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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가 뭐예요?] 매주 일요일 우리는 '원탁의 기사'가 된다…'중세검술'의 매력

중앙일보 2018.05.24 00:00
중세검술 동호회 ARMA 코리아 회원들이 각자 소지하고 있는 검들. 손잡이나 칼날 모양이 미묘하게 다르다. [사진 한우현]

중세검술 동호회 ARMA 코리아 회원들이 각자 소지하고 있는 검들. 손잡이나 칼날 모양이 미묘하게 다르다. [사진 한우현]

 “취미가 뭐예요?” 상대방을 좀 더 알고 싶을 때 흔히 던지는 질문이지만 의외로 답은 어렵다. ‘나’를 표현하는 키워드로 취미를 즐기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 보기’ ‘음악 감상’ ‘독서’로 대표되는 국민 취미 3대장 외에 최근에는 ‘맛집 탐방’ 정도가 추가됐을 뿐이다.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워라밸’이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는 요즘, 취미는 여가의 질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다. 다들 어떤 방법으로 각자의 워라밸을 지키고 있을까. 특별할 것 없는 보통 사람들의 조금 특별한 취미생활들을 소개한다.
 
※다음은 한우현(38)씨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기자가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한 글입니다.

 
날씨가 유난히 맑았던 지난 일요일(20일) 오후 2시 정각에 4호선 동작역에 도착했습니다. 2년째 주말마다 오는 곳입니다. 2번 출구로 나와 구름다리를 하나 건너면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비가 있습니다. 기념비 앞에는 넓은 잔디밭이 펼쳐져 있고, 저처럼 빨간 옷을 입은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서양의 중세검술을 함께 수련하는 회원들입니다.
 
매주 일요일 동작역 인근에서 모임을 갖는다는 ARMA 코리아 회원들. 방문자 자격으로 모임에 참석하려면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 신청을 해야 한다.

매주 일요일 동작역 인근에서 모임을 갖는다는 ARMA 코리아 회원들. 방문자 자격으로 모임에 참석하려면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 신청을 해야 한다.

저는 올해로 서른 여덟이 된 직장인 한우현이고, 토목설계 회사에서 일합니다. 주중에 3일은 야근을 하는 편인데, 책상에 앉아서 하는 일이 대부분이라 따분하고 스트레스도 받죠. 그래서 가능하면 주말엔 밖으로 나가요. 남들이 야구 배트나 골프채를 챙길 때, 전 중세시대 검을 챙겨서 말이죠.
‘중세검술’이라고 하면 거창하고 낯설어 보이지만 다들 한 번쯤 본 적이 있을 거예요. 영화나 드라마, 아니면 책에서라도. 제가 중세검술을 처음 접한 건 ‘아그네스의 피(1985)’라는 오래된 영화에서였어요. 봉건 영주들간의 전투가 끊이지 않던 16세기 유럽이 배경이죠. 비교적 최근에 나온 ‘킹덤 오브 헤븐(2005)’도 중세 기사들의 이야기죠. 그런 영화들을 보고 막연히 ‘멋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중세검술을 직접 해볼 수 있는 동호회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2016년 7월 쯤이었어요. 인터넷 검색으로 찾았죠. 한국에 이런 단체가 있다는 게 너무 신기했어요. 방문자 자격으로 두 달 정도 꾸준히 모임에 참가한 후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정회원으로 가입했죠.  

국내 유일의 중세검술 동호회 ‘ARMA 코리아’는 중세·르네상스 시대의 무술을 복원하고 보급하는 미국의 비영리 단체 ‘ARMA(Association for Renaissance Martial Arts)’의 한국 지부예요. ‘가입한다’는 건 연회비 30달러(약 3만2000원)를 내고 ARMA 정식 회원이 된다는 겁니다. 한국 지부에는 따로 회비를 내진 않아요. 유료 대관이 필요 없는 장소에 모여 각자의 장비로 함께 운동하고 서로의 검술을 익히는 게 우리의 주 활동이니까요. 'ARMA 코리아' 공식 카페를 통해서 참관 및 가입 신청을 할 수 있어요. 현재 국내 회원은 총 30여명이 있고 페이스북 그룹이나 단체 채팅방을 통해 소통해요. 방문자를 포함해서 매주 7~10명이 꾸준히 모이니 소규모 동호회치고는 활발한 편이죠.

 
13세기까지 쓰이던 검. 다른 손으로 잡는 작은 원형 방패와 함께 사용한다.

13세기까지 쓰이던 검. 다른 손으로 잡는 작은 원형 방패와 함께 사용한다.

아마 장비가 많이 궁금할 거예요. 우리가 쓰는 중세 검은 일본 검도에서 쓰는 수련용 죽도나 칼날이 휘는 펜싱 검과는 달라요. 중세 유럽에서 실제로 쓰였던 형태를 복원하되 양날을 무디게 만든 연습용 검이죠.
 
16~17세기 '레이피어' 검은 상대방의 칼날이 깊이 들어와도 손을 보호할 수 있도록 작은 반구형 장식이 달린 게 특징이다.

16~17세기 '레이피어' 검은 상대방의 칼날이 깊이 들어와도 손을 보호할 수 있도록 작은 반구형 장식이 달린 게 특징이다.

