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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북한의 ‘2급 보수’

중앙선데이 2018.05.19 01:00 584호 35면 지면보기
강민석 논설위원

강민석 논설위원

아, 저 사람이 바로…. 지난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 후 TV 화면을 보다 눈을 의심했다. 조용원 노동당 조직지도부 부부장이란다. 북에서 조직지도부는 ‘당 속의 당’이라는 거대한 권력기관이다. 고위층 검열과 숙청에 관여하는, 피 냄새까지 배어있는 조직이다. 그런 기관을 막후에서 좌지우지한다는, 말로만 듣던 미스테리한 실세가 내려와 청와대 수석·장관들과 한 테이블에 앉아 평양냉면을 먹고 있는 장면은 가히 초현실주의적이었다.
 
흥미로운 건 군복 입은 사람들이 한 명도 연회에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리명수 총참모장, 박영식 인민무력상, 리용호 외무상은 판문점까지만 왔다가 식사에 초대받지 못하고 되돌아갔다. 왜 일까.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속내를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군부가 끼면 분위기를 깰지 모른다고 본 것일 수 있겠다. 오래전 북한 군부의 속성을 제대로 압축해 설명한 사람이 있다.
 
“완고한 2급 보수라고 할까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생전에 한 말이다. 11년 전 남북 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남쪽에서도 군부가 (북한과는) 뭘 자꾸 안 하려고 한다. 북도 마찬가지 아니냐”고 묻자 그가 내놓은 답이다. 변화가 싫은 기득권층이란 의미다. 김정일은 “미국과의 문제가 안정되면 당연히 군부가 있을 자리가 없다. (남북) 군부가 아마 그래서 법석을 떠는 게 아닐까”라는 말도 했다. 북한 군부가 비핵화에 대해선 어떤 입장일까. 며칠 전 백전노장 외교관인 김계관이 불쑥 나타나 “북·미회담을 중단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놨다. 외교관이 낸 성명인데도 워싱턴포스트는 군부 내 강경파가 갑작스러운 비핵화 대화에 불안해하면서 현재의 흐름에 제동을 걸려 하고, 그것이 김계관 성명으로 나타난 것으로 봤다.
 
정말로 북한의 ‘완고한 2급 보수’ 세력이 내부에서 목소리를 키우기 시작한 건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죽어지내던 강경파들이 등장할 시간이 왔나보다. 이유 없는 강경은 없다. 대외적으로 협상력을 키우고, 대내적으로 불평을 깔아뭉개야 할 때 보통 강경론이 득세한다. 그들은 협상하자는 건지, 말자는 건지 모르게 몰고 가면서 위기를 ‘조장’한다. 판을 깨려는 것은 아니란 분석이 대세라 다행이다. 실제로 김계관은 성명에서 미국의 검증된 강경 매파인 볼턴만 콕 찝어 ‘사이비 우국지사’라고 비난했다. 평양에서 김 위원장을 만난 폼페이오는 한 줄도 건드리지 않았다. 평양에서의 북·미 간 ‘깊은 대화’는 유효하다는 신호 아니겠는가. 
 
강민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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