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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나이키’ 안타스포츠 만든 주인공

중앙일보 2018.05.24 17:00
안타 KT3 Rocco [사진 안타 홈페이지 캡처]

안타 KT3 Rocco [사진 안타 홈페이지 캡처]

미국과 유럽에 나이키, 아디다스가 있다면 중국에는 이 브랜드가 있다.  
安踏 ㅡ 안타 ANTA다.  

中 짝퉁신발 성지 푸젠서 탄생
2011년 업계 1위 리닝도 제쳐

 
국내엔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중국 1위 스포츠 웨어 브랜드다.
 
홍콩증시에 상장된 안타스포츠의 시가총액은  
1100억 홍콩달러(약 15조원)를 넘어선다.  
[2018년 4월 10일 기준]
안타 로고 [사진 www.chinahr.com]

안타 로고 [사진 www.chinahr.com]

2017년 안타의 매출은 167억 위안. 우리 돈으로 약 2조 8300억원이다. 안타의 연간 순이익은 31억 위안, 5300억원 정도이며 총이익률이 49.4%에 이른다.  
 
2017년 말 기준 안타그룹이 운영하는 매장 수는 9467곳, 휠라FILA와 데상트Descente 매장은 중국에서 각각 1086개, 64개에 이른다. 휠라와 데상트를 언급한 이유는 안타가 이 두 브랜드와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  
 
안타는 2010년 휠라코리아와 함께 현지 법인 풀 프로스펙트Full Prospect를 설립했다. 안타와 휠라코리아는 각각 지분 85%, 15%를 가지고 있다. 2016년에는 1억 5000만 위안(약 254억원)을 들여 데상트재팬의 자회사 데상트 글로벌 리테일, 이토추의 자회사 이토추섬유무역과 합자회사를 세워 중국 본토 내 데상트 제품의 디자인과 판매를 맡고 있다.
안타스포츠는 2014년 NBA차이나와 장기 파트너십을 맺었다 [사진 안타 홈페이지 캡처]

안타스포츠는 2014년 NBA차이나와 장기 파트너십을 맺었다 [사진 안타 홈페이지 캡처]

안타스포츠와 관련된 브랜드는 이게 끝이 아니다.  
 
-키즈 라인인 안타 키즈ANTA KIDS
-2014년 장기 파트너십을 맺은 NBA차이나
-2015년 인수한 영국 아웃도어 브랜드 Sprandi
-2017년 우리나라 코오롱스포츠와 합작으로 세운 코오롱스포츠차이나
-2017년 인수한 유명 아동복 브랜드 King Kow小笑牛  
등이 있다.
 
온라인 매출도 빠르게 신장 중이다. 중국판 블랙프라이데이인 2017년 11월 11일 광군제(솽스이) 때는 하루 온라인 매출만 6억 7000만 위안(약 1137억원)을 찍으며 신기록을 세웠다.
딩스중 안타스포츠 창업자 [사진 baike.baidu.com]

딩스중 안타스포츠 창업자 [사진 baike.baidu.com]

딩스중丁世忠, 안타스포츠의 창업자다.  
그는 어떻게 안타를 중국의 나이키로 키워냈을까.  
 
푸젠성 진장晋江. 지금은 3000개가 넘는 신발 공장과 40개 이상의 상장사가 이곳에 터전을 잡고 있지만 30년 전에는 작은 어촌에 불과했다. (푸젠성은 짝퉁 신발의 성지이기도 하다)  
 
안타스포츠 신화는 이곳에서 시작됐다. 때는 1980년대 초, 딩스중은 신발 공방에서 자랐다. 이 공방의 신발은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방식으로 생산돼 나이키 상표가 붙어 전 세계로 팔려나갔다.
1986년, 16세였던 딩스중은 자본도, 경험도 없었지만 패기만은 엄청났다. 아버지에게서 협찬(?) 받은 신발 600켤레를 가지고 홀홀단신으로 수도 베이징으로 떠났다.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전환하고 있던 시기를 노린 것이었다. 딩스중은 타고난 수완으로 베이징의 명동 왕푸징을 포함한 주요 상점 매대에 고향에서 생산된 신발들을 쫙 깔았다. 그렇게 4년 동안 20만 위안을 벌었다.  
 
