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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주식시장의 ‘큰형’, 국민연금이 사라진다면?

중앙일보 2018.05.24 01:20 종합 31면 지면보기
조영태 서울대 인구학 교수

조영태 서울대 인구학 교수

지난주 현대자동차그룹이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작업을 잠정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이번 지배구조 개편은 정부(공정거래위원회)의 순환출자구조 개선 요구에 따라 진행됐다. 하지만 미국계 헤지펀드를 중심으로 외국 투자자들뿐 아니라 현대자동차의 대주주인 국민연금도 개편안에 반대하면서 현대차는 개편안을 다시 정비하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 주도의 재벌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 대한 우려, 회사의 장기적이고 건전한 성장보다는 단기 수익에 급급한 외국계 펀드에 대한 우려, 그리고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은 다른 대기업들의 지배구조 개편이 과연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의 목소리가 대두됐다.
 

지금은 인구 구조상 보험료 쌓여
국민연금이 증시의 큰형 역할
언젠가 연금 지급액 더 많아지면
그때는 누가 해외 자본에 맞서
국내 기업을 지켜줄 것인가

그런데 문득 필자에게는 조금 다른 차원의 우려가 생겼다. “지금 국민연금이 많은 대기업의 대주주로서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하고 있는데, 언제까지 그게 가능할까? 만일 국내 자본과 해외 자본 사이에서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해줄 수 있는 국민연금이 없다면 우리 기업들은 어떻게 될까?”
 
우리나라 주식시장에서 국민연금이 차지하는 위상은 매우 크다.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에 따르면 2017년 말 기준으로 약 131조5000억원이 국내 주식시장에 투자됐고, 현대차는 물론이고 삼성전자·SK하이닉스·네이버·포스코·LG화학 등 웬만한 대기업 지분 9% 이상을 국민연금이 보유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투자된 종목만 270개가 넘는다. 그뿐이 아니다. 다양한 이유로 주식시장이 흔들리는 상황이 발생하면 국민연금은 주식을 사고팔면서 시장을 조정하는 역할도 한다. 그야말로 주식시장의 ‘큰형’이다.
 
조영태칼럼

조영태칼럼

국민연금이 이렇게 주식시장에서 큰형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자금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18세부터 60세까지 국민은 누구나 가입하게 돼 있고, 소득이 없어도 가입이 가능하다. 1988년부터 조성되기 시작한 기금은 올 2월 기준으로 624조원에 달한다. 2017년 국민이 낸 연금 기여금은 41조8000억원이나 된다. 반면에 연금급여지급액은 약 19조원이었다. 그동안 젊은 인구가 많아 매달 들어오는 돈이 컸던 반면, 아직 고령자가 많지 않아 나가는 돈이 적었기 때문에 국민연금은 천문학적인 규모의 기금을 조성할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금융시장의 큰형 역할이 가능했다. 한마디로 인구 구조가 지금의 국민연금을 만든 것이다.
 
앞으로 베이비부머가 고령자가 되면서 연금을 새롭게 받게 될 사람은 매년 급증하는 반면, 저출산 현상으로 인해 새롭게 연금을 내줄 20대 젊은이가 급감하게 된다. 통계청 장래인구추계를 활용해 산출해 보니 2020년부터 2030년까지 약 718만 명이 연금을 수령하는 연령대에 들어간다. 반면에 같은 기간 20세가 돼 새롭게 연금을 내줄 인구는 약 541만 명이다. 매우 큰 차이다. 물론 연금 수급이 이렇게 인구 크기로만 간단하게 결정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인구구조 변화를 간과할 수 없다. 결국 지금까지 매년 연금을 내주는 사람이 늘어났던 것과는 정반대로 앞으로 매년 연금을 내는 사람보다 타는 사람의 수가 훨씬 더 빠르게 늘어날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이다.
 
상황이 이렇게 바뀐다고 국민연금기금이 당장 고갈되지 않는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기금 운용 방식은 지금과 같을 수 없다. 예컨대 연간 30조원이 걷히고, 30조원이 지불되면 매년 41조8000억원이 걷히고 19조원이 지불될 때처럼 기금을 운용할 수 없다. 거기에 만일 들어오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많아지기 시작하면 당연히 쌓여 있는 기금을 가져다 쓸 수밖에 없으니 투자된 자금을 회수해야만 한다. 이렇게 되면 국민연금이 투자하는 기업의 수도 줄고 각 기업에서 쥐고 있는 지분도 줄어들 것이 당연하다. 더 이상 국민연금은 금융계의 큰형이 될 수 없다. 당연히 해외 자본이 국내 기업을 흔들려고 할 때 국내 시장을 지켜줄 수도 없다. 누가 국민연금을 대신해 우리나라의 주식시장, 나아가 금융시장에서 큰형 역할을 해줄 수 있을까? 나의 짧은 식견으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이번 현대자동차 사례를 보면서 내가 걱정하게 된 이유다. 인구 변동으로 인해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 10년 뒤 우리 금융시장에 도래할 것이다. 금융 당국도 기업들도 인구 변동이 가져올 금융시장의 큰 변화를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 된다. 국민연금 역시 언제 이러한 상황이 도래할지 정확하게 예측해 시장에 미리 알려줘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약 10년 뒤 주식시장은 혼란과 혼동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조영태 서울대 인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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