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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칭찬 받고는 … 일자리 350개 줄인 ‘오토바이왕’

중앙일보 2018.05.24 00:02 경제 2면 지면보기
매튜 레바티치 할리데이비슨 최고경영자(왼쪽)가 지난해 2월 미국 워싱턴 백악관 앞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나 얘기를 나누고 있다. [AFP=연합뉴스]

매튜 레바티치 할리데이비슨 최고경영자(왼쪽)가 지난해 2월 미국 워싱턴 백악관 앞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나 얘기를 나누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해 2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할리데이비슨의 최고경영자(CEO) 매튜 레바티치 사장과 노조 대표 등을 백악관으로 불러 ‘미국 제조업의 기둥’이라고 치켜세웠다. 당시 레바티치 사장은 직접 할리를 몰고 백악관을 방문해 미국의 아이콘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한껏 부각했다.
 

할리데이비슨 CEO 매튜 레바티치
대통령 “미 제조업 기둥” 격찬 불구
캔자스시티 공장 폐쇄 수 백명 실직

법인세 감면으로 생긴 1080억원
주주 배당 늘리고 주가 부양에 사용

철강 관세부과로 생산비 급증 우려
미국 대신 태국에 새 공장 지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말 법인세율을 35%에서 21%로 대폭 인하하는 세제개편안에 서명하면서 기업들이 아낀 세금으로 일자리와 투자를 늘리도록 독려했다. 할리데이비슨 또한 매년 세전 이익으로 8억∼10억 달러를 기록한 만큼 1억 달러(약 1080억원) 이상의 세금을 아낄 수 있었다.
 
레바티치 사장은 고민을 거듭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랑스런 미국 기업’으로 인정해줬을 뿐 아니라, 어려운 형편 속에 현금을 늘릴 수 있게 됐으니 당연히 그의 기대에 보답을 해야 했다.
 
그러나 레바티치 사장은 ‘냉철한 비즈니스 맨’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기대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할리데이비슨을 이끌었다. 철저하게 시장과 주주를 겨냥한 결정을 연이어 내놨다.
 
우선 세금감면 결정이 내려진 지 한 달 만에 미국 내 생산시설 네 군데 중 한 곳인 미주리주 캔자스시티 공장 문을 닫기로 했다. 800명이 근무하는 곳이다. 생산시설은 필라델피아 요크로 옮기고 현지에서 450명을 채용할 계획이다. 순수하게 350명이 일자리를 잃게 되는 것이다. 노조 대표인 그레그 테이트는 인터넷뉴스 복스에 “요크의 평균 가계 수입이 캔자스시티보다 훨씬 낮기 때문에, 회사 측은 인건비를 줄일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위스콘신주 밀워키에 본사를 두고 있는 할리데이비슨이 생산시설을 옮기기로 한 배경은 무엇보다 비용절감이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할리데이비슨이 내년까지 캔자스시티 공장을 해체하는데 2억 달러의 비용이 든다. 하지만 레바티치 사장은 공장 해체로 2020년 이후부터 매년 6500만∼7500만 달러를 아낄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실제 할리데이비슨의 오토바이 판매는 지난해 미국에서 8.5 %, 해외에서 3.9 % 각각 감소했다. 미국에서는 주 고객층인 베이비붐 세대가 70대 고령층으로 편입되면서 수요가 점점 줄고 있다. 레바티치 사장은 지난해 2분기 실적 발표 이후 애널리스트들에게 “미국 내에서 오토바이 산업이 살아남기 치열해진 상황”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는 캔자스시티 공장 폐쇄 결정 이후 주주에게 배당을 늘리는 계획을 연이어 발표했다. 2억 달러에 달하는 자사주 매입 계획도 밝혔다.
 
지난달 할리데이비슨의 존 올린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올해 1분기 실적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우리가 사업에 투자하는 것 이상으로 현금이 돌아와, 모든 초과 현금을 주주들에게 돌려보낸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감세해준 현금을 주주들에게 나눠준 격이다.
 
할리데이비슨처럼 세금감면으로 늘어난 현금을 자사주 매입으로 주가관리에 사용한 기업이 꽤 된다. 이달 초 애플은 자사주 매입에 1000억 달러를 사용키로 했다고 발표했고, 통신장비업체인 시스코도 자사주 매입에 250억 달러를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이밖에 웰스파고(은행)는 220억 달러, 펩시는 150억 달러,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은 86억 달러 등 넘쳐나는 현금을 일자리 창출보다는 자사주 매입에 우선 투입했다. 레바티치 사장은 할리데이비슨의 대안은 해외시장이라고 보고 있다. 그중에서도 아시아 시장이 타깃이다. 올해 말 생산 개시를 목표로 태국에 신규 공장을 짓고 있다. 태국공장 신설에 대해 할리데이비슨 측은 “미국 일자리를 해외로 이전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아시아에서의 사업을 확대하기 위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탈퇴한 것도 할리데이비슨이 태국에 공장을 짓게 된 중요한 요인이 됐다. 레바티치 사장은 지난해 “TPP는 아시아에서의 성장을 방해하는 수많은 장벽을 해결해준다”고 강조했는데, 트럼프 대통령의 탈퇴 결정으로 실망이 커졌다는 후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철강 수입제품에 대한 관세 부과 조치도 할리데이비슨에게 부메랑이 될 조짐이다. 철강과 알루미늄을 주원료로 제작하는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의 생산 비용이 관세부과로 폭등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 투자증권사인 웨드버시 시큐리티는 할리데이비슨의 생산비용이 관세부과로 매년 3000만 달러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유럽산 철강 제품에 관세 부과가 현실화할 경우 유럽연합(EU)이 미국의 아이콘인 할리데이비슨을 콕 집어 보복관세를 부과할 의지를 강력하게 내비치고 있어 위험요인으로 남아있다.
 
미 국제기계항공우주노조(IAM)의 로버트 마르티네스 주니어 위원장은 지난 3월 백악관에 캔자스시티 생산시설과 근로자를 구제해달라는 편지를 보냈다. 결국 지난달 마르티네스 위원장이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을 만났지만 신통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에 할리데이비슨이 어떻게 묘사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매튜 레바티치(53)
1994년 할리데이비슨에 합류했다. 평소에도 가죽 재킷을 주로 입고 할리데이비슨을 몰고 출근한다. 전형적인 기계 엔지니어 출신으로, 생산관리에 탁월하다는 평이다.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뒤 시카고 노스웨스턴대에서 경영학석사과정(MBA)을 밟았다.

 
뉴욕=심재우 특파원 jw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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