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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 공장, 시장 골목, 옛 절 … 교토 시내 장식한 현대 사진들

중앙선데이 2018.05.19 02:00 583호 8면 지면보기
사진작가 김용호, ‘교토그라피 2018’을 가다
시내 곳곳이 사진 전시장으로 변신하는 일본의 사진축제 ‘교토그라피’. 교토 사진 김용호 작가

시내 곳곳이 사진 전시장으로 변신하는 일본의 사진축제 ‘교토그라피’. 교토 사진 김용호 작가

 
‘교토그라피(KYOTOGRAPHIE)’는 일본 교토에서 한달동안 열리는 국제 사진축제다. 교토와 포토그라피라는 단어를 합성해  고유명사처럼 만들었다. 올해는 4월 14일부터 5월 13일까지 열렸다(www.kyotographie.jp). 특정 공간 내부에서만이 아니라 시내 전역, 거리 곳곳에서 열린다는 것이 이 행사의 가장 큰 미덕이다. 전세계 핫한 사진작가들의 임팩트 있는 사진들이 옛 가옥과 전시장, 골목길과 낡은 공장의 공간감과 어울리며 묘한 아우라를 뿜어낸다. 지도를 들고 걷다보면 유서 깊은 관광지는 물론 예술 도시 교토와 교토의 유서 깊은 문화를 동시에 조우하는 특별한 경험을 얻게 된다.  
 
올해 행사의 주제는 ‘UP’. 개인적 환경이건 글로벌 차원이건 전에 없던 문제에 직면하고 있는 요즘, 행사를 참관하는 사람들이 예술의 통해 다양한 가치관을 느끼고 공유함으로써 현 상황에서 ‘업’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는 듯 했다. 중앙SUNDAY S매거진이 교토그라피 패스포트와 지도를 들고 도심 속 예술 현장을 둘러보았다.  
 
교토 중앙시장 골목에 전시부스가 설치됐다.

교토 중앙시장 골목에 전시부스가 설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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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온 거리의 오래된 료칸에서 가모강을 보며 아침 식사를 한 후 천천히 걸어나왔다. 봄의 교토는 아름다운 꽃들과 보드라운 신록, 수학여행 온 학생들의 생기발랄한 에너지로 가득하다.  
 
전시장임을 알리는 붉은색 깃발이 멀리서도 눈에 쉽게 뜨인다. 마치 일본 전국시대 지방 영주의 깃발 같다. 상점 입구의 검은색 흰색 가리개를 열고 들어가면, 전통 공간 속 현대 사진전이라는 놀라운 풍광이 펼쳐진다. 깃발과 가리개 천, 이 두 가지 디자인이 교토 그라피의 아이덴티티를 잘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통 가옥 안에 마련된 전시

전통 가옥 안에 마련된 전시

 
교토그라피 전시를 관람 중인 김용호 작가

교토그라피 전시를 관람 중인 김용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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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남쪽 담바구치(Tambaguchi) 시장 안에서는 남아프리카 작가 기데온 멘델(Gideon Mendel)의 기후 변화에 관한 ‘Drowning World’ 시리즈와 스페인 예술가 알베르토 그라치아 알릭스(Alberto Garc<00ED>a-Alix)의 흑백 초상화 연작을 볼 수 있었다. 작품들은 오래된 얼음공장에 전시되어 있었는데, 공장 특유의 투박함과 아주 잘 어울렸다. 공간 선택이 탁월했음을 치하하고 싶을 정도였다. 전형적인 관광 지역이 아닌 공간이 주는 긴박감이 흥미진진했다.  
 
얼음 공장에 설치된 알베르토 그라치아 알릭스의 초상 사진

얼음 공장에 설치된 알베르토 그라치아 알릭스의 초상 사진

얼음공장 밖 길거리 곳곳에는 일본에 거주하는 프랑스 아티스트 K-narf의 작품이 걸려있었다. 교토 중앙도매시장에서 일하는 일본인 노동자 80명의 전신 사진이다. 이곳은 산업화와 자동화 및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머지않아 사라질 직업과 공간이라는 점에서 이번 프로젝트의 가치를 가늠할 수 있었다.  
교토 신문사 지하 인쇄공장에서는 로렌 그린필드의 작품을 볼 수 있다.

교토 신문사 지하 인쇄공장에서는 로렌 그린필드의 작품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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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문화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Annex의 ‘So Far So Goude’는 말그대로 장 폴 구드(Jean-Paul Goude)에 대한 찬사다. 장 폴 구드는 프랑스 출신의 사진가이자 그래픽 디자이너, 아트 디렉터이자 영상 감독으로 활약하고 있는 재주꾼이다. 한국인 부인에게 영감을 받아 만든 작품도 볼 수 있으며 안내원의 복장까지도 전시장과 어울렸다. 구드는 섹슈얼리티와 유머를 도입한 전위적이고 쾌활한 스타일로 수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키고 있는데, 이 전시는 그런 구드의 미니 회고전 성격이었다. 잘 정리된 동선을 따라 스케치와 드로잉, 작업 결과물과 오페라 퍼포먼스를 감상하다 보면 이 동시대 천재 크리에이터에 대한 찬사가 절로 나온다. 구드의 작품으로 랩핑된 BMW의 전기차 i3(교토 그라피의 메인 스폰서) 도 눈길을 끌었다. 행사의 메인 스폰서인 BMW가 제공하는 자전거를 타고 시내 투어도 가능하다.
교토 문화박물관 내 장 폴 구드의 전시 퍼포먼스

