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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젊은 재벌 총수들, 외국인 주주에 끌려다니지 마라

중앙일보 2018.05.25 02:07 종합 28면 지면보기
김광기 경제연구소장·논설위원

김광기 경제연구소장·논설위원

굶주린 하이에나들이 한국을 배회한다. 글로벌 투기자본이다. 이제 막 들판에 나온 어린 사자들을 에워싼다. 경영권 승계 과정에 있는 재벌가 3~4세다. 겁이 난 사자는 고기를 던져주지만 이내 먹어치우곤 다시 온다. 과거에 사자 앞에서 꼼짝 못 했던 동물들이 슬금슬금 하이에나 편에 가세한다.
 
구본무 LG회장 별세와 다른 그룹 회장들의 건강 악화로 재계가 총수 세대교체의 급물살을 타고 있다. 5대 그룹 총수의 평균 나이가 52세로 확 낮아진다. 이들 앞은 첩첩산중이다. 외국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과 정부의 끝 모를 재벌 압박, 경영 능력 시비에서 대한항공 3세 갑질사건까지.
 
그래도 이들은 사업을 키워 가문의 영예를 지켜야 한다. 그게 곧 국가경제를 위하는 길이기도 하다. 이 땅의 청년들은 여전히 재벌 계열사에 취업하길 갈망한다. 무거운 책임감이 젊은 재벌 총수들의 어깨를 짓누른다. 이들이 활기차게 일하며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선 경영권의 안정이 필수다. 그 답은 어디서 구해야 할까.
 
요즘 주주를 중시해 배당을 늘리고 자사주 매입·소각으로 주가를 띄우는 경영이 유행처럼 번진다. 미국식 주주자본주의다. 이게 국내 기업도 따라가야 할 ‘정도경영’인양 거론된다. 삼성전자가 순익의 절반을 주주환원에 쓰겠다고 약속했다. 매년 10조~20조원이 투입될 전망이다. 현대차도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하며 자사주 1조원 소각 계획을 발표했다. 그 혜택은 주식의 절반을 쥐고 있는 외국인 주주들에 집중된다. 재벌이 앞다퉈 주주 중시 경영에 나서는 것은 외국인 주주를 의식한 측면이 강하다. 외국인은 과연 재벌 총수의 경영권을 지켜주는 우군이 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외국인 투자자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결국은 기업을 압박해 주가를 띄운 뒤 차익을 챙겨 떠나는 게 주류다. 자사주 매입이 진행될 때면 외국인 매물이 늘어나는 게 그런 이유에서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왜 기업이 주주의 전유물인가. 종업원과 채권단, 협력업체·소비자·지역사회 등도 주인으로 대접해주면 안 되나. 이런 이해관계자들은 기업이 잘못돼 주주들이 주식을 팔고 떠나도 끝까지 남아 기업과 운명을 같이할 존재가 아닌가.
 
젊은 재벌 총수들에게 편협한 주주자본주의적 사고방식에서 탈피해 광범한 이해관계자들과 소통하는 경영을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고 구본무 LG회장이 걸었던 길이다. 그는 이웃집 아저씨의 모습으로 종업원에게 다가가 정을 나누고 대화했다. 주주들에게 예를 갖추면서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잊지 않았다. “더 많이 소통하며 즐겁게 일해야 혁신도 이뤄진다. 기업은 국민과 사회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면 영속할 수 없다”는 게 구 회장의 지론이었다.
 
지금 재벌이 해야 할 가장 큰 사회적 책무는 무엇일까. 바로 과감한 투자를 통한 일자리 창출이다. 외국인 환심사기에 쓰는 돈의 절반만 돌려도 수만개의 청년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 청년이 재벌에 취업하면 사돈의 팔촌까지 환호하는 세상이다. 몇 다리 거치면 전 국민이 연결된다. 일자리 창출에 열심인 기업이 외국 투기자본으로부터 공격을 받게 된다면 온 국민이 몸으로 막아주지 않을까.
 
현대차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의 공격을 받자 재계는 경영권 방어제도를 만들어달라고 호소했다. 주요 선진국에 있는 차등의결권주식이나 포이즌필(신주인수선택권)을 우리 기업도 쓸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이는 법규를 바꿔야 가능한 것으로 국회가 움직여야 된다. 국회를 움직이는 힘은 결국 국민 정서에서 나온다. 외국인보다는 국민의 마음을 사야 경영권 안정을 근본적으로 도모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젊은 재벌 총수들은 사회와 소통할 줄 모르고 밀실에서 회계 수치에 치중하는 경영을 할 것 같다는 소리를 듣는다. 이런 이미지를 불식하고 국민에게 소탈한 모습으로 다가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김광기 경제연구소장·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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