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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국민은 ‘괴물’ 대입을 원하지 않는다

중앙일보 2018.05.24 01:33 종합 28면 지면보기
양영유 논설위원

양영유 논설위원

문재인 정부가 교육을 너무 만만하게 봤다. 각종 여론조사가 보여주듯 대통령 지지율은 80%를 넘나드는데 교육정책은 30%에 불과하다. 완전 낙제다. 수능 절대평가 등 정책 지휘자인 김상곤 교육부 장관의 판단 장애, 교육 관료의 보신주의, 청와대 교육라인의 붕괴가 뒤범벅된 탓이다. ‘30점’짜리 교육부는 그래도 8월까지 서둘러 2022학년도 대입을 출산하겠단다. 자칫 ‘괴물’ 대입을 내놓지 않을까 우려된다.
 
우려의 현장을 여러 번 가봤다. 국가교육회의가 지난 17일 이화여고에서 연 대입개편 국민제안 열린마당. 폭우가 쏟아지는 데도 수백 명의 학생·학부모·교사가 몰려들었다. 학생부종합전형(학종)과 수능평가 방식, 수시·정시 비율을 놓고 날 선 반목이 여전했다. 교육부가 지난해 12월부터 2월까지 전국에서 연 대입정책포럼의 복사판이었다. 대입 ‘고르디우스의 매듭’이 더 꼬이는 듯했다.
 
교육부와 국가교육회의는 이런 ‘도돌이표’ 토론회를 7월까지 연다. 물론 일방적으로 입시를 주무르다 뒤늦게나마 국민 의견을 골고루 듣겠다는 걸 나무랄 일은 아니다. 하지만 방식이 틀렸다. 세계적 교육공론화 모델인 프랑스의 2003년 국민교육대토론회를 보자. 학교교육시스템 진단과 교육정책 방향 설정용이란 목적이 순수했다. 토론회는 1년간 1만3000회나 열렸고 100만 명 넘게 참가했다. 자크 시라크 정부는 국민 목소리를 거울삼아 교육 신뢰를 쌓았다. 대입 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는 건드리지 않았다.
 
반면 우리의 국민토론회는 신고리 원전처럼 대입 개편 ‘찬성’ ‘반대’ 결정용 수단으로 변질됐다. 공론화 방식도 이상하다. 19세 이상 국민 중 2만 명을 무작위로 추출한 뒤 이 중 400명을 속성 과외 시켜 대안을 고르게 한단다. 더구나 400명에는 수능 당사자인 중·고생이 빠진다. 합리적인가.
 
대입 매듭을 푸는 건 정말 고난도 문제다. 전문가들도 수능 절대·상대 평가와 수시·정시에 대한 입장이 다르다. 장단점 절충이 쉽지 않은 데다 부분 최적화가 전체 최적화를 담보하지 못해서다. 그런데 비전문가 400명이 신통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미국 사회학자 제롬 카라벨은 2006년 『선택받은 자(The chosen)』에서 하버드·예일·프린스턴 ‘빅3’ 대학의 입시를 “능력의 의미를 놓고 되풀이된 고투(苦鬪)의 역사”라고 정의했다. 빅3도 원하는 학생을 뽑겠다며 입시를 계속 바꿨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대목이 있다. 대학이 입시를 뜯어고쳐도 정부는 지켜만 봤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거꾸로다. 정권마다 개입한다. 19세기 정부가 20세기 대학, 21세기 학생을 망치는 것이다.
 
지금 교육부는 삿대도 돛대도 잃어버렸다. 두 달 안에 새 대입을 출산하겠다는 건 대국민 사기나 다름없다. 국민 신뢰도 잃었다. 30점이면 과외를 받아도 한계가 있다. 차라리 선수를 바꾸는 게 낫다. ‘하청’ 전문이 된 국가교육회의도 미덥지 않다. 신인령 의장, 김진경 대입특별위원장, 김영란 공론화위원장으로 이어진 인적 구조가 기울었다. 김진경 위원장이 토론회 당일 “수능은 불공정하다”는 발언을 한 게 그 징표다. 국민 의견을 듣겠다더니 방향을 다 정해놓고 쇼하는 게 아닌가.
 
이런 난맥에는 청와대 사회수석실의 조율 실패 책임도 크다. 도시·지역계획학 박사 출신으로 부동산 전문가인 김수현 사회수석, 민주당 부산시당에서 활동한 김홍수 교육문화비서관으로 짜인 아마추어 라인이 잘못됐다. 역대 어느 정부도 이런 적은 없었다. 교육수석실을 부활하고 전문가를 등용해야 한다.
 
잘못 들어선 길은 빨리 되돌아 나오는 게 상책이다. 그리 안 하면 더 깊은 수렁에 빠질 수 있다. 문 대통령도 대입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누군가 대통령 비늘을 건드려야 한다. 대입 개편은 의무방어전도, 탈원전도, 김영란법도 아니기 때문이다. 대입은 대학에 맡기고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엄격하게 묻는 게 순리다. 그게 선진국이다. 국민은 30점 교육부가 내놓을 괴물 입시를 원치 않는다.
 
양영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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