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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모라벡 파라독스의 교훈

중앙선데이 2018.05.26 01:00 585호 35면 지면보기
김형태 서울대 경영대 객원교수·전 자본시장연구원장

김형태 서울대 경영대 객원교수·전 자본시장연구원장

모라벡 파라독스(Moravec‘s Paradox)란 인공지능(AI)과 관련된 파라독스다. 과학자 모라벡 등이 주장했는데, AI에 수준 높고 “복잡한” 논리를 구현하기는 쉽지만 오히려 “단순한” 지각과 운동을 구현하기는 어렵다는 의미다. 한마디로 “인간에게 어려운 것은 AI에게 쉽고, 인간에게 쉬운 것은 AI에게 어렵다”는 말이다. AI의 진화는 실로 화려하다. 1997년 세계 체스챔피언을 이겼고, 2016년 바둑 세계챔피언을 이겼다. AI가 조종하는 무인자동차를 보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AI가 투자자문도 하고 환자진료도 한다. 그렇지만 5살짜리 어린애가 주변을 순식간에 지각하는 능력, 블록을 어려움 없이 균형 잡아 쌓는 것은 아직도 힘들다.
 

원형은 단순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AI로 첨단화되고 복잡해질수록
원형에 충실한 제품 찾는 사람들
원형 제품과 원시적 제품은 달라
본질적 기술이 제품 속에 녹아있어
“오래된 미래”가 각광받는 시대다

왜 그럴까. 사실 우리가 지금 쉽다고 느끼는 것은 원래부터 쉬운 것이 아니었다. 거친 환경 속에서 수백 만 년 동안 진화를 거듭하며 습득한 결과다. 오래된 것일수록 자연스럽고 편하고 심지어 의식도 못 한다. 무의식에 “원형”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생존에 중요한 것들은 뇌와 중추신경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쉽다고 느낀다. AI 입장에선 어렵고 복잡한 작업인데 말이다. “한눈에 알아봤다”. “눈치챘다”. “왠지 이상하다”. “센스가 뛰어나다” 같은 특성은 AI에 구현하기 힘들다. 너무도 인간적인 것, 그래서 몇백 만년을 견디어 “원형”으로 자리 잡은 것 그래서 너무도 쉬운 것은 AI가 대체하기 힘들다. 수백만 년의 진화가 압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체스와 바둑은 왜 AI가 잘할까. 체스의 역사는 기껏해야 3000년, 바둑의 역사는 4000년이다. 인간 진화의 역사와 비교하면 한 순간이다. 인간 진화의 역사가 24시간이라면 바둑이 생긴 지는 5초 정도 됐다. 생긴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인간이 아직 어려워하고 복잡하다고 느낀다. 체스와 바둑은 전형적으로 AI가 잘하는 분야다. 수없이 많은 케이스가 과거에 이미 존재해 알고리듬화 할 수 있는 분야에선 인간이 당하기 힘들다. AI를 폄하하는 말이 아니다. 인간과 AI에게 복잡함의 의미와 차원이 다르다는 말이다.
 
기업도 개인도 AI시대 생존을 걱정한다. 도발적인 주장 하나 해보자. AI시대에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AI 연구도 물론 중요하지만 인간을 더 깊이 연구해야 한다. 인간을 잘 알아야 AI로 대체불가능한 인간능력도 알 수 있고, 동시에 더 좋은 AI도 만들 수 있다. 최고의 명품판정인은 가짜들을 모아놓고 연구하지 않는다. 진품을 뜯어보고 한 번 더 뜯어보고 진품을 더 깊이 연구한다. 그러면 가짜는 “한 눈에 그냥” 보이기 때문이다. AI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것이 바로 인간의 원형, 제품의 원형이다. 원형은 과거에 태어났지만 미래 또한 품고 있다. 그래서 원형을 찾는 것은 “오래된 미래”를 찾는 것이다. 미래엔 첨단제품도 원형성을 겸비해야 성공할 것이다.
 
조지 포먼이란 스테이크 그릴이 있다. 정말 단순한 그릴이다. 노트북 크기고 온도조정 장치도 없고, 굽는 고기 종류를 선택하는 버튼도 없었다. 심하다 싶을 정도로 아무런 조절장치가 없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과거에 유명했던 세계 헤비급 복싱챔피언 “조지 포먼” 이름을 딴 그릴 이름이다. 은퇴 후 목사가 되었고 나중엔 사업으로 돈도 많이 벌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조지 포먼”그릴을 통해서 인 줄은 그 때 처음 알았다.  
 
솔직히 조지 포먼이란 브랜드를 보고 제품의 성능에 대해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제품의 구조와 기능이 지나치리만큼 단순하고, 권투선수 조지 포먼이란 이름이 전기제품 기술력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한번 스테이크를 구워 먹어보니 스테이크 맛이 기대를 초과해도 한참 초과한다. 웬만한 스테이크 전문점보다 낫다. 고기 안의 육즙이 밖으로 빠지지 않고 부드러운 맛이 그대로 느껴진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요리하기가 너무 쉽다. 스테이크 고기를 잘라, 그릴에 넣고 뚜껑만 닫으면 된다. 온도도 고기종류도 심지어 시간도 선택할 옵션이 없다. 요리 후 고기가 그릴에 거의 달라붙지 않기 때문에 그냥 종이행주로 닦아 주기만 하면 된다. 지극히 단순한 제품이지만 “육즙이 빠져 나가지 않게 스테이크를 맛있게 굽는다”는 그릴의 본질과 원형 차원에서는 첨단이다.
 
원형은 단순하고 간결하다. 군더더기가 없다. 조지 포먼처럼 우직해 보이기도 한다. 스테이크 그릴이라면 “스테이크를 맛있게 굽는 것”이 가장 중요한 본질이요 원형이다. 세상이 복잡해지고 AI가 첨단화될수록 사람들은 오히려 원형에 충실한 제품은 찾는다.  
 
원형적 제품은 원시적 제품과는 다르다. 제품의 본질에 관한 한 첨단기술을 구비했고 그 기술은 제품 안에 보이지 않게 녹아있어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하고 원형적이다. 비즈니스에도 “오래된 미래”가 각광받는 시대가 왔다. 아무리 AI가 첨단을 달려도 인간의 원형, 제품의 본질에 충실한 제품만이 성공할 수 있다. AI가 원형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AI는 원형을 잘 유지하고 구현해내는 수단이다. 모라벡 파라독스가 알려주는 또 다른 교훈이다.
 
김형태 서울대 경영대 객원교수·전 자본시장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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