디자인에 따라 역사적 배경과 근거가 모두 달라요. 13세기까지 쓰이던 검들은 상대방의 칼날을 막아주는 손잡이 부분이 간결해서 다른 손에 작은 방패를 들고 싸워야 했어요. 이후로는 손잡이 부분 장식이 점점 더 복잡해져요. 16~17세기에 이르러선 ‘레이피어’라는 형태로 발전하는데 반구형 손잡이가 손 전체를 감싸서 적극적인 찌르기 공격이 가능해지죠. 칼 하나의 무게는 대략 1~1.6kg 정도. ‘츠바이헨더’라고 불리는 양손 검은 2kg에 달하기도 하죠. 중세검술 동호회에선 이렇게 장비의 종류와 역사에 대해서도 함께 공부해요.
그런데 국내에선 이런 종류의 칼을 만드는 곳이 없어서 다들 해외 직구 등을 통해서 구해요. 저는 검이 세 자루 있는데 총 100만원 정도 들었어요. 처음 시작할 때 비용은 최대 40~50만원 정도를 생각하면 돼요. 처음엔 부담이 크지만 일단 검을 사고 나면 검술 취미를 즐기는 데 추가로 드는 비용은 거의 없어요.

 
검술 관련 번역 자료를 함께 읽으며 글로 익힌 새로운 기술을 실제 동작으로 맞춰보고 있는 회원들.

검술 관련 번역 자료를 함께 읽으며 글로 익힌 새로운 기술을 실제 동작으로 맞춰보고 있는 회원들.

제가 중세검술을 특히 재밌다고 느낀 이유는 책 속 기술들을 몸으로 직접 구현해 본다는 점 때문이에요. 중세검술에는 ‘사범’이 없어요. 다른 무술처럼 계파나 급수를 따지는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죠. 대신 당대에 쓰인 책들을 검술 스승님으로 모시죠. 중세 기사들이 본인만 보려고 만들었던 지침서, 또는 귀족들에게 바쳤던 검법 책들이 지금까지 전해지거든요. 고대 독일어 등 각기 다른 언어로 쓰인 원문은 일단 영문 번역본을 찾고, 그걸 회원 중 일부가 번역해서 자료실에 공유하는 방식으로 공부합니다. 글로 배운 기술을 직접 실연해봤을 때 ‘정답’이라고 말해 줄 사람은 없지만, 회원들끼리 검술 수련생이라도 된 듯 함께 연구하는 과정이 정말 좋습니다.
 
연 1회 서울에서 열리는 미국 ARMA의 수장 존 클레멘츠의 특강. [사진 한우현]

연 1회 서울에서 열리는 미국 ARMA의 수장 존 클레멘츠의 특강. [사진 한우현]

1년에 한 번, 진짜 전문가를 만날 기회도 있어요. 유명 서양 검술 복원가이자 미국 ARMA 총괄 디렉터인 존 클레멘츠가 한국에 오거든요. 충주 세계무술축제 참가를 위해서인데, 그때마다 서울에서 ARMA 코리아와 만남의 자리를 갖죠. 회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그에게 검술을 교정받고 새로운 연습법도 배우죠.   
 
남성 회원이 대부분이지만 여성들도 충분히 배울 수 있다. 20일 모임에 방문자 자격으로 참가해 강습을 받고 있는 사람들.

남성 회원이 대부분이지만 여성들도 충분히 배울 수 있다. 20일 모임에 방문자 자격으로 참가해 강습을 받고 있는 사람들.

기본 자세를 익히고, 반복 훈련을 통해 상대방과 합을 맞추는 훈련을 두세 달쯤 하면 자유 대련도 가능해요. 서로 짜지 않고 리얼하게 맞붙는 거죠. 운동신경이 좋으면 자유대련은 한 달 안에도 가능한데, 중세검술이 재밌는 진짜 이유는 새로운 검술을 찾아내 구현해보는 재미 때문이에요. 드라마 ‘왕좌의 게임’ 속 전투 장면을 보면서 ‘어, 저렇게 하는 거 아닌데?’ 할 때도 있죠.
‘왜 하필 중세검술을 하느냐’ 묻는다면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등산을 왜 하느냐?’ 물었을 때랑 똑같죠. 취미는 그냥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하는 거잖아요. 중세검술이 존재하고, 함께 연구하고 훈련할 사람들이 있으니까 할뿐이에요. ‘산이 거기에 있어서 오른다’는 사람들처럼. 역사를 알아가는 즐거움과 땀 흘리는 즐거움을 동시에 느끼고 싶다면 이 만한 취미가 없을 걸요.

 
글·사진=백수진 기자 peck.soojin@joongang.co.kr, 영상=전유민 인턴 기자
중세검술, 이런 사람에게 추천!
☞야외 활동을 좋아한다.
☞운동을 즐기지만 매번 비용이 드는 건 부담스럽다.
☞유럽 역사에 관심이 많다.
☞'킹덤 오브 헤븐', '킹 아더', '기사 윌리엄' 등의 영화를 감명 깊게 봤다.


자세한 정보 및 방문 참관 신청은 'ARMA 코리아' 공식 카페(클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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