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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2035] ‘오빠’를 잘 골라야 하는 까닭

중앙일보 2018.05.16 01:40 종합 28면 지면보기
민경원 대중문화팀 기자

민경원 대중문화팀 기자

지난 주말 취재차 흰색 우비를 입고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 앉아 있었다. 물론 혼자는 아니었다. 주위에는 똑같은 우비를 입은 4만5000명의 관객이 일제히 ‘오빠’의 이름을 연호하고 있었다. 조용필 ‘오빠’의 데뷔 50주년을 축하하는 자리로 팬들의 얼굴엔 기쁨이 가득했다. 오직 내 가수만이 가능한 성대한 잔치에 이들은 연신 흥겨운 춤사위를 이어나갔다.
 
빗방울과 땀방울이 뒤섞인 열기는 기억 한편에 머무르고 있던 나의 ‘오빠들’을 상기해냈다. 더불어 1999년 9월 18일 흰색 우비를 입고 주경기장에 앉아 있던 나의 모습도. 그때 우리 얼굴 역시 자부심에 가득 차 있었을 것이다. 쏟아지는 폭우를 온몸으로 맞을지언정 최초로 주경기장에 단독 콘서트로 입성한 H.O.T.를 자랑스러워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우리 오빠들은 사라져갔다. 지난 2월 ‘무한도전’을 통해 17년 만에 완전체를 볼 수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새로운 노래도, 다음 무대도 기약하지 못한 채 끝이 났다. 간간이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얼굴을 비치긴 했지만 그것과 음악은 다르다. 순간의 웃음을 선사하는 것과 내가 지치고 힘들 때마다 꺼내 듣는 노래는 교감의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간 새로운 ‘고막 남친’을 만나기 위해 노력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목소리에 꿀이라도 바른 듯 달달함이 뚝뚝 떨어지는 가수들에게 귀를 내어주기도 했고, 이런 뭐 같은 세상 다 망해버려라 목이 터져라 외치는 밴드들에 살포시 플레이리스트 몇 줄을 허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 커서 만난 이들과는 오래 가지 못했다. 학창시절 새 앨범 포스터를 구하기 위해 교복 치마를 입고 담을 넘던 순간 흘러나오던, 내 청춘의 BGM(배경음악)이 아닌 탓이다. 마음을 흔들지언정 마음을 빼앗아갈 수는 없는. 첫정이 그만큼 무서운 것이다.
 
하여 더더욱 오랜 세월을 함께 한 그들 사이가 부러웠다. 내가 아무리 ‘바운스’ 리듬에 맞춰 어깨춤을 춘다 하더라도 그들만큼 행복할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이들은 ‘변함없는 오빠로 있어 줘서 고마워요’라고 플래카드를 내걸고, 자발적으로 50주년 축하 떡을 돌리는 게 아닐까. 오빠가 그 자리에 있어야 나도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으니 말이다.
 
“오빠는 하나도 안 늙은 것 같아” “아직 50대 같지 않아” 공연 후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대화 역시 같은 맥락일 것이다. 오빠가 50대처럼 보여야 내가 40대일 수 있고, 오빠가 여전히 20대 청춘 같아야 나는 10대 소녀가 될 수 있을 테니까. 나는 언제쯤 음악으로 회춘할 수 있을까. 자고로 오빠를 잘 골라야 하는 법이다.
 
민경원 대중문화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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