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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만에 증가세 꺾인 가계빚, 한은 금리인상 감속?

중앙일보 2018.05.24 00:02 경제 1면 지면보기
강물이 넘칠 것 같으면 둑을 높이고 수문을 닫아야 한다. 빚도 마찬가지다. 가계에 지나치게 빚이 많으면 경제가 고꾸라졌을 때 파산할 수 있다. 빚이 너무 많으면 가계 소비도 줄어 경기에 나쁜 영향을 준다.  
 

DTI·DSR 등 ‘대출 옥죄기’ 효과
1분기 부채 증가폭 1%대 머물러
신용·전세자금 대출에 풍선효과

물가·고용 등 경제지표 좋지 않아
한은, 금리 올릴 만한 명분 약해져

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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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금융회사가 가계 빚이 범람하지 않도록 대출 문턱을 높이고 조건을 깐깐하게 적용하는 이유다.
 
일단 대출의 둑을 높이고 수문을 닫은 작업이 효과를 내고 있다. 올 1분기 가계 빚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증가세는 큰 폭으로 둔화해서다.
 
한국은행이 23일 발표한 ‘2018년 1분기 가계신용’에 따르면 1분기 가계신용은 1468조원을 기록했다. 관련 통계를 작성한 2002년 4분기 이후 최대치다. 가계신용은 가계가 은행이나 보험·대부업체 등 금융회사에서 빌린 돈(가계대출)과 결제 전 신용카드 사용액(판매신용) 등 가계가 갚아야 할 부채를 합한 것이다.
 
가계 빚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지만 한숨 돌릴 수 있는 것은 증가세가 한풀 꺾인 덕이다. 1분기 가계신용은 전 분기보다 17조2000억원(1.2%) 늘었다.  
 
증가 폭만 따지면 지난해 3분기(31조4000억원)와 4분기(31조6000억원)의 절반 수준이다. 전년 동월과 비교해서는 8%(108조9000억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분기 증가율로는 2015년 4분기(7.4%) 이후 최저치다. 정부의 연간 가계 빚 증가율 목표치(8.2%)를 밑돈다.
 
주택담보대출만 빼서 보면 올 1분기 규모는 727조원으로 전 분기에 비해 6조4000억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전 분기(11조2000억원)보다 증가폭이 줄었다. 비은행예금취급기관의 주택담보대출은 1분기에 오히려 5000억원 감소했다. 문소상 한국은행 금융통계팀장은 “올해 초 신(新) 총부채상환비율(DTI)과 총체적상환능력비율(DSR)이 도입되면서 주택담보대출 증가세가 둔화했다”고 말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빚의 범람은 일단 막았지만 안심할 수 없다. 대출의 물길이 달라지고 있어서다.
 
서울 노원구에서 전세로 사는 직장인 박모(44)씨는 지난달 인근의 전용면적 84㎡짜리 A아파트를 6억원에 사기로 마음먹었다가 최근 구매를 보류했다. 그는 “지난 1~2년 동안 집값이 올라 고점에 사는 건 아닌지 불안하다”며 “전세로 2년 더 살면서 시장 상황을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노원구 중계동의 서재필 을지공인 대표는 “아파트를 사려고 했던 손님들이 최근 전세로 눈을 돌린다”며 "집값이 단기간에 많이 오른데다 대출 등 정부 규제로 집값이 내려갈 것이란 심리도 작용한 것 같다”고 전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해 전세자금대출은 급증하고 있다. 지난달 말 기준 5개 시중은행의 전세대출 잔액은 52조3428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2.5% 늘어났다.  
 
전세대출은 꽉 막힌 주택담보대출의 우회로다. 전세보증금의 80%까지 대출받을 수 있다. 새로 도입된 대출 규제장치인 DSR도 전세대출에는 느슨하다. 주택담보대출 원리금이나 신용대출, 자동차 할부금 등 기존 대출을 모조리 고려해 대출 한도를 구하는데 전세대출만 예외적으로 원금을 제외한 이자만 반영하기 때문이다.
 
주택담보대출이 막히면서 새롭게 뚫린 또 다른 물길은 기타 대출이다. 1분기 신용대출을 포함한 기타 대출 잔액(401조원)은 사상 처음 400조원을 돌파했다. 전 분기보다 4조9000억원 늘었다.  
 
주택담보대출 규제로 인한 대출 수요가 신용대출 등으로 옮겨간 ‘풍선 효과’로 분석된다. 신용대출은 주택담보대출보다 이자가 높은 데다 담보가 없어 상대적으로 부실 위험이 크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시장 금리가 꾸준히 오르면서 앞으로 가계 빚 증가율은 더 낮아질 수 있을 것”이라며 “다만 신용대출이 증가하고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제도권 금융에서 잡히지 않는 빚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은 위험 요인”이라고 말했다.
 
가계 빚 증가세가 주춤하면서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 속도는 다소 늦춰질 것으로 예상된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물가나 고용 등 각종 경제 지표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가계 빚 증가세까지 주춤하면서 한국은행이 금리를 인상할 명분과 필요성이 약해지고 있다”며 “올해 한 번 정도 금리를 올리기도 힘들 수 있다”고 말했다.
 
하현옥·황의영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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