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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살 성년이 될 때 새 이름 지어준 조상의 지혜

중앙일보 2018.05.23 15:00
[더,오래] 송의호의 온고지신 우리문화(23)
대구한의대 학생들은 성년의 날을 맞아 장미꽃을 선물로 받았다. [사진 송의호]

대구한의대 학생들은 성년의 날을 맞아 장미꽃을 선물로 받았다. [사진 송의호]

 
지난 21일 대구한의대학교 1학년 학생들은 장미꽃 한 송이씩을 받았다. 총여학생회(회장 정재은)가 ‘성년의 날’을 맞아 어른이 된 1999년생 1학년을 축하한 것이다. 학생회관에는 1학년이 길게 줄을 지어 차례를 기다렸다. 신분증으로 1999년 출생이 확인되면 추첨을 통해 장미나 향수를 선물했다.
 
이날 장미꽃을 받은 신영서(간호학과 1학년) 씨는 “이제 어른이 됐으니 의무와 책임이 무엇인지 먼저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다. 장미의 꽃말은 ‘열정’과 ‘사랑’이다. 총여학생회는 장미에다 어른으로서 열정과 사랑을 다해 달라는 뜻을 담았다고 말했다. 또 향수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향기를 발산하는 어른이 돼 달라는 소망이 들어 있다.


올해 성년, 지난해보다 2만명 줄어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올해 성년이 되는 1999년생은 61만4233명이다. 지난해 63만4790명에 비해 2만여 명이 줄었다. 법정기념일인 성년의 날은 매년 5월 셋째 월요일로 지정돼 있다.
 
대구한의대 총여학생회가 성년의 날 선물로 준비한 장미꽃과 향수. [사진 송의호]

대구한의대 총여학생회가 성년의 날 선물로 준비한 장미꽃과 향수. [사진 송의호]

 
19세 성년이 되면 새로운 권리와 의무를 준다. 대표적인 것이 선거권이다. 당장 다가오는 6‧13 지방선거에서 투표할 수 있고 국회의원과 대통령도 뽑을 수 있다. 정당도 가입할 수 있고 부모 의사와 관계없이 혼인할 수도 있다. 의무도 부여된다. 남자는 병역을 치러야 하고 법을 어기면 미성년자보다 더 엄격한 민형사상 책임을 진다.
 
의미를 생각하면 오늘날 성년 의식은 다른 통과 의례보다 너무 소홀해진 편이다. 전통적으로는 관례(冠禮)‧계례(笄禮)가 있었다. 남자는 상투를 틀어 갓을 씌우고 여자는 쪽을 찌고 비녀를 꽂아 주는 의례다. 전통 성년례는 어른의 상징인 갓과 비녀를 더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겉모습을 바꾸면서 동시에 어른으로 마음가짐을 바꾸는 의식을 곁들였다. 새 이름인 자(字)를 짓는 일이다.
 
내 두 딸은 2012년 11월 경북 경산 구계서원에서 계례를 했다. 관‧계례는 ‘빈(賓)’이라는 덕망 있는 사람이 초대돼 의식을 주관한다. 당시 빈은 아내가 평소 뜻이 맞는 친구를 초청했다.
 
도산우리예절원이 주관한 계례에서 빈(賓)이 새 이름인 자(字)를 내리며 그 뜻을 적은 자사(字辭)를 읽고 있다. [사진 권효섭 사진작가]

도산우리예절원이 주관한 계례에서 빈(賓)이 새 이름인 자(字)를 내리며 그 뜻을 적은 자사(字辭)를 읽고 있다. [사진 권효섭 사진작가]

 
빈은 두 아이에게 쪽을 찌고 비녀를 꽂게 한 다음 새 이름인 자를 내렸다. ‘여인(汝仁)’과 ‘여문(汝文)’이다. 빈은 자를 주며 내력을 담은 자사(字辭)를 읽었다. 시작은 이렇다. 
 
“계례라는 것은 성인이 되었으므로 어린 때와 분별하는 것이고, 덕으로 수양해 스스로를 삼가 자신이 모자라는 마음을 단속하고 바른 뜻을 지켜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새 이름 자에는 이런 뜻을 담았다. ‘여인’이란 이름에는 “어릴 때부터 어질고 착한 마음”이었음을 새겼고, ‘여문’에는 “수학을 좋아하고 창의·창조성이 뛰어남”을 연결했다. 아이들은 새 이름을 받은 뒤 부모와 가족에게 큰절하고 행동은 조심스러워졌다. 계례를 치르며 코끝이 찡했다. 당사자에겐 정신적 비타민 역할을 했을 것이다.
 
행사를 지켜본 부모들은 “새 이름을 짓는 관‧계례의 정신은 다시 살릴 만하다”며 그 전통을 잇고 싶어했다. 대구의 도산우리예절원은 개인을 비롯해 경북여고‧대구여고‧영남대 등 학교를 돌며 수년째 새 이름을 짓고 갓을 씌우는 관‧계례 행사를 주관하고 있다.


전통 성년예식 1898년 단발령 이후 사라져
도산우리예절원이 주관한 관례에서 빈(賓)이 새 이름인 자(字)를 내리며 그 뜻을 적은 자사(字辭)를 읽고 있다. [사진 권효섭 사진작가]

도산우리예절원이 주관한 관례에서 빈(賓)이 새 이름인 자(字)를 내리며 그 뜻을 적은 자사(字辭)를 읽고 있다. [사진 권효섭 사진작가]

 
전통 관‧계례는 1898년(고종 2) 단발령 이후 상투를 틀 수 없게 되면서 사라졌다는 연구가 있다. 또 혼례 의식에 포함돼 생략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관혼상제 4례 중 낯설게 다가오는 이유일 것이다. 중국 사마온공(司馬溫公)은 관례를 이렇게 규정했다. 
 
“남자 20세에 갓을 씌우는 것은 모두 어른으로 책임을 지우려는 까닭이다. 가정적으로는 남의 자식으로 아우로서 또 국가적으로는 신하(국민)로서 책임을 지운다. 그리고 사회적으로도 행동을 책임 지우려는 것이기 때문에 그 의례가 중요하다.”
 
성년으로 갓을 쓰는 날 새 이름 자를 지은 옛사람의 지혜가 놀랍기만 하다. 어른이 된다는 건 옛날이나 지금이나 거룩한 일일 것이다.
 
송의호 대구한의대 교수·중앙일보 객원기자 yeeho12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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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의호 송의호 대구한의대 교수ㆍ중앙일보 객원기자 필진

[송의호의 온고지신 우리문화] 은퇴하면 많은 일이 기다리고 있다. 그중에는 문중 일도 있다. 회갑을 지나면 가장을 넘어 누구나 한 집안의 어른이자 문중을 이끄는 역할을 준다. 바쁜 현직에 매이느라 한동안 밀쳐 둔 우리 것,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가져 보려고 한다. 우리의 근본부터 전통문화, 관혼상제 등에 담긴 아름다운 정신, 잘못 알고 있는 상식 등을 그때그때 사례별로 정리할 예정이다. 또 영국의 신사, 일본의 사무라이에 견줄 만한 우리 문화의 정수인 선비의 정신세계와 그들의 삶을 한 사람씩 들여다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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