교토 문화박물관 내 장 폴 구드의 전시 퍼포먼스

 
장 폴 구드의 영상작품

장 폴 구드의 영상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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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박물관을 나와 좁은 뒷골목을 걷다 보면 교토신문 빌딩을 만날 수 있다. 이곳 지하 인쇄공장에서 전시되는 로렌 그린필드(Lauren Greenfield)의 ‘제너레이션 웰스(Generation Wealth)’ 시리즈는 물질적 부와 명성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미국, 중국, 러시아 신흥 부자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교토 발 백화점 윈도우

교토 발 백화점 윈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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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발(BAL) 백화점과 다이마루 백화점에서 만날 수 있는 교토그라피 팝업 스토어와 트렌디한 숍도 놓칠 수 없는 재미다. 새로 생긴 이세이 미야케 숍도 흥미롭다. 교토의 부엌이라 불리는 전통 있는 니시키 시장에서 튀김과 어묵 같은 길거리 음식을 먹는 즐거움도 쏠쏠하다. 단, 교토는 크레디트 카드가 안 되는 곳이 많으니 약간의 현금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기온 거리에 설치된 쿠사마 아요이 전시

기온 거리에 설치된 쿠사마 아요이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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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닌지(建仁寺) 사원 안에 마련된 나카가와 유키오(Yukio Nakagawa)의 전시가 특히 인상깊었다. 새까만 다다미와 숯으로 된 액자 받침 위에 놓인 관능적인 꽃의 아방가르드한 배열이라니. 전통적인 일본 실내 장식과 정원과의 대비가 공간 전체의 평온한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전했다. 무릎을 꿇고 작품을 보는 단체 관람 할머니들에게선 작가에 대한 정중한 예의가 느껴졌다. 준비한 슬리퍼를 제한함으로써 바깥 정원 전시의 혼잡함을 피하려는 섬세한 연출, 한켠에 마련된 작가의 영정사진 옆에 놓인 꽃에 매일 물을 띄우는 제자의 모습에서도 작가에 대한 깊은 존경심이 우러나왔다.  
 
겐닌지 법당안의 천장화 ‘풍신뇌신도’

겐닌지 법당안의 천장화 ‘풍신뇌신도’

겐닌지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화려하거나 불필요한 장식은 보이지 않아 건물이 주는 느낌이 청량하다. 세련된 일본식 정원이 펼쳐졌다. 카레산스이(枯山水)라는 일본 정원양식 중 하나다. 자갈과 모래로 물과 산 등의 자연을 표현해 놓았다. 잠시 앉아 선(禪)의 가르침을 생각해 본다.  
 
켄닌지에는 중요 문화재로 등록된 그림이 많은데, 그중 금색 바탕에 자연과 연관된 두 신이 마주보고 있는 ‘풍신뇌신도’는 그 역동감이 대단했다. 법당 안 천장화에 그려진 용 두 마리는 마치 부처님과 기도하는 이들을 어떤 위험에서라도 막아줄 태세다.
 
검정모래를 깐 다실과 화려한 꽃 장식이 돋보이는 나카가와 유키오의 사진 작품

검정모래를 깐 다실과 화려한 꽃 장식이 돋보이는 나카가와 유키오의 사진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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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닌지 사원 앞은 바로 기온거리다. 쿠사마 야요이(Yayoi Kusama) 전시와 게이샤 견습생을 뜻하는 마이코(舞妓)의 공연이 눈길을 끌었다. 기온 거리에는 마치야(町家)라는 전통 목조건물들이 가지런히 자리하고 있는데, 그 중 2014년 브랜드 탄생 100주년을 맞은 라이카(Leica) 숍과 지어진 지 100년이 된 마치야의 콜라보레이션은 교토에서 반드시 방문해야 하는 코스로 꼽힌다.
 
미야자키 이즈미의 관객참여형 전시

미야자키 이즈미의 관객참여형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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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젊은 사진 작가 미야자키 이즈미(Izumi Miyazaki)는 자신의 모습을 초현실적인 셀피로 표현한다. 구름 속에 떠 있는 모습과 오니기리 산에 오른 모습의 사진을 유머러스하게 체험하도록 한 포토존은 관람객의 호응이 높았다. 전시 큐레이터인 필리페 보르곤조(Phillippe Borgonzo)는 “관람객이 초현실적 세계를 직접 느낄 수 있도록 큐레이팅 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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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다이 갤러리(Shimadai gallery)는 1608년 실 도매상으로 시작해 400년 넘는 역사를 지닌 교토의 유서 깊은 곳이다.  에도시대 중기부터 명주(名酒)로 꼽히던 시마다이를 취급하면서 술 도매상도 겸업했다. 지금의 건물은 1883년 다시 지은 것으로 국가 지정 유형문화재가 되어 건축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프랭크 호밧(Frank Horvat)의 사진은 그런 공간과 잘 어울렸다. 
교토그라피 운영본부

교토그라피 운영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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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멜레온처럼 자신의 몸을 주변 환경과 어울리게 만드는 보디 페인팅으로 유명한 중국 현대 미술가 리우볼린(Liu Bolin)은 전통 있는 샴페인 메종인 루이나르(Ruinart)와 협업했다. 거기서 일하는 직원들의 몸에도 페인트 칠을 해 포도밭의 일부인 것처럼 보이게 했는데, 사용된 작업 도구와 사용된 의상, 메이킹 필름을 함께 전시해 이해를 도왔다. 건물 루프탑에서 가모강의 노을과 기온의 불빛을 바라보며 마시는 차가운 샴페인 한 잔은 전시 여행의 피로를 씻어내는 카타르시스였다. ●
 
교토(일본) 글·사진 김용호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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