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철학의 힘, 수능 만점자 낸 미인가 대안학교 ‘지혜학교’

중앙선데이 2018.05.26 00:09 585호 8면 지면보기
장동식 교사의 ‘논어 강독’ 시간. 학생들이 토론 할 수 있도록 자리가 배치돼 있다. [김경빈 기자]

장동식 교사의 ‘논어 강독’ 시간. 학생들이 토론 할 수 있도록 자리가 배치돼 있다. [김경빈 기자]

지난 15일 오전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철학·인문학 대안학교 지혜학교(Sophia School) 의 ‘델포이’란 방에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들었다. 중·고교생 나이 아이들이다. 어떤 아이는 막 잠에서 깬듯 연신 하품을 했다. 헤어롤을 매달고 온 여학생도 있었다. 복장은 편해보였다. 앞쪽 가운데엔 밀짚모자를 쓴 장종택 교장(54)과 10여 명의 교사들이 함께 바닥에 앉았다.
 

철학·인문학 가르치는 광주 대안학교
중·고교 통합 6년 과정 개교 9년째
작년 서울대에 3명 입학시켜 화제

고전·철학·사회·자연·예술 5개 영역
연간 20~30권 책 읽고 토론 수업

교사 “학생들 지적 호기심 이끌어줘”
학생 “인생에서 치열하게 고민할 때”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결국 그 벽을 넘는다.”(도종환 시인의 ‘담쟁이’)
 
5학년(고2에 해당) 안정은(16)양이 시를 낭송한 뒤 “우리 선생님들. 저희에게 담쟁이로 남아주세요”라고 말하자 학생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교장과 교사 모두는 아이들이 만든 부채와 상장을 받았다. 장동식 교사는 “귀하는 3학년의 충만한 똘기를 모두 받아주었기에 이 상장을 드립니다”는 상장을 받았다.
 
 
학력 인정 안 돼 검정고시 치르고 진학
 
지혜학교 운동장에서 체육시간. 폐교 초등학교 가 대안학교로 변신했다. [김경빈 기자]

지혜학교 운동장에서 체육시간. 폐교 초등학교 가 대안학교로 변신했다. [김경빈 기자]

국내에 대안학교가 생긴 건 1990년대. 현재 수십개의 학교가 운영 중이다. 지혜학교는 철학·인문학을 가르친다는 점에서, 특히 지난해 수능에서 만점자가 나왔다는 점에서 전국적으로 화제를 모았다.
 
철학하는 중·고교라면 아이들은 무슨 철학을 배울까. 장교사를 따라 5학년 수업(논어 강독)에 들어갔다. 학생은 22명. 장 교사가 『논어』의 한 구절인 ‘삼인행필유아사언(三人行必有我師焉,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을 칠판에 썼다.
 
장 교사는 “이런 경험이 있는지 서로 얘기해보자”고 말을 뗐다.
 
“뭔가에 쫓겨 조바심이 나고 그럴 때 한 후배가 ‘뭔가를 꼭 해야 하나’라고 한 말이 기억나요. 그게 훅하고 내 마음에 들어왔어요.”(이하정)
 
"나도 그런 경험이 있었어요. 90년대 후반에 목회를 하면서 어려운 청소년들을 위해 후원금을 걷고 있었는데 그 때 어떤 분이 ‘하나님이 돈이랑 무슨 상관이죠’라고 한 말이 마음에 박혔어요. 그 때 두 시간 동안 그 말이 내 안에서 살을 저몄어요. 회 뜨듯이 말이죠. 그 생활을 접고, 여기에 오게 됐죠.”(장 교사)
 
학생 두 명 정도는 꾸벅꾸벅 졸고 나머지는 장 교사의 말에 집중했다. 다시 "그럼 스승이 정말 있을까요. 교사라는 직업은 있어요. 그렇다고 교사가 스승이 되나요. 그럼 누가 스승이죠”하고 물었다. 아이들은 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자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공자 제자들과 도망가고 배신한 예수의 제자 이야기를 꺼냈다. 이어 "배우는 자가 있을 때, 스승의 말을 삶에 끌어들일 때 스승이 있는 거예요. 여러분이 스승의 날 나에게 많은 선물을 했지만 여러분은 배우는 자인지 생각해주길 바랍니다”고 마무리했다.
 
