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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5·18 주먹밥 급식

중앙일보 2018.05.18 01:09 종합 31면 지면보기
김남중 논설위원

김남중 논설위원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디 쪼까 드쇼잉.” “배고프지라, 하나 잡솨.”
 
아무것도 모르는 채 광주에 도착한 만섭에게 시민들이 앞다퉈 주먹밥을 건넨다. 1980년 5월의 광주를 다룬 영화 ‘택시운전사’에서다. 지난해 여름 1200만 관객이 그 주먹밥을 마음으로 함께 먹었다. 만섭을 연기한 송강호는 이 주먹밥 신을 가장 슬픈 장면으로 꼽았다. 주먹밥을 아낌없이 나눠주는 순수했던 광주 사람들이 앞으로 벌어질 비극을 어떻게 감당할까 싶어서였다. 서울로 돌아가던 만섭이 차를 돌리는 계기도 주먹밥이다. ‘함께하지 못함’에 대한 미안함을 상기시켰을 터다.
 
오월 광주엔 두 가지 나눔이 넘쳤다. 지난해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도 언급한 ‘주먹밥과 헌혈’이다. 목숨을 건 헌혈이 줄을 이었다. 전남여상 3학년 박금희양은 병원에서 헌혈을 마치고 나오다 총을 맞고 숨졌다. 시내 골목 곳곳에선 솥단지가 걸리고 주먹밥이 만들어졌다. 식량 사재기는커녕 집에 있는 걸 들고 나와 나눴다. ‘몸뻬’를 입고 머리에 수건을 두른 채 밥 짓는 ‘아짐’들의 흑백사진은 그 기록이다.
 
‘광주항쟁’ 그림에도 빠지지 않는 게 밥 짓는 모습이다. 지난해 9월 복원된 전남대 벽화 광주민주화항쟁도엔 시민군 아래 불을 때서 밥을 짓는 아주머니가 그려져 있다. 홍성담 화백이 주도한 민족해방운동사 걸개그림에도 시민군 뒤로 똑같이 밥 짓는 장면이 보인다.
 
광주의 ‘오월 주먹밥’은 그냥 밥이 아니다. 단순한 전투·비상식량도 아니다. 광주 사람들에겐 고난을 함께 나눈 ‘나눔의 실천’이다. 모두가 함께한다는 ‘대동(大同)의 상징’이고 ‘공동체 정신의 상징’이다. 5·18민주화운동 38주년을 맞는 오늘, 광주 초·중·고교가 주먹밥 급식을 하는 것도 그래서다. 212개 학교가 참여한다고 한다. 학생들이 과거를 기억하고 ‘함께 나눔’의 정신을 되새기는 배움의 자리다.
 
오늘 5·18민주묘지를 찾는 참배객들을 새하얀 이팝나무 꽃들이 맞을 터다. 꽃을 보며 ‘주먹밥’을 떠올리기가 십상이다. 꽃의 생김새가 쌀과 비슷해 쌀밥나무로도 불리니 말이다. 예부터 이팝나무 꽃이 만발하면 풍년이 든다고 해서 선조들은 배를 곯는 이웃이 없기를 이 꽃을 통해 빌었다고 한다. 5·18민주화운동이 꿈꾼 ‘대동세상’의 의미와도 통하니 영락없이 오월 광주의 꽃이다. 주먹밥이 상징하는 더불어 사는 나눔 공동체의 의미가 광주를 넘어 온 사회로 승화됐으면 한다. 그래야 광주의 아픔이 씻기지 않을까 싶어서다.
 
김남중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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