것이 아니라, 재귀적으로 반복되는 절차다. 어떤 숫자를 대어도 그보다 큰 숫자를 연산할 수 있기에, 무한대는 숫자로 정의하는 순간 모순이 생긴다.  


김: 전시 작품도 그렇다. 끊임없이 반사되는 과정만 있어, 그것이 무한이라 여기게 한다.  


윤: 수학에서 무한을 정의하는 범위는 물리학에서보다 넓다. 수학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의식하든 아니든 대개 플라톤주의자라고 한다. 수학의 세상에는 존재하지만 물리의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 꽤 있다. 물리 법칙에 구속되지 않기 때문이다.  


유: 나바로의 무한은 개념 상태에서는 수학적이었다가, 공간에 구현된 실체로는 물리적이 되는 것일까? 따지고 보면, 미술 자체가 수학의 세상 같은 머릿속 관념이 공간 속 재료를 통해 물리화하는 것이다. 그 관념과 표현은 관객의 감각과 인지, 해석을 통해 수용된다. 수학에서 물리학, 물리학에서 뇌과학의 세계로 이동한다고 할까.  


정: 예술가들에게는 무한이 어떤 의미일까.  


유: 작가 개인의 ‘무한’을 예술가들 전체로 보편화할 수는 없다. 특정 개인의 표상인데, 피노체트가 전기를 끊었다는 점을 상기하면 ‘단절 없는 연속’이라고도 보였다.  


정: 쿠사마 야요이의 ‘인피니티 넷(Infinity Net)’이라는 작품이 있다. 사람의 손으로 일일이 무한을 표현하면 강박적이다. 강박장애의 특징 중 하나가 반복적인 행위와 패턴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것이다. 그 모양도 삐뚤빼뚤 자연스럽다. 그런데 나바로의 작품은 인공적이고 단순하다. 빛의 반사를 통해 무한을 표현하면서 작가의 개입은 최소화한다. 자연은 프랙털이고, 자연에는 유클리드적인 삼각형·사각형·원이 없다. 미니멀한 형식주의로 가면 인공적으로 가공된다. 여기서 무한에 대한 우리의 경험은, 강박적이라기보다는 신비롭고 매혹적이 된다. 그 인공적인 가상은 현실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윤: 아, 작가와는 별개로, 무한에 관한 나의 이미지는 ‘이상(理想)’이다. 무한의 반복적인 절차가 결국은 질적인 새로움을 만들어내지 않나. 다다를 수는 없지만 그 방향으로 가는 과정이 의미 있는 것이다.  


유: 무한은 공간을 확장하는 효과도 낸다. 세 층의 전시 전체에서 공간은 3차원의 모든 방향으로 확장된다. 이를테면 2층 ‘다이 어겐’의 하강하는 무한과 지하 1층 ‘혁명 IV’의 상승하는 무한은 벽과 바닥, 천장을 넘나들며 서로 다른 차원으로 통하는 웜홀 같다.  


김: 일방투시거울로 공간을 확장하는 건 사실 익숙한 개념이다. 그런데 네온의 도형을 배치하는 방식과 반복되는 배열의 종류에 따라 이 작가의 무한은 모두 다른 느낌을 준다. 안으로 걸어 들어가고 싶기도 하고, 손에 닿을 수 없이 차단된 것 같기도 하고, 시지프스처럼 반복적인 무력감을 주기도 한다. 방향도 벽이냐 바닥이냐에 따라서, 공포스럽기도 하고 이상향에 이르는 듯도 하다. 바닥으로 빛이 난 ‘다이 어겐’은 정말 죽음 같았다. 그렇게 여러 감정을 느끼도록 유도한다.  


유: 무한의 가능성을 무한히 탐색하는 것!  


정: 빛도 관객에게 다양한 반응과 감정, 행동을 일으킨다. 자유와 희망을 보여주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어둡다. 정치사회적인 메시지, 현상에 대한 과학자 같은 탐구를 통해 미니멀한 양식 속에서도 다층적인 의미가 중첩되어 전해지는 묘미가 있다.  
IVÁN NAVARRO
 이반 나바로
1972년 칠레 산티아고생. 현재 뉴욕을 무대로 작품활동 중이다.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군사 독재 치하에서 자유·진실·희망에 대한 갈망을 네온과 형광등 빛으로 표현해왔다. 올해 부산시립미술관 첫 야외프로젝트에 참가했고, 2019년 부에노스아이레스 현대미술관에서 대규모 개인전이 예정돼 있다.
 
참석자 소개
김상욱 물리학자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
 
 
유지원 타이포그래퍼
홍익대 시각디자인 겸임교수
 
 
윤태웅 전자공학자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정재승 뇌과학자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정리 유지원 타이포그래퍼  사진 갤러리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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