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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칼럼] 같이 가야 멀리 간다

중앙일보 2018.05.14 01:28 종합 31면 지면보기
김진국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김진국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문재인 대통령 말처럼 정말 ‘쉼 없이 달려온 1년’이다. 대통령 탄핵으로 갑자기 선거를 치렀다. 개표가 끝나자마자 준비도 없이 취임했다. 그런데도 이전 정부보다 더 발 빠르게 움직였다. 문 대통령의 희망대로 ‘사는 것이 나아졌다’는 말이 나올지는 더 기다려 봐야 알 수 있다. 그렇더라도 의욕적인 추진력만은 평가할 만하다.
 

자신감과 확증편향 2년차 증후군
역대 정권 이 시기 큰 고비 맞아
경쟁후보를 동반자라 한 취임사
잊지 말고 통합과 공조로 가길
내 길만 가면 당장은 편하겠지만
반대편에 섰을 때도 생각해야

북한 핵 문제는 중대한 고비에 섰다. 역대 정권이 금기시하던 임기 초 개헌 논의도 문 대통령이 먼저 나서 꺼냈다. 에너지 정책을 탈(脫)원전으로 뒤집었다. ‘적폐 청산’은 사회 곳곳에 충격을 가했다. 최저임금, 노동시간 단축, 수사권 조정…. 잇단 큰 변화에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문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는 80%대 중반에 걸렸다. 국민 평가가 높다. 탄핵당한 대통령의 뒤를 이었다는 건 그런 점에서 행운이다. 어떻게 해도 더 나쁠 수 없다. 이벤트라 비난하건 말건 와이셔츠 차림으로 종이 커피를 들고 참모들과 대화하는 모습도 ‘불통 정부’와 선명하게 대비됐다.
 
문 대통령은 8일 국무회의에서 “해이해지고 자만해지지 않게 처음 출발 그날의 다짐을 다시 한번 새롭게 해 달라”고 당부했다. 2월 초에는 비서실 벽에 신영복 선생의 ‘춘풍추상(春風秋霜)’이란 글씨를 걸었다. ‘남은 봄바람과 같이 부드럽게 대하고, 자신은 가을 서리처럼 엄격하게 대해야 한다’는 뜻이다. 2년 차에 들어 기강이 흐트러지는 것을 경계한 것이다.
 
집권 2년 차 정부에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 ‘2년 차 증후군’이라고 부르는 현상이다. 이때부터 정권은 자신감이 생긴다. 초보운전자로서 긴장했던 1년과 달리 여유가 생긴다. 속도도 내고 싶어진다. 잔뜩 웅크려 핸들이 부러지라 힘주어 잡던 손으로 라디오도 만지고,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그러다 자칫 큰 사고가 터지기 쉽다.
 
또 이때쯤 권력의 맛을 알게 된다. 사회 각 분야가 손아귀에 들어온다. 권력기관이 손발처럼 움직인다. 언론도 눈치를 본다. 모든 정보가 집중되면서 ‘나보다 더 아는 사람이 없다’는 착각에 빠진다. 그러니 귀를 닫게 된다. 다른 사람의 말은 쓸데없는 헛소리로 들린다.
 
김진국칼럼

김진국칼럼

권부의 시스템이 마무리된다. 듣기 좋은 말을 하는 사람들이 울타리를 치게 된다. 확증편향(確證偏向)이 생긴다. 의지를 갖고 노력하지 않으면 싫은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4년 뒤 ‘위대한 업적’을 남기려 마음이 급해진다. 효율성과 추진력을 따져 듣고 싶은 말만 듣게 된다.
 
역대 정부는 대개 이 2년 차에 큰 고비를 맞았다. 박근혜 정부 2년 차에 세월호가 침몰했다. 이때부터 점점 수렁에 빠져들었다. 몇 번이나 다른 길로 갈 기회가 있었지만 번번이 놓쳤다. 귀를 막고, 최악의 선택만 반복했다. 결국 정권이 침몰했다.
 
김대중 정부 2년 차에는 ‘옷 로비’ 사건이 터졌다.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뤄 기세등등했던 김대중 정부가 강력한 장악력을 놓치는 계기가 됐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회에서 탄핵소추까지 당했다. 이것이 17대 총선에서 압승하게 만들어줬지만 노 대통령의 입지는 점점 더 어려워져 ‘폐족(廢族)’에 이르렀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1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변화를 두려워하고, 거부하고,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뒤에서 끌어당기는 힘이 여전히 강고하다”고 썼다. 그러면서 그는 “단지 저는 국민과 함께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국민’과 ‘역사’를 이야기하는 건 임기 말이다. 외톨이가 됐을 때다. 문 대통령은 다르다. 이제 2년 차다. 그런데도 내 길만 가겠다는 의지는 불안하다. 국회에 가져가면 아무것도 안 된다는 불신이 짙게 깔렸다.
 
정말 개헌을 하려면 국회와 손을 잡았어야 한다. 국회 재적 3분의 2의 찬성은 헌법 조항이다. 청와대 비서실이 아니라 더불어민주당이 나섰어야 한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통합과 공존’을 강조했다. 경쟁 후보들에게도 ‘대한민국을 함께 이끌어가야 할 동반자’라고 말했다.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탕평인사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모두 잊었다.
 
판문점 남북 정상 만찬에 여당 대표도 부르지 말든지, 아니면 같이 부르는 게 정상이다. 그래놓고 비준을 요구하는 건 도발에 가깝다. 물론 요즘 자유한국당 행태를 보면 ‘오죽하면…’이라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당장은 지지도를 업고 국회를 무시하고 가는 게 편할 수 있다. 그렇다고 ‘원외자유당’을 동원할 수도 없고, 일당 국가가 될 수도 없다. 개혁 작업에 대한 법적 뒷받침을 할 수 없다. 반대편에 섰을 때도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민주주의다. 함께 가야 한다. 그래야 멀리 간다.
 
김진국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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