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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가장 위대한 지도자”…미국은 왜 노(老) 정치인에 열광하나

중앙일보 2018.05.21 06:00
 지난해 7월 28일(현지시간) 오전 1시가 넘은 시각, 법안 표결이 한창인 미국 상원 회의장에서 의원석에 앉아있던 여든살의 노(老) 의원이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 나왔다. 왼쪽 눈 위로는 수술 자국이 선명했다.  
 

소신ㆍ원칙 지키며 때론 당론에 반기 든 ‘이단아’ 존 매케인
“공복이자 영웅”…“애국심과 열정은 누구도 부인 못해”

 곧이어 세웠던 엄지손가락을 떨어뜨리며 그가 말했다. “No.” 의원석에선 박수와 함께 ‘헉’하고 숨을 멈추는 소리가 섞여 나왔다. 같은 당 소속 의원의 기대를 뿌리치고 통과를 목전에 둔 법안에 반대표를 던진 것이다. 불과 19초 만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1호 공약인 ‘오바마케어 폐지’의 운명이 극적으로 갈리는 순간이었다. 
 이날 공화당이 오바마케어 대체안으로 내놓은 ‘스키니 리필(일부 폐기)’ 법안은 찬성 49표, 반대 51표로 부결됐다. 노장(老將)이 던진 한 표가 결정적이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표결 두 시간여 앞두고 그는 의사를 묻는 기자들에 “쇼를 기다려라(wait for the show)”고 말했다 한다.  
 
 “최근 역사상 미 상원에서 가장 극적인(dramatic) 밤이었다”(WP), “자신의 길을 가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다. 상원에서 오랫동안 기억될 놀라운(stunning) 순간”(뉴욕타임스) 등 언론의 찬사가 이어졌다. 
 
 역사적 사건의 주인공은 존 매케인(81) 공화당 상원의원. 뇌종양 투병 중인 그는 당시 수술을 받고 요양하던 중 지역구인 애리조나에서 워싱턴 DC까지 3000㎞를 날아갔다. 그의 묘사대로라면 “껍데기만 남은” 법안 통과를 막기 위해서다. 매케인은 스키니 리필이 통과되면 무보험자를 늘리고 결국 미국인의 의료 혜택이 줄 것이라고 지적해왔다. 오바마케어도 반대했던 매케인이었지만, 트럼프의 ‘오바마 지우기’ 때문에 의료보험시스템이 누더기가 되는 걸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수술 자국이 선명한 채로 미 상원 의사당에 모습을 드러낸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 [사진 타임지 캡처]

수술 자국이 선명한 채로 미 상원 의사당에 모습을 드러낸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 [사진 타임지 캡처]

 당파를 떠난 그의 결단에 트위터에도 “(소속) 정당보다 국가를 앞세운 매케인에 존경을 표한다”(배우 겸 감독 빌리 크리스탈), “고마워요. (당에) 충성하지 않아서, 싸워줘서 ”(배우 크리스틴 벨) 등 셀럽들의 지지 표명이 잇따랐다.
 
“가장 위대한 지도자, 삶 헌신한 영웅”
 
 그의 매버릭(Maverickㆍ이단아) 근성은 최근에도 어김없다. 백악관이 전폭적으로 밀어준 지나 해스펠 신임 중앙정보국(CIA) 국장의 지명을 대놓고 반대한 것이 대표적이다. “고문의 부도덕함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부적절하다”면서다.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전쟁 포로가 돼 혹독한 고문을 당한 경험이 있는 매케인은 “국가를 안전하게 지키는 방법은 우리가 추구하고 세계에 권장하는 가치만큼 올바른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해스펠 인준을 반대하라고 동료들에 촉구해 온 그에게 켈리 새들러란 백악관 특별보좌관은 “곧 죽을 사람(He’s dying anyway)”이라고 조롱성 발언을 해 논란을 사기도 했다.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이 지나 해스펠 신임 중앙정보국(CIA) 국장의 인준을 반대한다고 쓴 트위터. [사진 트위터 캡처]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이 지나 해스펠 신임 중앙정보국(CIA) 국장의 인준을 반대한다고 쓴 트위터. [사진 트위터 캡처]

 민주당 정치전략가 마리아 카르도나 듀이스퀘어그룹 대표는 미 의회 전문지 더 힐 기고문에서 “매케인에 대한 잔인한(cruel) 발언은 백악관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썩었다는 걸 보여준다”며 “미국은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개탄했다. CNN은 “백악관은 이 일을 트럼프가 좋아하는 ‘리크(유출) 스캔들’로 바꾸려 한다”고 지적했다. 
 
 이 사건 직후 주요 언론은 백악관을 비판하는 한 방식으로 매케인의 품격을 새로이 조명하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2008년 대선 후보 시절 지지자들 앞에서 연설하는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 [로이터=연합뉴스]

2008년 대선 후보 시절 지지자들 앞에서 연설하는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 [로이터=연합뉴스]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정치 지도자(the single greatest political leader).”
 
WP의 칼럼니스트 대나 밀방크는 “트럼프 지지자들이 ‘굿맨(good man)’의 평판을 더럽히는 상황에서 수년에 걸쳐 생각해온 걸 쓰기로 했다”며 이같이 매케인을 묘사했다. “국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는 신념은 많은 공직자에게 낯설고 트럼프와도 맞지 않는다”며 매케인은 어쩌면 우리 시대의 인물이 아니라고도 덧붙였다. 밀방크는 칼럼 끝에 “당신은 대통령은 아니었지만, 나의 영웅”이라고 썼다. NYT는 공식적인 사과를 하지 않는 백악관을 비판하면서 “매케인은 그의 삶을 공공에 헌신한 영웅”이라고 칭한 공화당 전략가 마이크 스틸의 말을 인용했다. 
 
