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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사회는 지옥이 될 수밖에 없는가

중앙선데이 2018.05.26 01:00 585호 31면 지면보기
책 속으로 
새의 시선

새의 시선

새의 시선
정찬 지음

『새의 시선』 소설가 정찬 인터뷰
예술은 보이지 않는 것 드러내야
세월호·용산참사 등의 고통 주목

죽음을 보면 삶이 더욱 선명해져
우리들 비루한 탐욕은 어디까지 …

문학과지성사
 
소설가 정찬(65)은 이렇게 말했다. “예술이 가진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해주는 것이다.”  그의 새 소설집 『새의 시선』에 관한 23일 인터뷰에서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글쎄, 모아 놓고 보니까 그렇더라. 다 죽었어. 다 죽어.” 책에 나오는 인물들 대부분이 죽거나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경험한다는 얘기였다. 소설책에 죽음이 흥건하다는 기자의 언급에 대한 답이었다.
 
그런데 소설 속의 죽음은 개별적인 자연사보다 ‘사회적인 죽음’이 많다. 세월호가 직간접적으로 다뤄지는 단편소설이 전체 일곱 편 중 세 편(‘사라지는 것들’ ‘새들의 길’ ‘등불’), 표제작 ‘새의 시선’은 2009년 용산 참사와 1986년 서울대생 김세진·이재호 분신사건의 트라우마를 정교하게 연결한 작품이다.
 
이번 소설집에 죽음이 많은 이유를 정씨는 이렇게 설명했다. “세월호 같은 사건이 작용한 탓도 있겠지만 어쨌든 죽음은 인간에게 굉장히 중요하지 않나. 생명체라면 다 죽으니까.” 물론 그런 물리적 보편성이 죽음에 천착한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정씨는 말한다. “문학에서 죽음을 바라본다는 것은 결국 삶을 바라보는 것이다. 죽음의 가치가 삶의 가치다. 둘을 동일시할 수 있다. 죽음이라는 깊은 어둠이 있기에 삶이라는 불빛이 선명해 보인다. 어둠이 없으면 빛이 없다. 죽음이 많다는 건 결국 삶이 그만큼 소중하다는 거 아닌가.”
 
소설가 정찬씨. 16번째 소설책 『새의 시선』을 냈다. 세월호 등을 비중 있게 다뤘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소설가 정찬씨. 16번째 소설책 『새의 시선』을 냈다. 세월호 등을 비중 있게 다뤘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새로울 게 없는(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다) 사생관이지만 달콤한 소설의 과육으로 형상화하니 울림이 다르다. 작가 경력 36년 차, 능숙한 솜씨로 그려내는 소설책 속 어떤 죽음들은 참혹하고, 그래서 아름답다. 세월호를 정면에서 다룬 ‘새들의 길’이 그런 작품이다. 세월호는 그동안 숱하게 시·소설로 그려져 왔다. 정씨의 소설 연금술은, 아직도 고통이 생생한 현재진행형의 비극은 자칫 신파로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예술이 다루기 어렵다, 는 무딘 통념을 슬그머니 돌려세운다. 희생자 종우와 엄마의 천연덕스러운 대화를 통해 캐릭터에 감정이입하는 게 감상 포인트다.
 
예술로 포장했지만, 더구나 보이지 않는 걸 보게 해주는 게 예술이라는 작가의 소신까지 고려하면, 소설책을 은근한 사회비판, 고발로 읽을 수도 있겠다. 정씨는 인터뷰에서 용산 참사를 있게 한 정부의 과잉 대응, 대기업들의 탐욕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야만적이다” “너무 비루하다”…. “인간이라는 게 이해할 수 없는 동물이야. 인간사회는 지옥이 될 수밖에 없다”는 데까지 나갔다. 인간의 탐욕, 자본주의의 폐해가 만악의 근본이다.
 
하지만 소설을 단순한 고발보다 예술에 방점을 찍고 바라보게 되는 이유 역시 정씨 발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술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해준다는 발언 말이다. 여기서 보게 한다는 건 무얼 고발한다는 게 아니다. 표제작 제목인 ‘새의 시선’과 관련 있다. 간단히 도식화하면 이렇다. 단편 ‘새의 시선’은 경찰 진압반에 얼떨결에 합류해 용산 참사 현장을 자신의 카메라로 촬영한 후 죄책감에 시달리다 자살을 선택하는 사진작가 박민우의 이야기다. 박민우의 고통에, 상상할 수 없이 뜨거운 불길 속에 생을 마감한 김세진 등의 고통이 겹친다. 김세진을 태운 불길은 진실을 상징한다. 진실은 고통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불에 타는 진실의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야 새의 시선, 사물과 풍경을 투명하게 꿰뚫는, 새의 시선을 얻을 수 있다. 보이지 않던 것들은 새의 시선 아래, 뜨거운 진실의 번제의식을 치른 초월적 시선 아래 제 몸을 드러낸다. 박민우는 죄의식의 하중에 짓눌려 새의 시선을 두려워하다 생을 스스로 마감한 경우다.
 
정씨는 “보이지 않는 걸 보게 해주는 가장 큰 형태가 희생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가령 예수의 희생은 인간의 근원적인 죄를 보게 해줬다. 전태일은 그런 면에서 예언자이고 예술가였다. 자신을 태우는 소신공양을 통해 1970년대 노동현장의 잔혹함, 유신으로 치닫던 박정희 체제의 모순을 드러내 경고해서다. 정찬 소설의 시선은 세월호, 용산 참사 등과 관련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진실 파내기가 주 관심사가 아니다. 그보다는 누군가의 죽음을 통해 진실이 드러나고 그에 따라 변화가 촉발되는, 그 과정을 밝히는 데로 향한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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