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본문

[사설] 한국과 마주 앉지 않겠다는 북한 몽니 심하다

중앙일보 2018.05.18 01:10 종합 30면 지면보기
북한이 연일 한국과 미국을 상대로 강도 높은 비난을 이어가 과연 한 달 앞으로 다가온 북·미 정상회담이 제대로 열릴지 의구심마저 드는 상황으로 접어들고 있다. 이선권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은 어제 “북남 고위급 회담을 중지시킨 엄중한 사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남조선의 현 정권과 다시 마주 앉는 일은 쉽게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엄중한 사태’란 한·미가 연합 실시하는 ‘맥스선더’ 훈련과 최근 국회에서 열린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 공사의 강연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그제 남북 고위급회담을 이선권이 주장한 이유를 들어 무기 연기하는 강수를 뒀다. 그리고 이어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 명의로 ‘선(先) 비핵화, 후(後) 보상’의 리비아 모델에 의한 비핵화에 반대한다며 북·미 정상회담 개최가 무산될 수 있다는 협박을 가했다. 그리고 이번엔 이선권이 등장해 “남조선 당국이 우리가 취한 조치의 의미를 깊이 새겨 수습책을 세우는 대신 터무니없는 ‘유감’ 운운하면서 상식 이하로 놀아대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 같은 북한의 거친 공세 행보에 대해 처음엔 북한의 주장대로 미국이 일방적으로 핵 폐기만을 강요할 뿐 북한의 체제 안전에 대해 이렇다 할 방안을 제시하지 않는 데 따른 불만일 수 있다는 해석이 유력했다. 그러나 한·미를 싸잡아 위협하는 북한의 최근 행태엔 중국과의 밀착이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아 우리의 우려를 자아낸다.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두 차례 방중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전략적 협력을 다진 뒤 최근엔 북한 시·도 위원장들을 중국에 파견해 끈끈한 북·중 관계를 과시하고 있다.
 
특히 지난 7~8일 김 위원장의 2차 방중 때 시 주석이 “중국이 뒤를 받쳐줄 테니 미국과의 담판에서 당당하게 대응하라”고 김 위원장에게 이야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같은 시진핑의 발언 배경엔 종전선언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문제와 관련해 중국이 빠진 남·북·미 3자만이 거론되는 것에 대한 불만이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을 비핵화 담판 무대로 나오도록 대북제재의 압박 고삐를 죄던 중국이 자신의 한반도 내 영향력 약화를 우려해 슬그머니 국제사회와의 공조 제재 대열에서 이탈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
 
미국은 김계관의 회담 보이콧 운운 발언에 대해 리비아 모델이 아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을 딴 ‘트럼프 모델’을 적용할 것이라며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기세가 오른 북한이 이젠 한국을 길들이려는 모양새다. 태영호 전 공사를 ‘천하의 쓰레기’ 운운하며 국내 남남갈등을 부추기는 측면도 있다. 이러한 북한 행태는 앞으로 가야 할 비핵화 길에 얼마나 많은 지뢰가 놓여 있는가를 우리에게 다시 일깨워준다. 문재인 대통령이 말한 대로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 같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단 “지켜보자”며 신중한 모습이다. 우리도 차분하게 북한의 의도를 읽으며 대응해야 할 것이다. 섣부른 기대와 비관 모두 금물이다. 이런 때일수록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

Innovation Lab

Branded Content

트렌드뉴스

많이 본 뉴스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