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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 감독이 "한국에 없던 배우"라 반한 24살 신인

중앙일보 2018.05.24 14:47
영화 '버닝'. 사진=파인하우스필름, CGV아트하우스

영화 '버닝'. 사진=파인하우스필름, CGV아트하우스

 “제 인생이 저를 어디로 데려갈지 예측할 수가 없어요.”

23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버닝’(감독 이창동)의 신예 전종서(24)의 말이다. 생애 첫 영화로 프랑스 칸영화제에 다녀온 지 불과 며칠 만이었다. 어마한 경쟁을 뚫고 이창동 감독의 8년 만의 복귀작에서 주연을 꿰찼다. 대학 연극영화과에 재학하며 단역 출연조차 없었던 이유를 전종서는 “진짜 제 마음을 이끄는 작품을 기다렸다”고 했다.  
전종서가 연기한 해미는 이 영화의 미궁 그 자체다. 가난한 작가지망생 종수(유아인 분)와 부유한 의문의 남자 벤(스티븐 연 분) 사이를 잇곤 실종돼버린다. 홀로 삶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 인물로도 그려진다. 이창동 감독은 “해미를 찾는 심정으로 배우를 찾았다”면서 “전종서씨는 용모로나 감정‧내면으로서나 해미가 그렇듯 속을 알 수 없는 모습이 보였다. 지금껏 한국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배우”라고 했다. 예닐곱 번 거듭된 오디션은 전종서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묻는 대화 위주로 진행됐다. 실제 촬영도 “연기적인 디렉션이 많지 않았다”고 전종서는 돌이켰다.  

이창동 영화 '버닝' 주연 전종서
영화 데뷔작으로 칸영화제 초청

'버닝' 영화 리뷰
“해미와 제가 분명 닮은 부분은 있어요. 자기만의 세계가 확실하고 그 안에서 뭐든 꿈꿀 수 있고, 재밌고, 행복하거든요. 저만의 공간이 커져가면서 더 외로워지기도 하지만요.”
이렇게 말하는 그는 그새 많이 차분해져 보였다. 지난달 처음 공식석상에 나섰을 때 사시나무 떨 듯했던 모습은 더 이상 없었다. 얼마 전 칸으로 출국할 때 얼굴을 가리고 취재진을 황급히 지나쳐 논란이 됐던 데 대해서도 “개인적인 일로 정신없이 우는데 사진이 찍혀서 저도 모르게 숨기려 했다”면서 “이런 상황 속에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방법은 계속 경험해봐야 깨달을 듯하다.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버닝'으로 스크린 데뷔한 배우 전종서. [사진 CGV아트하우스]

'버닝'으로 스크린 데뷔한 배우 전종서. [사진 CGV아트하우스]

그는 ‘버닝’을 “기술시사부터 칸에서까지 세 번 봤다”면서 “내 상태가 어떤지에 따라 다 다르게 보였던 영화”라 했다. “저도 모르는 제 모습이 많았어요. 살이 7kg이나 빠져 이질감도 들었어요. 해미가 안쓰럽고 사랑스럽기도 했죠. 우리가 얼마나 스스로 고통 받길 선택하고 살고 있는지. 감독님한테 현실이 어떻든 청춘이라면 너네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즐기며 살란 메시지를 전달받은 느낌이었죠.”
베드신은 오히려 어렵지 않게 끝났다. 해미가 노을 앞에서 자유롭게 춤추는 장면은 3분여 곡에 맞춰 마임을 준비했다. 이창동 감독이 직접 소개한 이두성 마임리스트에게 배웠다. 전종서는 “현장에선 감독님이 짜놓은 춤을 버리고 원하는 대로 하라셨다”면서 “어떤 기분이 드느냐고 물으시기에 자꾸 슬픈 마음이 온다고 했다”고 떠올렸다.  
혼자 아프리카 배낭여행에서 돌아와 곱창집에서 북받쳐 우는 롱테이크 장면은 이틀에 걸쳐 찍었다. 못하는 소주를 딱 병뚜껑만큼만 따라 마셔보기도 했다. “제가 아닌 것 같은 순간에 OK가 났어요. 의외성이 있을 때.” 해미가 사라지고 싶다고 한 데 대해선 “나는 내가 좇는 것을 따라갈 거야. 저한텐 적어도 그런 의미였다”고 했다. 유일한 여성 캐릭터인 해미가 일종의 피해자로, 피상적으로만 그려졌다는 비판도 나온다고 하자, “이해하고 감사한다. 저도 여성으로서 어떤 영화들을 볼 때 그렇게 느낀 적이 있다”면서도 “그렇지만 해미 캐릭터에 대해선 당당하다. 여자라서 구애받는 것 없이 자유로움과 강인함을 갖춘 캐릭터”라 말했다. 함께한 배우 유아인·스티븐 연에 대해선 “까마득한 선배님인데 동등한 동료로서 챙겨주셨다. 감독님과 모든 스태프에게도 너무 많은 대접을 받아서 그저 감사하다”고 했다.  
제71회 칸영화제 현지 반응
전종서는 어려서 해외를 넘나들며 자랐다. 부모님은 뭐든 많이 겪고 느껴야 한다고 가르쳤다. “뭔가 ‘틀렸다’고 지적하신 적이 없어요. 다양성을 자연스레 존중할 수 있도록 해주셨죠.” 배우를 꿈꾼 건 초등학교 때부터다. 매일 비디오를 빌려볼 만큼 영화가 좋았다. “너무 어릴 때여서 ‘밀양’(2007) ‘오아시스’(2002)는 이창동 감독님 영화란 것도 모르고 봤다”면서 “‘밀양’은 ‘버닝’ 촬영 마치고 다시 꺼내봤다. 사람이 가진 징글징글한 감정을 드러내는 영화를 좋아한다”고 했다.  
영화 '버닝' 한 장면. [사진 CGV아트하우스]

영화 '버닝' 한 장면. [사진 CGV아트하우스]

전종서는 “처음엔 배우를 반대하던 부모님도 이젠 응원해주신다”며 말을 이었다. “‘버닝’을 하면서 ‘인연’이란 말을 참 많이 들었어요.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 제가 있어야 할 곳이 있을 거라 생각해요. 연기를 계속하게 된다면 소신 있게 뭔가를 말할 수 있는 작품을 선택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엄청난 상업영화‧드라마가 아니라 한 사람만을 상대로 하더라도 연기로 그런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뭐가 됐든 받아들이고 감당할 수 있는 법을 갖게 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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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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