 
교감 “스스로 성찰하는 철학하기 장점”
 
지혜학교의 스승의 날 행사. [김경빈 기자]

지혜학교의 스승의 날 행사. [김경빈 기자]

10분 휴식시간. 정영현양은 책상 밑에서 ‘언어의 온도’라는 책을 꺼냈다. 그는 “고1 나이 때 이 학교에 왔다. 24시간 생활관에서 아이들과 사는 생활이 처음에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이젠 적응이 된다”고 말했다. 다른 아이의 책상 위엔 『현대의 사회학』(앤서니 기든즈), 『자유로부터 도피』(에리히 프롬) 등의 책도 보였다. 지혜학교는 중·고교 통합 6년 과정이다. 한 해 동안 기본적으로 학생들은 최소 20~30권의 책을 읽는다. 고전·철학·사회·자연·예술의 5개 영역에서 책이 선정되고 학생 3~8명이 교사 한 명과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며, 글을 쓴다.
 
옆 교실에선 1학년 국어를 맡는 문숙영 교사의 낭독시간이다. 학생들과 책을 소리 내어 읽고 대화한다. 교재는 『마음사전』이다. ‘분노’ ‘좌절’ 등 희로애락의 의미를 에세이 방식으로 설명하는 책이다. 문 교사는 학생들과 교재 한 장을 낭독했다. 이어 학생들의 마음 상태를 주제로 대화했다.
 
“어떨 때 분노하지?”
 
“엄마가 40년 동안 익힌 모든 말을 동원해 날 야단칠 때요.”
 
순간 교실엔 웃음이 터져나왔다. 학생들은 마음 속을 털어놓으며 자신만의 마음사전을 만들기 시작했다. 몇몇 학생은 책상에 엎드려 잤다. 문 교사는 개의치 않았다. 문 교사는 "학생마다 신체리듬이 있다. 특히 중학교 1학년 전후 노곤함과 무기력이 심한 학생도 있다. 그 리듬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멋대로 수업 중에 자는 학생을 어떻게 가르칠까. 문 교사는 "학생들은 어느 순간 지적 호기심을 보인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이끌어주면 된다”고 말했다. 학생마다 고유 리듬을 무시하고 정해진 ‘교육 공정’에 따라 영어나 수학 지식을 넣어주는 방식과는 거리가 있는 교육이다.
 
 
언어만으론 한계, 아트 교육 보강 필요
 
여기에도 고3이 있다. 일반 학교 같으면 수능 준비로 파김치가 된 아이들일 텐데 그런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대학 진학반(10명)과 인문반(4명)이 따로 공부했다. 인문반 장은결양은 "지금이 인생에서 치열하게 고민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대학 입시 준비는 밖에 나가서도 할 수 있다”고 했다.
 
학교가 문을 연 것은 2010년. 지금까지 졸업생은 91명 나왔다. 이 학교를 졸업해도 학력이 인정되지 않는다. 교육청의 설립인가를 받지 않은 미인가 대안학교여서다. 5학년 학부모 안병찬(48)씨는 "처음엔 미인가라는 점에서 불안해 하는 학부모가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3개월 정도 적응과정을 거쳐 생각의 힘을 키우면서 완전히 달라진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대학에 가려면 재학 중 고졸학력 인정 검정고시를 치러야 한다. 지난해 수능 만점자 심지환 씨등 3명이 서울대에 진학했고, 이들을 포함해 85명이 대학으로 진로를 잡았다. 이남옥 교감은 "수능 만점이나 서울대 입학은 그냥 하나의 결과에 불과하다”며 "우리 학교의 장점은 읽고, 생각하고, 토론하고, 스스로를 성찰하는 ‘철학하기(doing philosopy)’에 있다”고 말했다. 철학은 인식론·존재론·서양철학 등 과목으로 배우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 학교를 방문한 교육기업 스콜라 김대은 대표는 "철학이 학생의 눈높이에 맞게 녹아들어가야 하는데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며 "아이들의 생각을 키우는데 언어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아트 교육 등도 보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혜학교
● 위치: 광주광역시 광산구 등암동
● 개교: 2010년 미인가 대안학교
● 교육과정: 중·고교 통합 6년 과정
(1·2학년 기초과정, 3·4·5학년 본과정, 6학년 심화과정)
● 교육방식: 독서·토론·발표 위주 교육, 과목 통합 교육
● 교사 한 명 당 학생수: 1대3(학생 120명, 정교사 24명·시간강사 23명)
● 성적표: 서술형 과정평가 결과를 담은 성적표(우수·보통·부족 등으로 구분)
 
광주=강홍준 기자 kang.hongjun@joongang.co.kr
관련기사

구독신청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