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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의 퍼스펙티브] 개헌 불씨 끄지 말고 국회에 넘겨라

중앙일보 2018.05.24 00:07 종합 26면 지면보기
대통령 개헌안 국회 처리 기한 만료 
시대적 요구는 소통이었다. ‘불통 정부’의 경험이 너무 아팠다. 다시는 그런 불통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그런데도 아직 답답하다. 지난 정부의 기억을 떨치려고 기대가 너무 컸는지 모른다. 정부만 탓할 것도 아니다. 국회는 더 숨이 막힌다. 야당을 돌아보면 기가 막힌다. 모두 ‘마이 웨이’다.
 

국회 비하, 무력화 지나치면
삼권 분립 균형 무너져 위험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은
국회를 통과하기 어려워져

중요한 것은 정치적 책임보다
논의의 장 열어 공론화하는 것

개헌에는 선거법 개정도 필수
국회 주도하게 대승적 결단해야

사안의 경중(輕重)에 구분이 없다. 국익도 상관없다. 그저 귀를 틀어막고 내 갈 길만 내달린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까지 나서 연일 한반도 문제를 거론하지만 우리 내부에는 진지한 소통이 보이지 않는다. 여야는커녕 정부와 국회가 소통하는지 믿을 수 없다. 심지어 청와대와 정부가 호흡을 맞추는지 의심스러운 대목이 한둘이 아니다. 이렇게 해도 나라가 성할지 걱정이다.
 
개헌도 그중 하나다. 헌법은 나라의 기초다. 그런데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이용되는 느낌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 국회 처리 시한인 24일까지 여야는 입씨름만 하고 있다. 나라의 기초인 헌법을 고치는 문제가 선거전략으로 전락한 느낌이다. 나라 살리는 헌법 개정 국민주권회의의 이상수 대표간사는 “헌법은 독립변수인 줄 알았다. 그런데 종속변수더라”고 말했다.
 
 
#잘못된 출발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 청와대가 개헌안을 발의한 것부터 잘못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개헌안을 발의하면서 ‘국민과 한 약속’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촛불광장의 민심’을 헌법적으로 구현하는 일이고, 동시투표 개헌은 ‘세금’을 아낄 수 있으며, 다음 ‘대선과 지방선거를 일치’시킬 수 있고, ‘국민을 위한 개헌’이기 때문에 직접 개헌안을 발의한다고 밝혔다.
 
모두 일리가 있다. 그런데 정말 ‘국민을 위한 개헌’이라면 결과가 있어야 한다. ‘나는 개헌하려고 했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결과를 얻으려면 국회 통과도 고려해야 한다.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의 찬성을 얻으려면 야당을 압박만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처음부터 정치적 공격으로 시작한 것은 통과 여부는 상관하지 않겠다는 오기로 비친다.
 
대통령도 개헌안을 발의할 수 있다는 헌법 제128조 1항은 1972년 유신헌법에 처음 들어갔다. 그 이전 헌법에는 ‘국회의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 또는 국회의원 선거권자 50만 인 이상’(제119조①)만 발의할 수 있었다. 72년 국회 발의를 재적의원 과반수로 더 까다롭게 하고, 국회 의결 뒤에도 대통령의 거수기 역할을 하던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통과해야 개헌할 수 있도록 했다. 대통령이 제안한 개헌안은 국회와 상관없이 국민투표에 바로 부치도록 했다.
 
이렇게 바꾼 사연이 있다. 박정희 대통령은 72년 개헌에 앞서 국회를 해산해 버렸다. 헌법도 정지시켰다. 국회가 개헌안을 발의하도록 한 헌법 절차를 묵살했다. 대신 비상국무회의에서 발의해 국민투표로 개헌안을 확정했다. 헌법에 없는 절차를 새로 만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유신헌법은 사실상 쿠데타였다.
 
동네북이 돼 버린 국회지만 금도(襟度)는 있다. 선거법은 합의 통과한다는 전통을 지켜왔다. 경쟁의 규칙을 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개헌안을 던져놓고 수정 없이 찬반투표만 하라는 건 민주주의의 정신에도 맞지 않는다. 87년 헌법에 대해 여러 차례 개헌 시도가 있었다.(표 참조) 그렇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대통령이 추진했기 때문이다. 이승만 대통령 때부터 과거 개헌의 역사를 보면 권력 연장을 위한 꼼수의 연속이었다.
 
물론 문 대통령은 국회에서 합의 개헌안을 만들면 자신의 개헌안은 철회하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이득을 볼 것은 없다고 했다. 그렇더라도 24일이라는 시한을 설정해 놓고 몰아붙인 건 합의안이 나오기를 기대했다고 보기 어렵다. 자신들의 개헌안을 내놓고 적극적으로 토론에 나서지 않은 자유한국당은 말할 것도 없다. 처음부터 개헌안 내용이 아니라 시기만 따지며 선거의 유불리만 저울질한다는 인상을 줬다. 개헌 필요성에 공감한다면 다시 시작해야 한다.
 
 
#국회가 그렇게 형편없나?
 
‘드루킹’ 사건을 파헤치는 것을 ‘대선 불복’이라고 비난한다. 우리 사회는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태도를 곱게 보지 않는다. 딱히 그것만으로 당선됐다고 보기 어려운 데다 번복했을 때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이 만만치 않다. 다시 선거를 할 것도 아닌데 일을 못 하게 발목을 잡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다.
 
