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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희의 시시각각] 몰카라는 이름의 공포

중앙선데이 2018.05.26 01:00 585호 34면 지면보기
양성희 논설위원

양성희 논설위원

대학생 딸 아이가 밤길이나 조심하면 되는 줄 알았다. 대낮에 화장실, 그것도 학교 화장실 가는 일을 그렇게 두려워하고 있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홍대 누드 크로키 모델 몰카 사건’과 지난 주말 대학로에서 열린 ‘편파수사 규탄 여성 시위’가 있고 난 후 비로소 딸의 공포와 마주했다. 딸은 “공중 화장실을 갈 때는 어딘가 몰카가 있겠지 포기하는 심경”이라고 했다. 화장실 벽에 몰카로 의심되는 구멍이 있어도 확인 안 한다고 했다. “확인하느라 들여다보면 얼굴이 찍힐 테니 그것만은 피하고 싶어서”란다.
 

번지는 몰카범죄, 초등생도 놀이처럼 가세
엄중처벌로 음란물 관용 문화 바꿔놓아야

이틀 전에도 지하철에서 몰카를 찍던 30대 남성이 잡혔다. 휴대폰에서 무려 6000장의 몰카가 나왔다. 구청 직원인 그에 대해 주변 사람들은 “내성적이고 온순하다”고 증언했다.
 
몰카(불법촬영) 범죄는 날로 급증하고 있다. 피해자는 압도적으로 여성이다. 찍혔는지도 모르게 찍히고, 퍼져나간다. 소셜 미디어나 포르노 사이트에 ‘너 닮은 영상이 있다더라’는 주변의 전언으로 피해 사실을 알게 되는 식이다. 피해 사실을 감추고 싶은 최소한의 자구책도 허용되지 않는 범죄다. 상당수 성관계 동영상은, 남자 친구가 이별 후 복수 차원에서 퍼트리는 ‘리벤지 포르노’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누구나 몰카를 찍고 공유할 수 있는 시대다. 예전처럼 음란산업 종사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여성이 음란물 주인공이 되고, 평범한 남성이 음란물을 생산·유포한다. ‘일반인 포르노’ 시대인 것이다. 심지어 최근에는 초등생들 사이에 ‘엄마몰카’‘선생님몰카’가 유행이라고 한다. 초등학생들이 성인 남성 인터넷방송 진행자들을 흉내 내 엄마나 여교사 몰카를 찍어 유튜브에 올리는 것이 놀이처럼 번지고 있는 것이다. 한 영상엔 “엄마 엉덩이를 찍어 올릴 테니 구독해달라”는 앳된 소년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조회 수 16만을 넘긴 ‘엄마 목욕 몰카’도 있다. 한마디로 신체적 접촉이나 위해를 가하는 것이 아니니 가해자의 죄의식이 낮고(전무하고), 범죄행위가 용이한 것이 디지털 성범죄다. 신체 노출의 특성상 남녀가 함께 노출돼도 피해는 온통 여성에게 집중된다.
 
‘디지털 장의사’(온라인 기록 삭제 전문가)로 일하며 몰카 피해 여성을 돕고 있는 이지컴즈 박형진 대표는 한 인터뷰에서 “몰카는 피해자에게 야동이 아니라 살인 동영상”이라고 말했다. “피해 여성들은 자살 직전 동아줄 잡는 심정으로 연락해온다. 자살부터 막는다. ‘죽으면 사람들이 더 많이 찾아본다’며 말린다.” “몰카가 잘 찍히는지 렌즈를 흘끔 쳐다보는 남자 모습을 볼 때 피가 치솟는다. 한동안 성인 사이트에서 인기를 끌던 영상도 몇 개월 지나면 반응이 시들해진다. 또 다른 피해자가 생겨야 기존 피해자 고통이 줄어드는 구조다.”
 
그의 이 말은 왜 거리로 여성들이 뛰쳐나왔는지 잘 설명해준다. 지난 주말 대학로 시위는 여성만 참여한 최대 규모의 시위였다. 조직화된 시위 주체도 따로 없었다. 몰카라는 일상의 공포와 싸우던 여성들이 그동안 국가로부터 제대로 보호받지 못했다고 외치는 자리였다.
 
딸은 ‘야동순재’라는 말도 싫다고 했다. TV 시트콤 속 야동을 훔쳐보는 할아버지 캐릭터를 친근하게 일컫는 말이다. 시트콤에선 노인이 근엄하기 보다 성적 욕망을 숨기지 못하는 모습이 인간적으로 그려지며 사랑받았지만, 여성을 성적 도구화하는 음란물에 관대하며 그를 남성성의 증표로 인증하는 문화가 몰카범죄에 대한 죄의식의 진공상태로 이어진 것은 명백한 일이다. 믿기지 않지만 몰카 피해 여성이 괴로워하다 죽음에 이르면 ‘유작’이라는 제목으로 영상이 더 많이 유통된다고 한다. 
 
양성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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