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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못쓰는 지체 장애 학생 눈빛과 몸짓 보고 책 펴낸 교사

중앙일보 2018.05.14 11:40
대구보건학교 학생들과 박호숙 교사가 책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 대구보건학교]

대구보건학교 학생들과 박호숙 교사가 책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 대구보건학교]

"말로 의사소통이 어려운 아이들이 눈빛과 몸짓으로 자기 생각을 표현합니다. 나와 보조교사, 의사소통이 가능한 아이들이 한데 모여 그 뜻을 헤아리기 위해 스무고개 넘기를 하며 온갖 추측을 합니다. 아이가 글을 보고 뜻이 맞다는 사인을 하면 절로 함성이 터졌습니다."
 

대구시교육청의 ‘아름다운 선생님’ 박호숙 교사
34명 학생 이야기로 쓴『시가 되고 꿈이 되어』

박호숙(53) 대구보건학교 특수교사는 지난해 지체 장애 학생들과 함께 한 권의 책을 써냈다. 고등부 6개반 학생 34명과 함께 1인당 8편씩 총 272편의 글을 엮어 만든『시가 되고 꿈이 되어』다. 대구보건학교에는 의사소통이 원활한 학생들도 있지만 대부분이 손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거나 글을 쓸 수 있어도 한 문장을 쓰는데 10분이 넘게 걸리는 학생들이다. 박 교사는 지난해 5월 작업을 시작해 11월 말에서야 책을 완성했다.  
대구보건학교 고등과정에서 국어 과목을 가르치는 박호숙 교사가 책을 들고 있다. [사진 대구보건학교]

대구보건학교 고등과정에서 국어 과목을 가르치는 박호숙 교사가 책을 들고 있다. [사진 대구보건학교]

 
대구시교육청은 5월 15일 스승의 날을 맞아 지체 장애 학생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선물을 해준 박 교사를 ‘아름다운 선생님’으로 선정했다. 지난 10일 대구 남구 대명동 대구보건학교에서 고등 국어과목을 가르치는 박 교사를 만나 소감을 들었다. 
 
대구보건학교에서 글자가 비뚤어지지 않도록 손 등을 받침으로 해서 글을 쓰는 학생. [사진 대구보건학교]

대구보건학교에서 글자가 비뚤어지지 않도록 손 등을 받침으로 해서 글을 쓰는 학생. [사진 대구보건학교]

스승의 날 아름다운 선생님으로 선정됐는데.
부끄럽다. 책이 나온 후 학부모에게 '감사하다'는 문자를 많이 받았는데 다 저장해 두고 힘들 때마다 다시 읽어 본다. 6개월간 잘 따라와 준 학생들에게도 고맙다. 
 
책을 써보자고 결심한 계기는?
대구보건학교에는 중증중복장애를 가진 학생들이 많다. 장애의 정도가 매우 심하고 장애가 두 가지 또는 그 이상 중복해 있는 경우다. 대부분 지적 장애와 운동장애, 의사소통 장애 등이 동시에 나타난다.  일반 학생은 힘이 들 때 주변에 이야기하거나 누군가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기 힘들 경우 일기를 쓰면 된다. 하지만 여기엔 둘 다 어려운 친구들이 있다. 항상 안타까운 마음만 있다가 출판사 '창비'에서 학급 문집을 만들어 출판해준다는 캠페인 메일을 보게 됐고, 책을 써보기로 결심했다.
 
대체 의사소통판을 활용하여 글을 쓰는 동욱이와 이세희 실무원 교사. [사진 대구보건학교]

대체 의사소통판을 활용하여 글을 쓰는 동욱이와 이세희 실무원 교사. [사진 대구보건학교]

글을 쓰는 과정은 어땠나?
책 부제가 '우리들의 말과 눈빛 그리고 몸짓은 어느새'다. 고등부 중 스스로 연필을 잡고 글쓰기를 할 수 있는 학생들이 3분의 1 정도다. 3분의 1은 연필을 잡고 글을 써도 한 줄을 쓰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나머지는 표정과 몸짓으로만 의사소통할 수 있다. 그래서 글쓰기는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지체 장애 학생들도 고등학생 나이면 똑같이 사춘기가 온다. 속마음을 드러내기 어려운 나이에 각자 8편의 글을 써야 했기에 기다림이 필요했다. 의사소통이 가능한 친구들이 글쓰기가 어려운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 등의 형식으로 고등부 전체 34명 각자 8편을 모두 채울 수 있었다. 
 
대구보건학교 김근환 군이 『시가 되고 꿈이 되어』 책에 쓴 '시인' [사진 대구보건학교]

대구보건학교 김근환 군이 『시가 되고 꿈이 되어』 책에 쓴 '시인' [사진 대구보건학교]

가장 기억에 남는 글은?
김근환(17) 군의 '시인'이다. 근환이는 시인이 꿈이지만 손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한다. 말도 듣기도 할 순 있지만 글쓰기가 어려운 거다. 근환이가 '시인'에서 '나는 계속해서 시를 쓰고 싶다. 나중에 시를 모아서 책으로 내고 싶다'고 썼다. 책을 받고 제일 기뻐한 학생도 근환이다. 
 
책이 어떤 의미를 가졌으면 좋겠나.
학생들이 많은 글을 써서 이들의 목소리가 더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 보통 사람들은 지체 장애를 가졌다고 하면 무작정 낯설어하고 어려워한다. 이 친구들의 글을 보고 사람들이 '지체 장애 학생도 꿈이 있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친구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대구=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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