대통령만 그런 게 아니다. 문 대통령의 경우 41.1%의 지지로 당선됐다. 10명 중 6명은 지지하지 않은 셈이다. 홍준표·안철수 후보 표를 합하면 45.4%다. 더 많은 사람이 다른 후보를 찍었다. 과거 다른 대통령들도 마찬가지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36.6%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문 대통령이 41%의 대통령은 아니다. 그는 취임사에서도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사람을 포함해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그렇지만 대통령의 생각이 바뀐 것은 아니다. 그 나머지를 포함해 전체 국민을 대표하는 기구는 국회다. 대통령과는 다른 생각을 전하면서 타협과 견제를 할 수 있어 민주주의다. 물론 국회도 비례성에 문제가 있다. 좀 더 정교하게 선거법을 손질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도 전체 국민의 뜻을 대변하는 그 이상의 헌법 기구는 아직 없다.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사람과 의견이 있다. 국회의원들의 언행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다. 편지를 보내고, 댓글을 달고, 시민운동을 할 수 있다. 선거에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렇지만 국민의 대표로, 삼권 분립의 한 축으로 선출해 놓고 그 역할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또 다른 선거 불복이다.
 
국회를 지나치게 비하하는 것은 위험하다. 민주적 권력 분산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유신헌법 개정이 그런 경우다. 국회의원을 모리배로 치부하며 권한을 대폭 줄였다. 사이비 대의기구(통일주체국민회의)에 분산했다. 대통령은 삼권의 위에 있는 초월적 존재, 국가 영도자로 규정했다.
 
첫 번째 개헌인 1952년 발췌개헌도 이승만 대통령이 ‘조작된 민의’로 국회를 누른 경우다. 50년 2월 2대 총선에서 지지세력이 대거 낙선해 이 대통령은 국회 간선으로 재선되기 어려워졌다. 그러자 그는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밀어붙였다. 국회가 부결하자 ‘원외 자유당’을 동원했다. 깡패조직과 관제데모대가 연일 시위를 벌였다. 국회의원 소환, 국회 해산을 요구하고, 국회의원 수십 명을 통근 버스째 헌병대로 끌고 가고, 공산당 연루 혐의로 취조했다.
 
홍문종·염동열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이 국회에 대한 불만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그렇지만 87헌법 체제에서 대통령은 모두 국회에서 나왔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그런데도 국회를 가장 저주하는 것은 대통령 지지자들이다. 다음 세대 대통령도 그 가운데서 나올 가능성이 크다. 깜짝 스타가 아니라 검증을 거치기에 실패할 확률도 줄어든다.
 
견제와 균형의 한 축이 무너지면 다른 축의 힘이 절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다. 비례성을 강화하는 선거제도, 특권 축소, 국민소환제 도입은 필요해 보인다. 불만이 있으면 투표를 제대로 하면 된다. 제 손으로 뽑은 헌법 기구를 벌레 보듯 하면 자칫 제 발등을 찍을 수 있다.
 
 
#어차피 통과는 어려운데 …
 
이미 6·13 지방선거와 동시 투표는 물 건너갔다. 시간을 더 줘도 대통령 제출 개헌안이 통과하기는 어렵다. 민주당을 제외한 나머지 야당과는 의견 차이가 크다. 대통령이 제출한 개헌안은 국회에서 고칠 수가 없다. 찬반 투표로 가부만 정할 수 있다. 그러니 어차피 버려야 할 개헌안이다. 이제 그 절차만 남았다.
 
청와대는 개헌안을 철회할 생각이 없다고 한다. 국회가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헌법 제130조 1항에 ‘공고된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의결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학자들의 해석은 나뉜다. 60일이 지나면 자동 폐기된다고도 하고, 의무 규정이라 폐기할 때까지 국회 계류 중인 위헌 상태가 계속된다는 학자도 있다. 국회에 계속 계류돼 있다는 해석은 국회의 예산안 처리 시한을 예로 든다. 그러나 예산안을 통과하지 않으면 경상비용을 준예산으로 쓰도록 규정도 마련돼 있다. 기한을 넘겨도 정부 재정을 포기할 수는 없다. 대통령이 제출한 개헌안은 어떤가. 60일을 넘겨 국회가 통과시키면 그게 유효한가. 그래도 위헌 상태를 해소하려면 국회가 부결시키라는 게 청와대 쪽 입장이다.
 
개헌은 그 자체로 중요하다. 당장 정치적 유불리를 따질 문제가 아니다. 책임 소재는 그에 비해 지엽적인 문제다. 어차피 동시 투표가 어려워졌다면 다음 일을 생각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개헌 불씨를 꺼뜨려선 안 된다는 점이다. 정말 개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논의의 마당을 열어 줘야 한다. 대통령안은 공론화 과정이 허술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 수없이 축적된 내용을 외면했다. 더구나 전면 개정안이라 수많은 논란을 담고 있다.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을 흔든다는 생각은 기우임이 확인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우려대로 ‘블랙홀’은 아니었다. 대통령의 개헌안을 처리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선거제도 개혁이 반드시 같이 가야 한다. 청와대에서 결자해지해 철회하는 게 불씨를 살리는 길이다. 민주당에 넘겨 공론화하고, 진지하게 야당과 협상을 벌이도록 길을 열어주는 결단을 기대한다. 그래야 ‘국민을 위한 헌법’을 살릴 수 있다.
 
김진국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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