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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호의 시시각각] 북한 입장이 옳을 때도 있다

중앙일보 2018.05.18 01:14 종합 30면 지면보기
강찬호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김일성이 숨지면서 김정일에게 남긴 유언이 “중국을 믿지 말라”였다. 김정일도 숨지면서 김정은에게 “중국을 믿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중국은 북한을 위하는 척하면서 미·중 수교와 한·중 수교를 비롯해 갖가지 배신으로 뒤통수를 때리기 일쑤였다. 이런 뼈아픈 경험을 한 김일성과 김정일이 임종을 앞두고 자신의 권력을 승계할 아들에게 중국 경계론을 유훈으로 남긴 건 당연한 일이다.
 
2007년 10월 4일 평양에서 열린 2차 남북 정상회담. 노무현 대통령 측은 “평화체제의 항구적 구축을 위해 4자 정상들의 종전 선언을 추진하자”는 문구를 합의문에 넣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당시 참여정부 고위 당국자에 따르면 김정일이 직접 “(4자 아닌) 3자로 하자”는 주장을 들고 나왔다고 한다. 김정일이 뜻을 굽히지 않아 합의문은 “3자 또는 4자 정상”으로 절충됐다. 중국은 경악했다. 참여정부에 “3자는 중국을 빼고 남북한과 미국만 모이자는 얘기 아니냐”고 따졌다. 정부는 “여러 의견이 있으니 융통성 있게 가자는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중국의 표정은 굳을 대로 굳어 있었다.
 
그 10년 전인 1997년 북핵 1차 위기로 한숨을 돌리면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관련국 회담이 추진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북한은 시종 남·북·미만의 3자회담을 고집했다. 줄다리기 끝에 그해 말 스위스에서 중국까지 참여한 4자회담이 겨우 열렸지만 불청객이 끼인 판이 제대로 돌아갈 리 없었다. 예비회담과 본회담이 몇 차례 결렬과 개최를 되풀이하다 흐지부지돼 버렸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이 합의한 4·27 판문점 선언도 똑같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고 돼 있다. 북한이 강력하게 3자를 고집해 10년 전의 10·4 합의와 판박이 문구가 나온 것이다. 중국은 또다시 경기를 일으켰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남북 정상회담 7일 만에 문 대통령과 통화하며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할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한 건 “절대 중국을 평화협정에서 빼면 안 된다”는 경고나 다름없었다.
 
북한은 급하면 중국에 달려간다. 김정은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이 결정된 뒤 두 번이나 중국을 찾아 보험을 들었다. 그러나 평화협정에 대해선 여전히 중국 배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앞으로 미국과 협상하다 힘에 부치면 중국의 도움을 받을 가능성도 있긴 하겠지만 그건 나중 문제다. 북한의 일관된 ‘3자’ 고집에 중국은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여기서 우리의 전략이 중요하다. 평화협정에 중국의 참여를 대놓고 반대할 수는 없겠지만 북한이 반대한다면 뒤에서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평화협정이 체결될 때 중국이 서명국이 된다면 우리로선 좋을 게 없다. 중국은 “평화협정이 체결된 마당에 한·미 군사훈련을 왜 하느냐”고 나올 것이며, 주한미군 주둔까지 문제 삼아 한·미 동맹을 와해시키려 들 수 있다. 북한 입장에서도 한·미와 교류하는 과정에서 중국의 간섭과 훼방을 당할 공산이 크다.
 
한반도는 누가 뭐래도 남북이 주인이다. 주변 열강이 개입할 여지를 줄이는 것이 최선이다. 특히 한반도와 붙어 있는 중국의 영향력을 최소화하는 것은 남북 모두의 이익에 부합한다. 중국은 6·25전쟁에 참전해 많은 인명을 잃은 점과 정전협정의 서명국임을 들어 평화협정에서 지분을 주장하지만 그런 논리라면 터키·에티오피아 등 유엔군 깃발 아래 참전한 16개국 모두도 지분을 주장할 것이다. 평화협정은 한반도에 군대를 둔 당사국들이 맺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 그것은 두말할 것 없이 남북한과 미국 세 나라다. 
 
강찬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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