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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베스트] 여자가 남자보다 더 둔감하다고?

중앙선데이 2018.05.26 01:00 585호 32면 지면보기
중앙일보와 교보문고가 최근 출간된 신간 중 세 권의 책을 ‘마이 베스트’로 선정했습니다. 콘텐트 완성도와 사회적 영향력, 판매 부수 등을 두루 고려해 뽑은 ‘이달의 추천 도서’입니다. 중앙일보 출판팀과 교보문고 북마스터·MD 23명이 선정 작업에 참여했습니다. 
 

남자보다 지방 많아 저항력 강해
자극에 예민할수록 건강 나빠져
과한 잔소리는 대충 흘려버려야

나는 둔감하게 살기로 했다

나는 둔감하게 살기로 했다

나는 둔감하게 살기로 했다
와타나베 준이치 지음
정세영 옮김, 다산초당
 
예술을 열망하던 시절 가장 바랐던 능력은 예민함이었다. 오감을 열어 한 작품의 세세한 면까지 파악하는 재능이 무척 부러웠다.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인간 실격』, 프랑수아 트뤼포의 영화 ‘400번의 구타’ 등을 한창 볼 때였다. ‘예술가라면 무릇 예민해야지!’ 하는 마음에 매사 감각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소리 변화, 맛의 미묘한 차이 등을 세심하게 느끼게 됐는데 금세 문제가 생겼다. 점점 사소한 문제도 그냥 지나치지 못해 자주 짜증이 났고 우울해졌다. 몇 년간 심신이 한껏 지치고 나서야 예술이니 예민함이니 다 됐으니 그저 건강하고 편안하게 지내고 싶어졌다.
 
소설 『실락원』의 저자 와타나베 준이치가 쓴 이 책은 적당히 둔감하게 사는 태도에 관한 찬사로 가득하다. 2007년 일본에선 『둔감력』이란 제목으로 출간돼 100만부 이상 팔렸고 ‘둔감력’은 그해 유행어 대상에도 올랐다. 이 책은 『둔감력』의 개정판이다. 직장에서 맞닥뜨리는 무례한 사람, 전쟁 같은 출퇴근길, 시도 때도 없이 들이닥치는 소음 등 우리 일상을 괴롭히는 것은 너무 많다. 민감하고 연약한 사람은 외부 자극에 취약해 일일이 반응하는가 하면 둔감한 사람은 크게 개의치 않고 금세 잊어버린 채 다른 일에 집중한다. 이것이 저자가 말하는 ‘둔감력’이다.
 
잠 잘자는 것도 능력이다. 외부 자극에 개의치 않고 적당히 둔감해야 잠을 잘 잘 수 있다. [중앙포토]

잠 잘자는 것도 능력이다. 외부 자극에 개의치 않고 적당히 둔감해야 잠을 잘 잘 수 있다. [중앙포토]

정형외과 의사 출신인 저자는 자신이 직접 겪었던 주변인을 예시로 든다. 매번 수술실에서 잔소리하던 교수와 그런 말에 ‘네~ 네’라며 건성건성, 하지만 꾸준히 대답하던 S 선배. 저자는 남의 말을 한 귀로 흘려버리며 수술 실력을 키운 S 선배의 둔하고 긍정적인 태도를 칭찬한다. 어디서나 잘 자는 놀라운 ‘수면력’ 소유자인 아는 아주머니, 친구들과 똑같이 상한 음식을 먹고도 배탈 나지 않던 친구 P 등등. 이들은 타고난 ‘둔감력’으로 건강을 지키는 사람들이다.
 
저자는 스트레스에 덜 반응하는 삶의 태도가 몸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긴장, 불안 상태에 빠지면 교감 신경은 혈관을 수축하고 혈압을 높이며, 편안한 상태가 되면 부교감 신경이 혈관을 확장, 이완시킨다는 것이다. 즉 건강의 첫걸음인 원활한 혈액순환은 스트레스와 직결된다. 그렇다면 ‘둔감력’을 높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누가 뭐래도 나를 사랑하는 게 먼저”라고 말한다. 누군가 칭찬을 하면,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우쭐해 할 수 있는 것도 재능이라는 것이다. 딱히 근거가 없는 칭찬이라도 넙죽 받아 자기를 위로하면 가장 좋다.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남자보다 여자가 더 강하고 둔감하다”는 주장이다. 옛날엔 남아의 사망률이 압도적으로 높았을 만큼, 겉보기에 여성이 더 가냘파 보이지만 저항력은 남자보다 강하다. 아이를 출산할 수 있는 여자의 몸은 지방으로 둘러싸여 있어 추위에 강하고, 출혈에도 남성보다 강하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아이를 위해서라면 어려운 일도 무릅쓰는 어머니의 사랑이 ‘최고의 둔감력’이다.
 
둔감하게 살라는 저자의 말은 “뭐든 적당히 넘어가라”는 어른 말씀 같기도 하지만 조금 다르다. 서문에 나온 것처럼 둔감력은 도덕적으로 무책임한 것이 아니며 괴롭고 힘든 일이 생겼을 때 주저앉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강한 힘을 말한다.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면 날카롭고 예민한 것만이 재능이라 여겼던 때로 이 책을 보내고 싶다. “예민함이나 순수함도 밑바탕에 둔감력이 있어야 진정한 재능으로 빛날 수 있다.” 엄격한 조직의 의사로, 좋은 글을 쓰려 희망하고 절망하는 소설가로 살아온 저자의 노년 깨달음이 깊은 울림을 남긴다.
 
김나현 기자 respir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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