"OEM 신발은 한 켤레에 고작 몇십 위안인데, 왜 브랜드 신발은 몇백 위안이지?"
처음엔 고향에서 생산한 신발을 외지에서 팔자는 생각으로 베이징에 왔지만 딩스중은 곧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1994년 고향 진장으로 돌아온 딩스중은 아버지 딩쓰런丁思忍과 함께 회사를 창업했다. 회사 이름은 아버지가 지었다. 안심창업安心创业과 견실하다脚踏实地는 의미에서 '안타'로 결정했다.
중국 탁구 국가대표였던 쿵링후이 [사진 sports.163.com]

중국 탁구 국가대표였던 쿵링후이 [사진 sports.163.com]

1999년 딩스중은 과감한 선택을 한다.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탁구 금메달리스트였던 쿵링후이孔令辉를 브랜드 모델로 발탁한 것. 광고에만 80만 위안이 들었다. 당시 안타는 100만 위안도 못 벌던 때였다. 외부에서는 딩스중이 미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딩스중의 객기(?)는 옳았다. 2년도 안돼 중국 운동화 시장에서 안타의 점유율은 13%까지 치솟았다.  
 
(여담이지만 쿵링후이가 별 볼일 없던 안타의 모델이 되기로 한 이유 중 하나는 딩스중과 자신의 외모가 무척 닮았서였다고...)
여튼 쿵링후이가 안타의 모델이 된 이듬해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단식 금메달, 복식 은메달을 따는 쾌거를 이뤘다. 안타의 인지도도 덩달아 급상승했다.
뛰어난 탁구 실력과 준수한 외모로 수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는 중국 국가대표 장지커. 선배 쿵링후이를 이어 안타스포츠의 광고 모델로 활동했다. [사진 www.tjbuxiugang.com]

뛰어난 탁구 실력과 준수한 외모로 수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는 중국 국가대표 장지커. 선배 쿵링후이를 이어 안타스포츠의 광고 모델로 활동했다. [사진 www.tjbuxiugang.com]

"중국인이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신발을 만들자"  
딩스중의 철학은 딱 들어 맞았고, 안타스포츠는 2~3선 도시들을 빠르게 공략해나갔다.  
 
현재는 1선 대도시까지 점령했다. 지난 10년간 매출이 빠르게 신장했다.  
2017년 안타스포츠는 신발 6000만 켤레, 의류 8000만 장 이상을 팔아치우며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  
'젊음'을 입힌 감각적인 디자인이 주효했다. 2017년 안타는 미국, 일본, 한국에 디자인 센터를 짓거나 보강했다.
멈추지 않는다 KEEP MOVING ㅡ 안타스포츠가 미는 슬로건 [사진 안타 홈페이지 캡처]

멈추지 않는다 KEEP MOVING ㅡ 안타스포츠가 미는 슬로건 [사진 안타 홈페이지 캡처]

과거 해외에 진출할 법도 했지만, 딩스중은 그러지 않았다.  
"중국 시장은 너무 크다. 아직도 5억 명이 (돈이 없어) 안타 신발을 구매할 수 없다. 안타를 중국에서 가장 대중적인 스포츠 웨어 브랜드로 만드는 것이 목표다."  
 
실제로 안타스포츠는 예전부터 해외로 나가는 대신 중소도시와 농촌에 공장을 지어 대량의 생산 자원을 투입했다. 2011년에는 기존 업계 1위였던 리닝李宁을 제쳤다. 안타는 적자 늪에 빠진 리닝과 PEAK匹克, 361°와의 격차를 꾸준히 벌리고 있다.
[사진 www.1688.com]

[사진 www.1688.com]

딩스중은 이제 안타스포츠가 국민 브랜드로 자리잡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는 2017년 실적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우리의 목표는 이제 세계다."  
 
메이드 인 차이나 신발의 질주가 시작될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차이나랩 이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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