과감히 “당 의견 어기라” 했던 노장의 품격
 
 매케인은 6선 의원으로 6명의 대통령과 일했다. 하원 경력까지 포함해 정치인으로서만 인생의 절반인 40년가량을 살았다. ‘소신’과 ‘원칙’에 따라 언제 어디서든 할 말은 하는 모습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당의 중진으로 뼛속까지 공화당원이지만, 아니다 싶으면 가차 없이 반기를 들었다. CNN은 그가 “보수적이었지만, 때때로 그의 당에 반대하는 걸(to buck his party) 두려워하지 않은 공복(public servent)이자 애국자, 전쟁 영웅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전한다.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과 아내 신디 매케인.[사진 트위터 캡처]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과 아내 신디 매케인.[사진 트위터 캡처]

반대편인 민주당 의견이 옳다고 믿으면 당론에 구애받지 않고 표를 던지는 데도 서슴지 않았다. 실제 민주당과 정책적 차원에서 수차례 협력해 온 사례가 있다. 2002년 민주당 러셀 파인골드 상원의원과 함께 정치자금 규제방안을 담은 법안 통과를 주도한 게 대표적이다. 자신들의 돈줄을 옥죄는 개혁입법에 발 벗고 나선 것이다.
 
2001년에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감세안에 반대해 민주당에 투표했고, 2005년 이민법 관련 논쟁 때도 공화당 보수파의 반발을 샀다. 민주당 개혁파인 테드 케네디 상원의원과 불법 이민자들에게 단계적 시민권을 부여하는 것을 뼈대로 한 포괄적 이민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다. 
 
이 같은 소신의 대가는 컸다. 공화당 주류는 매케인을 불신했다. 당내 강경파인 티파티(Tea Party)는 매케인을 외면했다. 대신 매케인이 얻은 것은 초당적인 존경이었다.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그는 불신과 당파 싸움으로 얼룩진 의회를 향해 “민주주의가 제대로 기능한다면, 당의 의견을 어기는(cross the party line) 의지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해왔다. 앞서 매케인은 오바마케어 폐지를 반대하면서도 “상원의 성공은 미국의 지속적 성공에 중요하다”며 “이 나라는 우리를 필요로 한다. 이 책임은 개인적 이익이나 정치적 성향(political affiliations)보다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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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자신을 “타협의 옹호자(champion of compromise)”라고 불렀다. “열린 사회(open society)를 통치하는 데 있어 (타협보다) 다른 좋은 방법은 없다. 정확하게는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서”라고도 했다(NYT).
 
 호주 일간 더 오스트렐리언은 매케인을 “전투기 조종사, 전쟁 포로, 대통령 후보였으며 트럼프와의 여러 충돌에도 불구하고 미 정치의 양쪽(공화당과 민주당)에서 존경과 감탄을 받는다”고 표현했다. 폴리티코도 “그가 옳다고 여기든 그렇지 않든 매케인이 애국심과 열정만으로 행동해왔다는 데 아무도 의심하지 않아 왔다”고 썼다.  
  누군가에게 음해를 당할지언정 본인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2008년 대선 후보로 민주당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붙었을 때 유세장에서 오바마를 ‘아랍인’이라 했던 자신의 지지자에게 마이크를 뺏어 들어 “그건 아니다”며 “그는 훌륭한 미국 시민”이라고 즉석에서 시정한 일화는 유명하다. 그런가 하면 무슬림이자 전몰장병의 부모인 키즈르 칸과 가잘라 칸 부부를 대통령 후보였던 트럼프가 깎아내린 데 대해 장문의 성명을 발표해 쓴소리를 내뱉기도 했다.  
 
“우리 당이 그(트럼프)에게 지명자의 지위를 부여했지만, 우리 가운데 최고의 사람들을 비방할 무제한적인 허가증(unfettered license to defame)까지 동반한 건 아니다.”
 
WP는 지난해 이 같은 일화를 매케인의 ‘가장 용기 있던 정치적 순간’ 5가지로 꼽았다.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이 1967년 베트남 하노이에서 포로로 잡힌 뒤 베트남 의료진에 검진받고 있는 모습. [EPA=연합뉴스]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이 1967년 베트남 하노이에서 포로로 잡힌 뒤 베트남 의료진에 검진받고 있는 모습. [EPA=연합뉴스]

 해군 4성 장군을 2대에 걸쳐 배출한 군인 집안의 후예인 매케인은 젊은 시절 베트남전에 뛰어들었다가 붙잡혀 5년 넘는 포로 생활을 했다. 당시 받은 고문 후유증으로 팔을 머리 위로 들어올릴 수 없는 장애를 갖고 있다. 당시 월맹군은 태평양함대 사령관이었던 아버지 잭 매케인에게 아들 석방 조건으로 협상을 제안했다. 그러나 매케인이 형평성을 이유로 거부했다고 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사례로 거론된다.
 투병 중이지만 미국과 세상에 건네는 그의 고언(苦言)은 멈추지 않고 있다. 특히 오는 22일 출간 예정의 회고록 ‘쉼 없는 파도(The Restless Wave)’에서 그가 던진 메시지는 WP의 프레드 하이아트 편집자 말대로 ‘귀한 선물(rare gift)’이다. 
 
“당면한 이슈에 대해 서로의 견해가 옳다고 생각하든 그렇지 않든 우리는 서로 존중해야 한다. 인권에 대한 헌신이 우리의 가장 진실한 유산이자 가장 중요한 충성임을 기억해야 한다.”
 
지금 미국 정치 1번지 워싱턴 DC는 ‘매케인 앓이’가 한창이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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