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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3·1 운동 100주년 … 탑골공원의 역사성 되살리자

중앙일보 2018.05.24 01:30 종합 29면 지면보기
안창모 경기대 건축학과 교수

안창모 경기대 건축학과 교수

탑골공원은 탑이 중요한 듯한 공원이지만, 탑의 가치를 넘어서는 곳이다. 고려 때 지어진 흥복사(興福寺)는 유교 국가 조선에서 일반의 예상과 달리 건재했다. 세조 때 원각사(圓覺寺)로 이름을 바꾸고 주변의 200여 호 민가를 철거해 중건될 정도로 대가람을 형성했다.
 

탑골공원의 1919년 3·1 만세운동
대한민국을 낳은 역사적 의미 커
내년 100주년 계기로 교훈과
역사성 보존하며 새롭게 꾸며야

현존하는 원각사 10층 석탑(국보 제2호)과 대원각사비(보물 제3호)의 정교함과 화려함은 원각사의 위상을 짐작하게 한다. 연산군 때 폐쇄된 뒤 원각사는 한양 도성에서 사라졌지만, 그 이름은 1908년에 탄생한 최초의 근대식 극장의 이름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오늘날 탑골공원은 시민들에게 완전히 잊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자가 오늘의 대한민국을 낳은 역사적 사건을 하나 꼽는다면 그것은 탑골공원에서 시작한 1919년 3·1 만세운동이다. 만세운동을 계기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탄생했다.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잇고 있다. 그런데도 3·1 만세운동이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 드는 것은 역사교육이 특정 목적을 향해 경도됐기 때문이다.
 
우리가 배웠던 근대사는 한때 나라를 잃기는 했지만 보잘것없는 나라가 아니었음을 알려주면서도 위정자의 약점을 덮으려는 의지가 반영된 역사였다. 도구화된 근대사는 많은 부분을 외국의 연구에 의존했고 이로 인해 한국 근대사는 식민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만세운동은 일제의 침략에 굴하지 않았던 저항의 증거로만 암기됐을 뿐 만세운동의 뿌리와 정신이 해방과 민주화 그리고 오늘의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로 이어지지 못했다.
 
탑골공원이 중요한 것은 공원이어서가 아니다. 세계 열강의 각축 와중에 주권을 지키기 위해 선진 제도를 받아들이고 고군분투하며 근대 국가의 길로 나아가고자 했던 대한제국의 의지가 투영된 곳이기 때문이다.
 
시론 5/24

시론 5/24

공원은 우리에게는 없었던 시설이다. 그렇다면 산업화 없이 근대 사회에 진입했던 우리에게 공원이 왜 필요했을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882년 미국과의 수교 이후 워싱턴에 근무했던 주미 공사 박정양과 이채연의 경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두 사람은 위생적이고 건강한 도시를 위해 가로를 정비하고 공원과 광장을 만드는 워싱턴의 도시 미화 운동을 목격했다. 워싱턴이 근대 국가 수도 서울의 이상적 모델이라고 생각했다. 귀국한 뒤 내부대신과 한성부판윤이 된 두 사람이 가로를 정비하고 공원을 만든 것은 이 때문이다. 공원에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환구단(圜丘壇)의 황궁우를 닮은 팔각정을 지었다. 대한제국의 군악대가 공원 서편에, 대한자강회를 잇는 대한협회가 공원 동편에 자리 잡았다. 공원에서는 크고 작은 집회와 행사가 열렸으며 서울을 찾는 외국인들이 즐겨 찾는 장소가 됐다.
 
1910년에 주권을 빼앗기면서 탑골공원이 일상의 공간으로 바뀌었지만 1919년 3월 1일 탑골공원이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았음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은 들불처럼 전국으로 퍼졌고 뜻있는 외국인을 통해 세계에 알려졌다.
 
그런데 탑골공원의 현실은 어떤가. 종로와 삼일대로가 교차하는 요지에 위치하지만, 우리의 시선이나 발걸음은 공원을 향하지 않는다. 해방 이후 첫 3월 1일에 탑골공원에서 ‘삼일 기념 대음악회’가 개최된 적이 있지만, 공원은 곧 방치됐다. 1967년 공원이 번듯하게 정비됐지만, 공원 주변은 2층짜리 상가건물로 둘러싸였다. 만세운동의 목격자였던 공원 정문은 동숭동으로 쫓겨나고 그 자리에는 강릉의 객사문(客舍門)을 닮은 문이 세워졌다.
 
불법 논란 속에 ‘불도저 시장’이 주도해 건축됐던 상가건물은 결국 철거됐지만, 주인을 쫓아낸 문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돌로 만들어진 울타리가 공원의 경계를 이루면서 공원은 여전히 시민들의 자유로운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다. 경직된 제도로 관리되는 탑골공원의 역사와 정신이 우리와 멀어지는 것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내년이면 3·1 만세운동 100주년이 된다. 지난 100년간 3·1운동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였어야 했을까.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지금의 탑골공원이 새로운 모습으로 꾸며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해방 이후 우리는 역사와 시대정신을 끊임없이 이야기해왔지만, 역사와 함께 하는 삶에 익숙하지 않다. 과도하게 보호되고 이념화되는 역사의 현장 속에 세대를 이어가는 역사의 교훈은 사라지고 형식만 남겨지는 일이 흔하다. 다음 세대에 역사의 부채를 넘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탑골공원의 역사성을 제대로 보존하고 알리는 방법을 찾는 일을 서둘러야 한다.
 
안창모 경기대 건축학과 교수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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