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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 깨는 ‘데이터 야구’ … 오승환 첫판대장도?

중앙일보 2018.05.24 23:51 경제 7면 지면보기
오승환. [AFP=연합뉴스]

오승환. [AFP=연합뉴스]

메이저리그 탬파베이 레이스는 지난 20일과 21일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와의 경기에 세르지오 로모(35)를 이틀 연속 선발 투수로 기용했다. 한 선수가 이틀 연속 선발로 나선 건 2012년 잭 그레인키(당시 밀워키 브루어스) 이후 처음이었다. 당시 그레인키는 첫 경기에서 심판 판정에 항의하다 퇴장을 당한 뒤 다음날 다시 선발로 나섰다. 하지만 로모는 상황이 다르다. 로모는 선발 등판 경험이 전혀 없는 불펜 전문 투수다. 2008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그는 20일 등판 전까지 중간 계투로만 588경기에 출전했다.
 

탬파베이 불펜 투수가 연이틀 선발
구멍난 선발 메우려 파격적 기용
정교해진 데이터 분석 덕분 가능
야구계 부작용 우려, 찬반 엇갈려

현대 야구에서 투수는 철저한 분업 체계 속에서 마운드에 오른다. 우선 5~6명의 선발 투수가 순번을 정해 차례대로 등판하는 게 일반적이다. 선발 투수는 보통 5~6이닝을 소화한 뒤 불펜 투수에게 마운드를 넘긴다. 불펜 투수도 승리조, 추격조, 패전조 등으로 나뉜다. 6~7회에 등판하는 투수와 7~8회에 등판하는 투수도 다르다. 8회까지 앞서가는 경우 9회 마무리 투수가 등판해 경기를 끝낸다. 팀 상황에 따라 7~8명의 불펜 투수가 대기한다.
 
그래서 불펜 투수 로모의 선발 등판은 파격적이다. 탬파베이는 올 시즌 4명의 투수로 선발 로테이션을 운영하고 있다. 케빈 캐시 탬파베이 감독은 구멍 난 5선발 자리를 메우기 위해 상식을 깨뜨리는 전략을 선택했다. 그는 시즌 전부터 5경기 중 하루는 불펜 투수로 경기를 치르는 ‘불펜데이’ 전략을 펴겠다고 공언했다.
 
캐시 감독의 파격에는 근거가 있었다. 그는 “선발 투수가 상대 타자와 두 번 이상 상대하고 나면 고전하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라고 밝혔다. 야구 통계 사이트 베이스볼 레퍼런스에 따르면 지난해 선발 투수가 등판 후 타자를 첫 번째 상대했을 때의 피OPS(출루율+장타율)는 0.731이었다. 하지만 타순이 한 번 돌고 다시 상대했을 때는 0.779, 세 번째 상대 때는 0.801로 늘어났다. 올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선발 투수의 피OPS가 첫 번째 상대 때 0.694에서 두번째 대결 때는 0.718로 높아진다.
 
탬파베이는 전형적인 스몰 마켓 구단이다. 탬파베이는 올해 미국 포브스가 발표한 메이저리그 구단 가치 순위에서 최하위(9억 달러)에 머물렀다. 올해 홈 경기 평균 관중도 1만4496명으로 30개 구단 가운데 29위다. 탬파베이는 그동안 재정적 열세를 참신한 전략으로 극복해냈다. 데이터 분석을 통해 선수를 영입하고, 이를 현장에도 적극 활용했다. ‘불펜데이’ 전략도 연장선상이다.
 
야구계의 의견은 분분하다. 애런 분 뉴욕 양키스 감독은 23일 “5인 선발 로테이션이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는 상황에서 탬파베이의 선수 기용 방식을 이해할 수 있다”고 밝혔다. 두 경기에 걸쳐 로모를 상대한 LA 에인절스 내야수 잭 코자트는 “야구에 좋지 않은 일”이라며 “재정이 열악한 구단들이 몸값이 비싼 선발 투수를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악용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이틀 연속 마운드에 오른 로모는 20일 1이닝 무실점, 21일 1과 3분의 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탬파베이는 에인절스와의 2경기에서 1승 1패를 기록했다.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MLB.com은 지난 23일 “로모의 성공이 다른 팀의 실험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MLB.com은 에인절스 등 우타자 비중이 높은 팀을 상대할 때 이 전략이 효과적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오른손 투수인 로모는 올 시즌 오른손 타자에게 무척 강했다. 로모의 올해 피안타율은 0.254다. 왼손 타자에겐 0.360으로 약하지만, 오른손 타자에는 0.196으로 강했다. 우타자 일색인 에인절스 타선을 상대하기에 로모가 적합했다는 의미다. MLB.com은 메이저리그 불펜 투수 가운데 선발 등판이 가능한 투수로 데이비드 로버트슨(뉴욕 양키스), 유스메이로 페티트(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등과 함께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오승환(36)을 거론했다. 오승환은 오른손 타자를 상대 피안타율 0.214를 기록 중이며 탈삼진 22개 중 17개를 오른손 타자로부터 빼앗았다.
 
이렇듯 정교해진 데이터 분석은 당연하게 여겨졌던 야구의 기본 틀을 바꿔놓고 있다. 팀에서 가장 강한 타자를 2번 타자로 기용하고, 9번이 어울리는 투수를 8번 타자에 전진 배치하는 것도 이런 흐름이다. 메이저리그에선 도루, 희생번트 무용론을 정설처럼 받아들인다. 과거 데이터 분석 결과 도루와 희생번트가 득점력을 높이는데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타자들 사이에선 그물망처럼 촘촘해진 수비 시프트를 피하기 위해 뜬공을 치기 적합한 발사 각도를 분석하는 것도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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