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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들 힙냅시다, 분위기 메이커 이승우

중앙일보 2018.05.24 00:19 경제 10면 지면보기
축구대표팀 손흥민과 이승우가 23일 파주축구국가대표팀트레이닝센터에서 열린 2018러시아 월드컵 대비 소집 훈련에서 호흡을 맞추고 있다. [뉴스1]

축구대표팀 손흥민과 이승우가 23일 파주축구국가대표팀트레이닝센터에서 열린 2018러시아 월드컵 대비 소집 훈련에서 호흡을 맞추고 있다. [뉴스1]

 
지난 22일 한국 축구대표팀은 파주 축구대표팀 트레이닝센터(NFC)에서 프로필 사진을 촬영했다. 2018 러시아 월드컵을 앞뒀나 싶을 만큼 침체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김민재(전북)·염기훈(수원)·권창훈(디종)·이근호(강원) 등이 부상으로 낙마하면서 ‘종합병동’이 된 탓이다.

잇딴 부상 낙마, 침체된 축구대표팀
힙합음악 틀며 분위기 끌어 올려
기성용 “월드컵서 사고칠 걸로 믿어”

 
이런 분위기는 지난 21일 소집 첫날부터 이어졌다. 그런데 촬영 도중 한쪽에선 흥겨운 힙합 음악이 흘러나왔다. 이승우(20·베로나)가 그라운드에 엎드린 채 클럽 DJ처럼 노트북으로 음악을 틀고 있었다.
 
비공개로 진행된 프로필 촬영장 상황을 23일 공개한 조준헌 대한축구협회 미디어 팀장은 “신태용 감독이 남은 선수들이라도 최선을 다하자고 했는데, 막내 이승우가 무거운 분위기를 활기차게 바꾸고 있다”고 전했다.
23일 오후 파주 NFC에서 구자철(왼쪽 위부터 시계반대 방향), 황희찬, 이승우가 몸을 풀고 있다. [연합뉴스]

23일 오후 파주 NFC에서 구자철(왼쪽 위부터 시계반대 방향), 황희찬, 이승우가 몸을 풀고 있다. [연합뉴스]

 
23일 훈련에서 이승우는 선배 손흥민(26·토트넘) 등과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웬만해선 기죽지 않는 성격이지만, 볼 뺏기 등 훈련 때는 좀 긴장했나 싶을 정도로 진지한 모습을 보였다.
 
이승우는 부상으로 빠진 이근호·권창훈 대신 최전방 또는 측면 공격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승우는 한국 축구의 ‘돌연변이’다. 손흥민이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독일로 건너갔던 것처럼, 이승우도 13세이던 2011년 스페인으로 건너가 바르셀로나 유소년팀에 입단했다. 자유분방한 환경 속에서 축구를 한 이승우는 한편으로는 솔직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당돌하다.
 
이승우는 2014년 9월 아시아 16세 이하(U-16) 챔피언십 8강전을 앞두고 “(상대인) 일본 정도는 가볍게 이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8강전에서 60m를 치고 들어가 일본 수비수 3명과 골키퍼까지 제치고 골을 터트렸다. 지난해 20세 이하(U-20) 월드컵 아르헨티나전에선 40m를 질주해 골키퍼 키를 넘기는 칩슛으로 골을 터트렸다. 이어 우사인 볼트(자메이카)처럼 ‘번개 세리머니’를 펼쳤다.
 이승우는 지난해 20세 이하 월드컵 아르헨티나전에서 골을 터트린 뒤 번개 세리머니를 펼쳤다. 자메이카 육상 슈퍼스타 우사인 볼트가 양팔을 벌려 하늘을 향해 손가락을 찌르는 세리머니와 유사했다. [중앙포토]

이승우는 지난해 20세 이하 월드컵 아르헨티나전에서 골을 터트린 뒤 번개 세리머니를 펼쳤다. 자메이카 육상 슈퍼스타 우사인 볼트가 양팔을 벌려 하늘을 향해 손가락을 찌르는 세리머니와 유사했다. [중앙포토]

 
월드컵을 앞둔 이번 소집훈련에는 단정한 검정 머리로 참가했지만, 그 전에는 강렬한 황금색이나 회색, 핫핑크색 헤어스타일로 눈길을 끌었다. 이승우는 “우리나라엔 나 같은 캐릭터가 없어서 귀여워 해주시는 것 같다. 당돌한 모습이 사라지면 오히려 재미없지 않겠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그동안 한국 사회처럼 한국축구에서도 겸손이 미덕으로 통했다. 일부 팬들은 이승우가 건방지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요즘엔 솔직하고 당돌한 이승우를 좋아하는 팬들이 많다. [이승우 인스타그램]

그동안 한국 사회처럼 한국축구에서도 겸손이 미덕으로 통했다. 일부 팬들은 이승우가 건방지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요즘엔 솔직하고 당돌한 이승우를 좋아하는 팬들이 많다. [이승우 인스타그램]

 
물론 일각에서는 그런 이승우를 향해 “건방지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작은 키(1m70㎝) 때문에 성인 무대에서는 한계에 부딪힐 것이란 전망도 있다. 이승우는 지난해 8월 바르셀로나를 떠나 이탈리아 베로나로 이적했다. 초반 주전 경쟁에서 어려움을 겪었지만, 지난 6일 AC밀란전에서 이탈리아리그 데뷔골을 터트렸다.
20세 이하 대표팀에서 사제지간이었던 신태용 감독은 이승우에게 경기장 안에서는 맘껏 튀어도 좋으니 실력만 보여달라고 주문한다. 신 감독은 이승우의 깡과 승부욕을 좋아한다.[뉴스1]

20세 이하 대표팀에서 사제지간이었던 신태용 감독은 이승우에게 경기장 안에서는 맘껏 튀어도 좋으니 실력만 보여달라고 주문한다. 신 감독은 이승우의 깡과 승부욕을 좋아한다.[뉴스1]

 
그리고 이번에 월드컵 예비엔트리에 들었다. 신태용 감독은 “이슈 몰이나 한국 축구의 미래 때문에 이승우를 뽑은 게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신 감독은 이승우를 1차전 상대인 스웨덴 뒷공간을 파고드는 ‘비밀병기’로 보고 있다.
 
주장 기성용(29·스완지시티)은 “한국이 월드컵에서 최약체라고 하는데, 우리는 3전 전패가 아니며, 우리 팀에서 사고 칠 수 있는 선수들을 믿고 있다”며 “(이)승우는 어린 나이에다 이탈리아 리그 이적 초반 힘든 시기를 겪었지만, 마지막까지 페이스를 유지한 건 높이 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황희찬(22·잘츠부르크) 등과 함께 대표팀에 적응한다면 충분히 위협적인 선수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파주=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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